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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터피터 Aug 02. 2021

민낯

익숙해지기.

인간이 익숙하지 않은 자기의 본모습에 접근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난 겁이 많고 예민한 성격을 타고났다. 원래 그런 동물들이 대개 그러하듯 어딘가에 자기 굴을 파고 들어가 외부에 절대 자기를 노출하지 않고 숨기는 그 습성이 내게도 아주 깊게 배어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다 보면 밖으로 드러내는 모습은 결국 남에게 보이기 위한 위장이 되는 경우가 많고 현대에는 그런 모습들을 페르소나라고 하여 당연시하는 경향이 있다. 문제는 어느 순간부터는 그 가면 쓴 얼굴을 자기 본 얼굴로 착각하는 경우도 많다는 것이다.


나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녹음된 자기 목소리를 무척 듣기 싫어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셀카를 찍어도 좋아하는 각도가 있고, 나 같은 경우에는 글을 쓰고 난 이후 일정 시간이 지나 갑자기 내 글이 낯설어지면 그 글도 엄청 싫어진다. 결국 자기가 내적으로 자기의 모습이라고 알고 있는 것이 대부분은 실제가 아닌, 어느 정도 왜곡되고 굴절된 모습들을 자기의 이미지라고 착각하면서 인간은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는 이야기가 되겠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자기 본모습을 보고 느끼고 감각하는 것을 인간은 잊어버리게 된다.


인간의 참 본모습은 결국 행동이다. 내적으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느냐보다 어떤 행동을 결정하고 실행하며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가가 그 사람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나는 참 오랫동안 내가 원하는 삶을 나답게 살아오지 못했다. 그냥 겁이 났다. 왠지 사람들의 흐름에 휩쓸려 가는 것에 내 삶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그냥 내 멋대로 살기에는 나 스스로 자신이 없고 너무 나약했다. 그래서 오도 가도 못하고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었다는 걸 글로 풀어내니 조금은 알 것 같다.


내 목소리가 스스로 낯설고, 사진에 찍힌 나의 모습이 낯설고, 글로 적어내는 나의 내면이 낯설다. 그렇다는 건 스스로 자기 자신을 돌아보지 않고 무심했다는 말이다. 예전에 여자 친구가 자기는 화장을 지운 민낯이 너무 낯설고 어색하다는 말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땐 그게 그렇게 이상한가? 하는 생각을 곁에서 했었지만 지금은 나 역시 나의 민낯이 너무 어색하고 그래서 이것을 어떻게 드러내고 또 친해져야 할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내가 드러내는 나의 내면에 낯이 설기에 나의 글은 아직은 한참 더 방황하고 헤맬 것이 분명하다. 어떤 글을 적어도 이게 정말 내가 살아가고 있는 방향성과 맞는 글인지? 아니면 그냥 나의 생각이 그렇다고 착각을 하는 것인지 분명하게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지금까지 너무 생각이 많았고 그 생각은 행동이 되어 실천되지 못했다.


좀 더 적게 가지고 가벼운 마음으로 살아가고 싶었지만 주변의 시선이 그리고 나의 나약함이 그것을 끝까지 버티고 실현해 나갈 수 있을지 항상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그냥 삶은 원래 힘이 드는 것이다. 그리고 삶은 대부분에서 생각한 것보다 적게 얻게 되고 덜 낭만적이며 더 많이 실패하고 더 많이 실망하게 되어 있다. 그게 너무나 당연한 것인데 그걸 받아들이는 것을 무서워하다 보니 항상 안전구역 안에서 좁디좁게 인지하며 숨어 살게 되는 것이다.


글이 무엇인지 아직 나는 잘 모르겠다. 지금 이런 거친 생각들이 최종적으로 어디에 가 닿게 될지 그리고 나의 생각이 단단해져서 어떤 글을 정말 쓰고 싶다고 생각하게 될지 아직은 감도 잡히지 않지만 그럼에도 글쓰기의 시작이 나의 생각을 좀 더 자유롭게 해주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일단 그것에 감사한다. 그 발견에 감사한다. 그리고 누군가 이것을 읽고 보내주는 응원에 또 항상 감사한다. 그러면서도 왠지 마음이 무겁다.


그냥 글쓰기 초보자가 갑자기 다시 한번 자신의 초라한 민낯을 보고 맘이 심숭해지는 그런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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