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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s가람 Feb 03. 2022

와인 에티켓 (부제 : 소주도 주도酒道가 있으니)

  술자리에서의 나는 속도광이었다. 일단 병뚜껑을 따기만 하면 바닥을 비울 때까지 연거푸 원샷. 알딸딸해져서 술자리에서 앞구르기 한 번, 집에 가면서 뒷구르기 두 번, 집에 도착해서 몇 번의 토악질을 하면 오늘 제대로 마셨다는 생각에 흡족했다. 주변에 모이는 인간들도 같은 종족이라 우리는 그 누구보다 빨리 마시고 많이 마셨다. 주종은 당연히 소주. 애주가에게 맥주같이 배부르고 쉽게 취하지 않는 술은 사치니까.

 

 그래서인지 와인을 마시는 남자와는 인연이 없었다. 아는 언니의 소개로 소개팅을 나갔는데, 첫눈에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대방은 애초에 나를 알고 주선자에게 소개팅을 부탁했다고 하니 이제 대화만 잘 풀리면 게임 끝. 근데 이 남자 와인을 주문한다. 그리고 소개팅은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


 그는 와인을 대하는 내 행동 하나하나가 불만이었다. 커다란 잔 가득 와인을 콸콸 따르니 사색이 되질 않나, 마시려고만 하면 자꾸만 잔을 흔들라고 잔소리를 하질 않나, 한번에 꼴깍 원샷하면 한숨을 쉬질 않나. 시간이 지날수록 테이블 가득 세팅된 와인잔을 다 던져버리고 병나발만 불고 싶다.


 결국 소개팅 역사상 최초로 애프터 신청을 받지 못했다. 친구들만나 소주나 마셨다. “역시 와인 마시는 속물들은 사람  줄을 몰라.” 와인 마시는 것들이나 와인이나 나와는 맞지 않는다고 푸념하면서.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나이를 먹기 시작하며 술자리에서의 질주도 끝이 났다. 사람다운 속도로 술을 마시며 지내던 어느 날 환영식에서 만난 신입. 주도(酒道)가 개판이다. 상사 소주잔 한가득 술을 채우질 않나, 부장님이 따라주시는 첫 잔을 꺾어마시질 않나, 바닥을 보이는 사수 소주잔을 무려 5분 이상 그대로 두질 않나......

 잔소리를 하려다가 보니 내 꼴이 꼭 소개팅 자리에서 만났던 남자 같다.


 대상이 와인과 술의 차이가 있을 뿐, 문화가 다르다는 차이가 있을 뿐 주도와 에티켓은 꼭 닮아 있었다. 평소에는 꼰대의 안줏거리가 되겠지만 때로는 상대방에 대한 배려일 수도, 그 술을 제대로 음미할 방법일 수도 있었는데. 당시에 내가 너무 성급했다는 생각이 든다.



 와인을 즐기는 30대가 되어 보니, 소개팅 그 남자도 돌아가면서 이런 생각을 했겠다. '와인 에티켓도 모르는 여자와 인생을 함께할 수 없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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