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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즈킴 Sep 11. 2020

듣는 영화 1. 스타 이즈 본(2018)

신데렐라를 넘어, 스타의 재발견

“중요한 건 포기하지 않는 거예요.

여러분도 꿈이 있다면 계속 싸워나가세요.

열정이 있다면 얼마든지 거절을 당하더라도 괜찮아요.

다시 일어나서 걸어가는 것이 중요해요.”


지난 2월 25일 미국 LA 돌비극장에서 열린 2019 아카데미시상식에서 주제곡상을 받은 레이디 가가는 울먹이며 수상소감을 밝혔다. 그녀의 메시지에는 레이디 가가 본인 자신, 나아가 영화 <스타 이즈 본>의 주인공 앨리의 스토리가 투영되어 있었다. 객석에서는 뜨거운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영화는 레이디 가가라는 ‘월드스타 카드’가 있었음에도 개봉 당시 국내에서는 흥행에 크게 실패했다. 이미 두 번이나 리메이크가 된 작품이기에 뻔한 스토리 자체에 대한 기대가 적었는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음악영화가 나오면 대부분 챙겨보는 편이지만, 레이디 가가와 브래들리 쿠퍼가 가진 기존의 이미지 때문인지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특히 레이디 가가에 관해서는 그녀의 음악성보다는 화려한 퍼포먼스와 해괴한 차림에 눈이 갔던 터라 앨범 한 장을 제대로 들어본 적도 없었다.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영화 <스타 이즈 본>은 기본적으로 신데렐라 스토리에 가깝다.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무명의 싱어송라이터 앨리(레이디 가가)가 록스타 잭슨(브래들리 쿠퍼)을 우연히 만나 마치 소설처럼 사랑에 빠진다. 자신의 얼굴에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던 앨리는 드래그 쇼에서 간간히 노래를 부르지만 막상 대중 앞에 숨겨진 재능을 드러낼 용기는 없다. 앨리의 재능을 알아본 잭슨의 도움으로 앨리는 영화의 이름처럼 스타가 되지만, 막상 유년시절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한 잭슨은 극심한 알코올 중독으로 파멸의 길을 걷는다. 어느 순간 앨리의 삶을 망가뜨리고 있다는 죄책감에 잭슨은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여성 뮤지션의 현실적 고민과 선택


영화에서 잭슨은 여타의 신데렐라 스토리처럼 여주인공을 놀라운 삶으로 이끄는 조력자 역할을 수행한다. 그러나 <스타 이즈 본>에서 두드러졌던 점은 주인공 앨리가 왕자님의 구원을 기다리는 수동적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앨리의 탁월한 음악적 재능, 호쾌한 성격, 위협적인 상황에서도 굴하지 않는 강단은 그녀를 능동적인 주체로 만든다.



더 흥미로운 지점은 앨리가 완벽하지 않은 세계의 ‘완벽하지 않은 인간’으로 표현되고 있다는 점이다. 재능만으로는 톱스타가 되기 어려운 냉혹한 현실은 영화 속에서도 그대로다. 자신의 곡을 들고 음반 제작자를 찾아갈 때마다 “너는 코가 너무 커서 크게 되기 어렵다”며 퇴짜를 맞아온 앨리에게 외모 콤플렉스는 뼛속 깊이 남아 있다.

 

실력을 인정받고 대중의 사랑을 받는 자리에 올랐을 때에도 ‘남들에게 어떻게 보이느냐’는 그녀에게 너무도 중요한 문제였으리라. 무명 시절 자신의 이야기를 노랫말에 담아, 온 마음을 다해 노래하던 앨리는 스타가 되기 위해 대중에게 인기가 있을 법한 뻔한 멜로디 속에서, 기획사의 의도에 따라 훈련된 춤사위와 화려한 차림새로 대중을 유혹한다. 나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기보다 어떻게 보이느냐가 그녀에게는 현실적으로 중요한 문제였던 것이다.


잭슨에 의해 스타덤에 오르고, 잭슨에 의해 망신까지 감수해야 하는 앨리의 삶은 얼핏 보면 수동적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앨리의 선택이야말로 잭슨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원석처럼 빛나는 앨리의 모습을 보면서 잭슨은 다시 한 번 음악과 삶에 대한 열정을 느끼지만, 스타가 된 이후 자신의 색깔을 잃고 보편화되어 가는 그녀를 바라보면서 그는 더 깊은 절망의 늪에 빠진다.


얕은 곳에서 발견한 월드스타의 가능성


이 영화의 또 다른 묘미는 음악영화답게 그 음악에 있다. 주옥같은 수록곡들을 만날 수 있지만 단연 아카데미 주제곡상을 받은 ‘Shallow(얕은 곳에서)’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을 것이다. 영화 속에서 ‘Shallow’는 두 사람이 처음 만난 날, 앨리가 잭슨의 불우한 유년시절 이야기를 듣고 영감을 얻어 자신의 자작곡에 살을 붙인 노래다. 노래는 그날 밤 하나의 추억으로 묻혀버릴 수도 있었지만 잭슨은 그 노래를 ‘얕은 곳에서’ 세상 위로 끌어올린다. 노래는 잭슨과 앨리 각자의 인생을 담고 있는 동시에, 두 사람이 상처와 좌절 속에서 꿈을 향해 다시 나아갈 수 있는 기폭제가 된다.


I'm off the deep end

Watch as I dive in

I'll never meet the ground

Crash through the surface

Where they can't hurt us

We're far from the shallow now


깊숙이 빠져드네

내가 뛰어드는 걸 봐

바닥에 부딪히지 않고

뚫고 나가

상처 입지 않을 곳으로

얕은 곳에서 멀리 벗어나



노래는 영화를 넘어 현실의 두 슈퍼스타에게도 보다 새로운 세계를 향해 뛰어들 수 있는 가능성을 선사한다. 할리우드 미남 배우로 여겨졌던 브래들리 쿠퍼는 자신의 첫 연출작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 록스타를 연기한다. 실제로 6개월 간 매일 노래와 기타 연습을 했다는 그의 노력은 영화 속에서 그야말로 반짝반짝 빛난다. 화려함 뒤에 숨겨져 있던 레이디 가가의 음악성과 연기력 또한 반전이다. 드래그 쇼를 압도하는 샹송 실력에서부터 골목에 울려 퍼지는 무반주 라이브까지, 영화는 레이디 가가의 음악적 재능을 여과 없이 발휘하도록 한다.


무엇보다 나는 영화를 통해 두 배우의 음악을 향한 애정, 나아가 생에 대한 치열함을 절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어쩌면 뻔한 러브스토리. 하지만 두 슈퍼스타의 진정성을 목격하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의 가치는 충분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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