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갯속

by 배꽃

세상 이치에 어두운 사람을 두고 숙맥이라고 한다. 나는 마흔이 될 때까지 숙맥으로 살았다. 집 안에서 살림만 하면서 세상과 아우르지 못했다. 마음속에는 젊은 날 꿈을 펼쳐 보지 못한 아쉬움이 앙금처럼 남아 있었다. 그중에서도 공부를 하고 싶었지만 기회가 오지 않았다. 기회는 우연히 찾아왔다. 대학교에서 만학도 전형이 있었다.

환영식이 있던 날 내 소개를 하게 되었다. 연단에 서서 앞을 보니 현기증이 일었다. 머릿속은 텅 비었고 하고 싶었던 말도 잊어버렸다. 가슴은 뛰었고 심장 소리만 귓가에 맴돌았다. 이름 석 자를 잊고 살았던 나는 내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이름만 말하고는 연단을 내려왔다.

스무 살 적 내 인생은 안갯속에서 걷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안개에 싸여서 한 치 앞을 볼 수가 없었다. 사람들 앞에만 서면 울렁증이 일었다. 얼굴이 붉어지고 눈도 맞추지 못했다. 상급학교에 진학할 수 없었던 슬픔에, 인생의 방향 감각을 잃었던 것이다.

나를 소개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연단에서 내려왔던 날은 스무 살 적 찾아왔던 절망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두 아이를 낳고 키우다 보니 어느덧 불혹을 넘겼지만 여전히 사람들 앞에서 나에 대한 소개 한마디 하지 못한단 말인가.

문학기행이나 행사가 있을 때 빠질 수 없는 것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었다. 다들 노래를 잘 불렀고 말솜씨 또한 뛰어났다. 한마디 던지는 말도 웃음과 즐거움까지 곁들였다. 자신감이 상실되었던 나는 모임에서나 행사 때면 늘 귀퉁이에서 서성거렸다.

나는 이대로 물러 설 수는 없었다. 강단에서 말 한마디 못하고 내려왔다고 희망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빈 강의실을 찾아다녔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목소리를 내어 보았다. 목소리가 밖으로 나오지 않고 입 속에서만 웅웅거렸다.

한 달이 가고 두 달이 갔다. 한 학기를 마치고 한 해가 갔다. 청중도 없는 연단에서 목소리를 한껏 높였다 내렸다 반복으로 연습했다. 꽉 찬 강의실로 생각하고 가르칠 원고를 읽고 내용을 파악하고 수없이 공부를 했다. 빈 강의실마다 기웃거리며 하고 싶은 일을 하려고 발버둥 쳤다. 입 밖으로 나오지 않던 말이 어느새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캠퍼스에서의 생활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 4학년이 되자 여대생을 상대로 리더십 교육이 있었다. 2박 3일 동안 협동심을 바탕으로 아이디어를 구축하고 자신을 드러내는 시간을 가졌다. 열 명이 한 조였다. 여러 가지 주제를 놓고 열띤 토론이 시작되었다. 대학을 졸업한 후 앞으로의 진로문제가 가장 중심에 서 있었다.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자신을 소개했다. 졸업 후 진로 방향과 5년 10년 20년 후 자신의 모습을 발표했다. 스물이 갓 넘은 여학생들은 힘찬 목소리로 도도하고 생기 넘치게 자신을 드러냈다. 아름다운 젊은이의 모습이었다.

나도 저런 시절이 있었을까. 내 젊은 날은 어떤 모습이었을까를 생각하고 있는데 내 차례가 돌아왔다. 스무 살 적 내게도 꿈이 있었다. 마흔이 넘은 나는 아직도 꿈을 꾸고 있다. 그 꿈은 안갯속에 갇힌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희망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나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꿈속을 헤매는 무의식 중에도 희망을 품고 살았다. 학생들은 안개에 휩싸인 내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용기를 보듬어 주었다.

한 여학생은 자신의 어머니는 꿈이 있는지조차 관심이 없었다고 했다. 오로지 자식들만 바라보며 뒷바라지하는 존재로 여긴다고 했다. 어머니는 어머니일 뿐이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그러면서 교육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면 엄마이기 전에 한 여자로 대접할 것이라고 했다. 어쩌면 나는 그녀들과 공부를 같이 하면서 내 이름 석 자를 찾았는지도 모른다.

졸업을 앞두고 방과 후 독서지도와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 강사를 맡았다. 처음 수업하던 날 얼마나 떨렸던가! 교단에 서니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가진 아이들이 한눈에 들어왔고 이민자 여성들 또한 뿌리를 내리기 위한 삶이 돋보였다. 아이들의 얼굴이 맑고 순수했다. 그 표정 속에서 나는 행복함을 느꼈다. 강의를 한 지 몇 년이 지났다. 떨리는 것은 여전하다. 하지만 그 떨림을 이제는 즐길 줄 안다.

우리의 인생은 마치 안갯속을 걷는 것처럼 자신의 앞날에 대해 정확히 알 수가 없다. 나 역시 이십 대에는 그랬다. 절망이 보이자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었다. 희망의 빛을 만나지 못할 것이라 여겼다. 잿빛 구름 속에서도 실오라기 같은 희망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을 세월의 강이 흐르면서 알게 되었다.

인생 다 살았다고 너무 늦었다고 시작도 해 보지 않고 포기했다면 나는 지금 얼마나 재미없는 인생을 살고 있을까. 지금은 평생교육의 시대가 아닌가! 나는 지금도 하고 싶은 일이 너무나 많다.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안개 속이라고 해도 세상 떠나는 날까지 하고 싶은 일은 끝까지 해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