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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즈킴 Jun 12. 2019

왜 나는 동거를 말할 수 없을까

"내가 나로 사는 것이 왜 누군가에게는 상처일까요?"

나는 굉장히 예민한 편이어서 누군가와 함께 산다는 일이 쉽지 않다. 특히 잠귀가 밝아 시계초침 소리라도 들리면 그 소리가 도통 거슬려 잠들기 어려울 때가 있다. 불 꺼진 캄캄한 방 안을 비추는 TV 화면의 번쩍이는 빛, 휴대폰 액정에서 쏟아져 나오는 간헐적인 반짝임 역시 나를 잠 못들게 한다. 게다가 때로는 그저 혼자 있는 시간을 방해받고 싶지 않은 마음에 누군가와 같은 공간에 있다는 것 자체가 고역스러울 때가 있다.  


그런 이유로 나는 룸메이트와 함께 사는 일이 늘 괴로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20세 이후 혼자 살아본 적은 손에 꼽을 정도다. 재수를 하던 시절 방음이란 전혀 기대할 수 없는 하숙집에서 복작거리며 살았고, 대학 진학을 위해 서울로 오게 되면서부터는 친언니와 쭉 함께 살았다. 영국 교환학생 에도 한국인 룸메이트와 방을 썼다. 이후 대학원을 다닐 무렵에도 4인 1실 기숙사에 지내며 탈출을 꿈꿨지만 결국 30대 중반이 될 무렵까지 혼자 사는 꿈은 이루지 못했다. 경제적인 이유가 가장 컸다. 어쩌면 누군가에는 너무도 쉽고 당연한 ‘혼자살기’가 30대의 숙원이 될 만큼 내게는 간절한 일이 됐다.


그런 내게도 같이 살고 싶은 사람이 생겼다. 홀로있음의 편안함이 아닌 함께있음의 소중함을 나누고 싶은, 걱정이 앞서던 나의 수많은 공상을 현실로 만들며 새로운 미래를 그려보고 싶은 사람이. 상황도 여의치 않을뿐더러 ‘결혼’만이 해답은 아니라는 생각에 나는 애인과의 동거를 구체적으로 생각하게 됐다. 그 동안의 많지 않은 연애 가운데 누군가와 같이 살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된 건 처음이었다. 무엇보다 좀 더 주체적으로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행동해야겠다는 마음이 크게 작용했다. 가족과 함께 사는 것도 좋았지만 그 속에서 나는 늘 자유롭지 못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애인과의 ‘동거’를 입에 담았을 때, 주변의 반응은 싸늘했다.


‘결혼부터 해야지’


‘그래도 아직 우리나라에서 동거는 여자 손해야. 소문나면 너만 손해다’


‘동거하게 되더라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 절친한테도’


지난해 통계청이 발표한 ‘2018 한국의 사회지표’에 따르면 미혼남녀 절반 이상이 결혼을 필수가 아닌 선택사항으로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반면, ‘남녀가 결혼하지 않더라도 함께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비율은 56.4%로 절반을 넘어섰다. 이는 2016년 48%보다 8.4% 증가한 수치다. 실제로 내 주변에도 결혼 전 함께 사는 커플, 혹은 결혼과 상관없이 동거하는 이들이 많이 늘어났다. 제도적으로 묶이지 않더라도 함께 생활하며 상대를 깊이 파악해 보는 것은 유럽에서는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서글프게도 통계의 수치는 ‘남의 이야기’가 증명할 뿐 나의 현실에서는 와닿게 느껴지지 않는다. 여긴 유럽이 아니니까. 특히 가족의 반대가 심했다. 같이 살지 않더라도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은데 그걸로 뭐가 부족한 것이냐며, 주거비가 비싼 서울에서 결혼하지 않은 자매가 따로 사는 게 말이 되느냐며 ‘이기적인 나’를 힐난했다. 나는 그저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싶은 것뿐인데, 왜 그 선택이 이기적으로 비춰지는 것일까? 혼자 살기 위해 가족들에게 손을 벌릴 것도 아닌데 왜 나는 이토록 홀로서기에 비난 받아야 할까? 정말 내가 잘못된 생각을 갖고 있는 걸까?


“내가 나로 사는 것이 왜 누군가에게는 상처일까요?”
김정연의 <혼자를 기르는 법> 중에서


가족과 살고 싶지 않은 것이 아니라 내 삶을 선택하고 살아보고 싶을 뿐인데. 요즘은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가족들의 등쌀과 회유를 견디며 ‘독립’을 계획하고 있다. 가족의 동의를 구하지 못한 채 인생의 새로운 국면에 접어드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은 것 같다. 그러나 그로부터 오는 슬픔이나 좌절보다는 '나로 사는 것'에 대한 갈망이 지금의 나에게는 더욱 간절하다. 주변의 우려처럼 '여자 손해'로 끝이 날 지 모르지만 그런 구시대적 불안 속에서 현재를 낭비하고 싶지 않다. 결국 내가 사는 삶, 나의 선택이 아닌가. 애초에 원하던 대로 애인과의 동거 형태가 될 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스스로 홀로될 준비가 된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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