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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즈킴 Jun 21. 2019

당신의 자궁은 안녕한가요?

산부인과에 가기가 두려워졌다

좀 우스운 말이지만 나는 일종의 ‘자궁 자신감’이 있었다. 20대까지도 생리를 할 때 배가 더부룩하다거나 허리가 좀 아픈 수준의 불편함이 있을 뿐 ‘생리통’이라 할 만한 증상을 모르고 살았다. 극심한 생리통으로 기절을 한다거나 음식도 먹지 못하고 일주일 내내 침대에 누워있는 또래 친구들이 오히려 신기할 따름이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생리 주기가 맞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단 한 번도 나의 자궁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 본 적이 없었다. 으레 “네가 나를 닮았으면 자궁 하나는 튼튼할거야”하고 자부심을 드러내던 엄마의 영향도 컸다.  


30대가 되면서 ‘자궁’은 삶에서 빠뜨릴 수 없는 고민 중 하나가 됐다. 어느 순간부터 자궁근종과 같은 질환으로 ‘수술’ 혹은 ‘시술’을 받는 주변 여성들도 많아졌다. 자궁근종은 자궁근육세포가 자라나 형성된 양성 종양이다. 30세 이상 여성 3~4명 중 한 명에서 발병할 정도로 굉장히 흔한 자궁 질환으로 생리양이 급격하게 많아지거나 보름이 지나도록 멈추지 않는 경우 의심해볼 수 있다고 한다. 근종은 성관계시 고통을 유발할 수 있고 심각한 경우 태아 착상에도 영향을 미친다. 수술로 해결할 수 있지만 추적검사를 하며 식단 관리와 꾸준한 운동을 통해 치료할 수도 있단다.   


근거 없는 자궁 자신감이 있던 내게도 2년 전부터 ‘관찰이 필요한’ 증상이 생겼다. 과거에도 생리 불규칙 현상은 있었지만 어느 순간 호르몬의 밸런스가 완전히 무너진 느낌이었다. 40일 만에 생리가 오는가 하면 2주 만에 소량의 부정출혈이 발생하기도 했다. 자궁 내시경 상으로는 깨끗하다는 소견을 받았는데 원인을 알 수 없는 불규칙적인 생리가 지속되자 나는 결국 대학병원에서 정밀 검사를 받기로 했다. 


출처 : 해피문데이


남성 의사를 만날 용기는 나지 않아 가까스로 한 달을 기다려 산부인과 여의사를 만날 수 있었다. 분명 나처럼 여의사를 선호하는 여성 환자들이 많을 텐데 생각보다 해당 분야 여의사는 많지 않았다. 정작 어렵게 만난 의사는 많은 진료 탓에 지쳐보였고 대수롭지 않은 나의 증상에 크게 관심도 없는 듯했다. 그 의사보다 더 지쳐 보이는 남성 레지던트가 졸린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우리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아무리 의사라고는 하지만 구경꾼처럼 나를 탐색하는 낯선 남성 앞에서 몸의 내밀한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대학병원 특성상 어쩔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 레지던트의 존재가 나는 무척이나 불편했다. 


의사는 내시경으로는 문제가 없으니 자궁 안쪽을 들여다볼 수 있는 자궁내시경을 하자고 제안해 왔다. 나는 그 검사가 무엇인지도 몰랐지만 이번 기회에 증상을 명확히 하고자 선뜻 수락했고 차가운 기운이 맴도는 산부인과 의자에 앉아 다리를 벌렸다. 다행스럽게도 검사실에는 여의사와 여간호사들만 함께했다. 속사포처럼 지나가는 검사에 대해 설명을 들은 뒤 곧이어 난생 처음 겪어보는 알싸한 고통이 느껴졌다. 막 찌르는 아픔이라기보다 누군가 자궁을 세게 쥐어짜는 듯한 이상하고 불편한 느낌이었다. 검사가 끝나고 어지러움과 메스꺼움이 몰려와 한 시간가량 누워 있은 뒤에야 가까스로 몸을 추스릴 수 있었다. 알고 보니 보통은 수면마취로 진행하는 검사라고 했다. 


