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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터피터 Aug 01. 2021

공백

멍 때리기

요즘 내가 자꾸 멈춘다. 작동이 그냥 멎어버린다.


머릿속에서 생각이 멈추는 것 그 여백이 ‘엉때리기’가 되었다. 예전에는 뭔가 제동이 걸리는 듯한 이런 멈춤이 그냥 싫었다. 그래서 이 과정이 익숙하지 않다. 초조함과 여유는 정말 한 끗 차이인 것 같다. 멈추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감각을 열어 세상을 느끼는 순간은 여유로움이 된다. 그렇지만 그냥 멈칫멈칫하면서 뭘 해야 할지 모르는 것 같은 감각이 살아나면 그것은 초조함이 된다.


언제나 생각을 하고 이야기를 만드는 뇌는 주변을 잘 감각하지 못한다. 나를 멈추고 고요히 있으려고 하면 지금은 뭔가 텅 빈 공백을 느낀다. 그리고 이 공백은 도대체 무엇인지를 모르겠다. 예전에 도토리묵을 양념 없이 우물우물 씹어먹으면서 ‘아무 맛이 없네.’라고 하던 바로 그런 느낌이다. 그냥 어떤 상태 속에 내가 있는데 그게 뭔지는 모르겠다.


이야기가 없으니 이런저런 감정의 일어남도 확실히 적다. 하지만 그만큼 삶의 열의도 식어버리는 느낌도 든다. 얼마 전만 해도 해보고 싶었던 일, 읽고 싶었던 책, 써보고 싶었던 주제가 갑자기 맘속에서 시들해져 버린다. 어느 순간에는 무력감을 느끼는 듯하다가도 뭔가 좀 느슨하고 자유롭다는 감각도 생기고 ‘에라 모르겠다.’하는 자포자기 같기도 하고 그러면서 이게 도대체 무슨 맛인지 모르는 것을 입에 넣고 계속 우물우물 씹고 있는 느낌이다.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에는 맘 속에 열의가 없다는 것이 그냥 싸늘하게 무섭다.


내가 감정을 잘 다루지 못하는 것과는 별개로 감정이 없이 무엇을 한다는 것이 이렇게 이상한 느낌이라는 것을 처음 겪어보는 듯하여 당황스럽다. 무엇을 할 때 나는 항상 감정의 도움을 받아 일정한 리듬을 타고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글을 쓰는 것이 그냥 뚝뚝 끊어진다. 찰기가 하나도 없는 덩어리가 한데 붙어있지 못하고 부스러기로 자꾸 떨어져 나가고 흩어지는 느낌이 든다. 이 짧은 글을 쓰면서도 몇 번을 쉬었다가 다시 쓰는지 모르겠다. 뭔가 텅 비었다.


스승이 없이 마음을 수행한다는 것이 정말 어려운 일인 것 같다. 낯설고 당황스럽고 무섭고 무력한 듯싶고 또 조금은 답답하다. 하지만 좋게 보면 뭔가 차분해지는 과정처럼도 보인다. 앞으로 무엇이 어떤 단계로 어떻게 진행될지 전혀 모르면서 그냥 나에게 꼭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되는 모든 활동을 멈추니 여백을 어떻게 채워야 할지 몰라서 여러 상태가 두서없이 계속 진행되고 있는 듯하다. 난 그 감정들이 두서없이 부딪히고 사라지면서 좀 우울한 듯 가라앉는 내가 너무 낯설어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는 것이고 또 감정들이 사라질 때 삶의 동력 또한 같이 사그라드는 듯하여 불안해하는 것 같다. 결국 다시 불안이라는 감정의 덩어리만 아주 크게 느껴진다.


생각 같아서는 ‘불안’은 그냥 조용히 잠재우고 삶의 ‘의욕’은 샘솟게 하는 방향으로 나를 새롭게 설정하고 싶지만 그런 것이 한순간에 뚝딱하고 저절로 될 리가 없다. 뭔가 울퉁불퉁하고 험난 하면서도 앞은 제대로 보이지 않는 안개 낀 회색지대를 한참을 지나가야 하는 그런 상황인가 보다. 분명히 모든 감정들은 한 덩어리로 연동되어 움직인다는 것만은 잘 알 수 있는 그런 경험이다. 내가 좋아하고 편한 감정만 골라서 사용하고, 싫은 감정은 쳐다도 보지 않고 그냥 신경을 끄고 싶겠지만 그렇게는 안 된다. 결국 좋든 싫든 모든 감정을 함께 아우르고 큰 기복 없이 감정의 다양한 면을 고루 다룰 수 있을 때까지 뭔지 모를 회색지대의 텅 빈 공백 같은 이 느낌을 더 자주 마주하게 될 것 같다.


잠깐잠깐이 아니라 묘하게 긴 구간의 ‘멍 때리기’를 계속하면서 괜히 기운이 빠져 투덜거려 본다. 확실히 뭔가를 배울 때 익숙하지 않은 모든 것은 그냥 힘이 든다. 기운이 빠지니 뭔가 맛있는 것을 먹고 싶어 진다. 허기가 진다. 글 쓰는 게 꽤 나 뻑뻑한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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