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무식자의 전세방 구하기(1)

현실과 이상의 괴리

by 미즈킴

지난 "왜 나는 동거를 말할 수 없을까"라는 글에서 독립을 향한 열망을 밝힌 바 있다. 가족들의 우려 속에서 나는 쉽지 않은 대화와 설득의 과정을 거쳐 드디어 혼자 사는 것에 대한 ‘합의’를 얻었고 35세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난생 처음 집을 구하게 됐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스무 살 이후 사는 곳을 꽤 옮겨 다닌 것 같지만 나는 부동산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었다. 심지어 등기부등본이 뭔지도 몰랐으니까. 평소 부동산에 큰 관심도 없을뿐더러 평생 혼자 산 적이 없으므로 굳이 내 힘으로 집을 구할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마음만 급했지 세상물정을 전혀 모르는 철부지였다.


부동산무식자로서 집을 구하며 나는 스스로가 얼마나 가진 게 없는지 새삼 깨닫게 됐고, 무엇보다 ‘무지’에서 오는 답답함과 불안감으로 골머리를 앓아야 했다. 알지 못하기 때문에 내가 제대로 된 선택을 하고 있는지, 소비자로서 정당한 권리를 보장받고 있는지조차 확신할 수 없었다. 여전히 모르는 것 투성이지만 나와 같이 부동산에 대해 잘 알지 못한 채 집을 구하려는 이들이 그 과정에서 조금이나마 덜 당황할 수 있도록 내가 겪고 배운 것들을 몇 편의 시리즈로 기록하고자 한다.




집을 구할 때 고려해야 하는 것들


본격적으로 집을 구하기 전 무엇보다 나의 우선순위를 정해야 했다. 집을 구할 때 고려해야 하는 수많은 것들 – 예컨대, 가격, 통근시간, 지하철역과의 거리, 동네 분위기, 건물의 낙후도, 청결함, 융자 여부, 치안, 채광, 방의 구조, 주변 상권 등 개인마다 중요하게 여기는 사안은 모두 다를 것이다. 내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집의 ‘가격’과 ‘통근시간’이었다. 매매가 아니니 굳이 집의 시세나 수익률 따위는 생각할 필요가 없었고 내가 수급할 수 있는 예산 내에서 비교적 직장과 가까운 곳으로 집을 구하는 일이 중요했다.


먼저 나는 전세자금대출을 받고 갖고 있는 목돈을 모두 끌어당겨 쓰는 조건으로 최대 금액을 1억 5천만 원으로 설정했다. 원하는 조건은 가능한 투룸, 가구가 없으니 에어컨, 냉장고, 세탁기가 설치되어 있는 풀옵션이어야 했고 반지하나 옥탑방은 피하기로 했다. 회사가 있는 ‘신촌’에서 그리 멀지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집을 구한다면 서대문구, 마포구, 종로구 정도로 지역이 좁혀졌다.


그러나 1억 5천만 원으로 이런 조건의 전셋집을 구한다는 것은 정말 순진한 바람이었다. 대학들이 몰려 있는 신촌은 그야말로 '가성비'가 떨어졌다. 1억 5천으로는 원룸이나 한 칸짜리 오피스텔을 구하는 일도 쉽지 않았다. 오래된 건물의 허름한 투룸 빌라는 2억 원을 훌쩍 넘겼다. 그나마 집값이 조금 저렴하다는 마포구에서도 신촌에 가까워질수록 가격이 치솟았고, 가격이 맞는 집이 있어도 옵션이 없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나의 조건을 들은 일부 공인중개사들은 난색을 표하거나, 일부는 애초에 중개조차하려 하지 않았다. 투룸에 옵션이 있고 신촌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1억 5천짜리 전셋집은 너무도 큰 꿈이었던 것이다.


현실과의 타협이 필요한 때


결국 나는 원하는 조건의 집을 구하기 위해서는 대출을 더 받거나 일부를 월세로 전환하여 전세금액을 높이고, 신촌에서 좀 더 멀리 떨어진 곳으로 지역을 더 넓혀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그렇게 찾은 곳이 은평구에 있는 한 전셋집이었다.