끔찍했던 검사가 끝나고 몇 주 뒤 나는 아주 ‘애매한’ 소견을 받았다. 내시경으로 자궁 내막을 들여다보니 “뭐가 있긴 있다”는 것이었다. 의사는 그 뭔가가 '폴립'이라고만 했다. 그게 어디에 있는지 왜 생길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았다. 


“꼭 수술을 해야 하는 상황인가요?”

“그건 환자 본인 판단이에요. 하고 싶으면 하고 아니면 안 해도 되고요.”

“안 하는 경우 어떻게 치료할 수 있나요?”

“어떻게 될지 장담은 못하죠. 그냥 없어질 수도 있어요. 6개월 단위로 2,3번 이상 같은 증상이 반복되면 수술하는 게 맞아요.”


그는 굉장히 피곤하다는 듯 아주 간단하게 선택지를 던졌고 치료의 방법에 대해서도 환자인 나의 판단에 맡겼다. 나는 알 수 없지만 일단 뭔가가 있다는 말에 덜컥 겁이 나 그 자리에서 수술일자를 잡았다. 하지만 곧 과잉진료에 대한 불안감에 휩싸였다. 집에 돌아와 수술과 관련한 여러 정보를 검색하고 지인들과 상의해 보니 지금 당장 필요한 수술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의사가 수술하는 게 좋겠다는 확신을 줬더라면 좋았을텐데) 진료 시 만났던 그 어리숙한 레지던트도 함께 수술과정을 지켜볼 거라는 말은 상상만으로도 수치스럽게 느껴졌다. 나는 결국 수술일자가 가까워질 무렵 수술을 취소했다. 


다행스럽게도 그로부터 2달 정도 지난 후 나의 생리 현상은 비교적 정상적으로 돌아왔다. 나는 지금도 내 자궁에 의심되는 그것이 무엇인지, 어떤 질환인지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이제 몸 상태는 괜찮아졌지만 ‘그 무언가’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곧 재검사를 받아야하는데 그날의 고통이나 답답함을 생각하면 병원에 가기가 꺼려지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이제는 산부인과에 정기적으로 다니며 여성으로서 내 몸을 돌볼 때가 된 것 같은데 병원에서의 첫 경험은 병원의 문턱을 더 높게 만드는 결과를 낳았다. 나에게만 국한되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수많은 여성들이 자궁 질환으로 고통 받지만 병원에 갈 엄두도 내지 못한 채 자신의 상태를 방치하고 있을지 모른다.


피곤에 찌들어 무성의하게 응대하던 의사만을 탓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대학병원의 구조적 문제로 발생하는 의사들의 과중한 노동은 이미 잘 알려져 있지 않은가. 그렇다고 동네병원을 가는 것도 마땅치 않게 느껴진다. 회사 동료 중 한 명은 ‘지중해 다이어트’라는 걸 통해서 자궁근종을 치료하고 있다는데 나도 식단 조절부터 시작해야 하는 걸까?  왜 나는 병원에 다녀왔음에도 내 몸 상태가 더욱 혼란스럽게 느껴지는 것일까? 


병원이란 몸의 아주 사적인 부분을 나누고 치료받는 곳인데 두려움과 불편함으로 점철된 그 날의 기억은 아직도 나를 망설이게 한다. 미혼여성에게 산부인과란 여전히 너무 어렵고 부담스러운 장소인 것 같다. 미래에는 산부인과에 드나들어야 하는 일이 더 많아질텐데. 여성들이 좀 더 자연스럽게 자궁에 대한 이야기를 공유하고 보다 편안한 환경에서 내 몸을 들여다볼 수 있는 날이 올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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