먼저 이 집은 3호선 녹번역에서 걸어서 10분 정도 걸리는 곳에 위치해 있었다. 지하 4층부터 지상 12층까지 꽤 고급스럽게 지어진 건물이었다. 로비에는 이곳저곳 소파가 설치되어 있고, 지금은 운영하지 않는 듯해 보이는 의료시설의 흔적이 엿보였다. 사실 1억 5천짜리 1.5룸을 보기 위해 찾아갔지만 공인중개사는 3천만 원만 더 내면 훨씬 좋은 공간에서 살 수 있다며 내게 새로운 방을 보여줬다. 적당한 크기의 투룸, 제법 넓은 거실, 게다가 초록 나무들이 한눈에 보이는 작은 베란다까지 딸려 있었다. 공간도 넓을뿐더러 창밖으로 건물이 아닌 자연을 볼 수 있다니! 게다가 내가 원하는 옵션도 모두 있었다.


‘대출만 좀 더 받으면 이 집에서 살 수 있다!’


나는 기대감에 부풀었지만 이렇게 좋은 조건에 전세값이 비교적 저렴했던 까닭은 집에 융자가 많이 껴 있기 때문이었다. 집의 매매가는 5억이 조금 넘는 수준인데 이중 절반 이상이 근저당(불특정 다수의 채권을 채권 최고액까지 담보하기 위해 설정하는 저당권)으로 잡혀 있었다. 집주인이 돈을 갚지 못할 경우에는 집이 경매로 넘어가 매매가의 70%까지 집값이 떨어져 전세값을 모두 돌려받지 못할 가능성이 상당해보였다. 게다가 등기부등본을 떼어보니 지난 몇 년간 경매에서 수차례 거래된 기록이 남아 있었다.


전세반환보증보험의 기본 조건


나는 이 위험성에 대해 우려를 표했지만 중개인은 ‘전세반환보증보험’을 들면 아무 문제가 없다며 나를 안심시키려 했다. 전세반환보증보험이란 세입자가 살고 있는 집이 경매에 넘겨지거나 계약 만기 후 집주인이 전세금을 반환하지 않을 때 보증기관이 세입자에게 대신 돈을 지불하고, 이후 집주인에게 돈을 받아내는 형태의 보험 상품이다. 현재 국토교통부 산하 주택도시보증공사(HUG)와 SGI서울보증만 운영하고 있다.


나는 이번에 집을 알아보면서 이 보증에 대해 처음 알게 됐는데 최근 계약 시보다 전세가가 떨어져 집주인이 돈을 제때 돌려주지 못하는 '역전세난'이 일어나면서 가입률도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비용은 주택도시보증공사 상품을 기준으로 했을 때 보증금의 연 0.128%(아파트)에서 0.154%(그 외 주택) 정도로, 전세가격이 2억인 경우 2년 기준 보통 60~70만 원 가량 들어간다고 볼 수 있다.


KakaoTalk_20191027_141331736_02.jpg 일러스트레이션 : 박다영

집이 워낙에 마음에 들었기에 근저당이 높게 설정되어 있음에도 계약을 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하지만 보증보험을 알아보면서 또 다른 사실을 알게 됐다. 이 집은 바로 보증보험 적용이 안 되는 노인복지시설이라는 것이었다. 본래 '실버타운'을 목적으로 지어졌지만 법이 바뀌면서 일반인들도 입주가 가능하게 된 것. 대출을 받고 사는 데는 크게 문제가 없지만 보증을 통해 전세보증금을 보호받는 것은 불가능한 곳이었다. 보증기관에서는 '단독(다중주택), 공관, 가정어린이집, 공동생활가정, 지역아동센터, 노인복지시설은 보증대상이 아니라고 명시하고 있다. 일반 주거 공간보다 저렴한 근린생활시설(근생) 또한 보증 대상에 해당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중개업자는 주택도시보증공사가 아닌 SGI서울보증에서는 비교적 높은 수수료를 내는 조건(2년간 약 150만 원)으로 보증상품을 개발 중이라며 마지막 순간까지 나를 설득하려 했다. 주택도시보증공사에 내는 수준만큼만 세입자가 보험료를 부담하고 나머지 비용은 집주인이 지불하도록 하겠다면서 말이다. 하지만 정부기관에서 보증해주지 않는 노인복지시설에 높은 융자까지. 안정성이 보장되지 않는 이 집의 리스크는 너무도 커보였다.


결국 나는 계약을 포기했다. 주말이면 거실에 앉아 산들바람을 맞으며 초록 풍경을 바라볼 수 있으리라는 미몽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 2부에서 계속 -

* 본 시리즈는 박다영 님이 일러스트레이터로 참여해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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