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곡의 노래를 부르기 위해

by 배꽃

노래를 잘하는 사람을 보면 부럽다. 눈을 지그시 감고 감정까지 살려서 분위기를 만드는 사람을 보면 넋까지 잃고 만다. 어떤 자리에서든지 마이크만 대면 기다렸다는 듯, 서슴없이 노래를 부르고 악기를 다루는 솜씨를 볼 때면 기가 죽는다.

나는 불혹의 중반이 넘을 때까지 남 앞에서 노래를 불러 본 적이 없었다. 끝가지 가사를 아는 노래가 없어서이기도 하거니와 음악적 감각이 없다 보니 그 흔한 노래방 가는 것조차도 꺼렸다. 저녁 모임이 끝나면 수시로 가는 노래방 출입도 불편했고 혼자서 소리 내어 노래를 불러본 적도 없었다.

친구들은 노래하는 옆에서 손뼉을 치고 흥얼흥얼 거리면서 몸을 살살 흔들면 된다고 했다. 하지만 음악소리가 쾅쾅 울리자 시끄럽다고 느끼면 슬그머니 노래방을 빠져나왔다. 연습을 해서 다음엔 후련하게 한 곡 정도는 불러 보고픈 마음도 그때뿐이었다. 그러다 보니 음악과는 담을 쌓은 거나 마찬가지였다.

몇 년 전 늦가을, 남편은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새로운 일을 하기 위해 구상 중이었다. 일 년이 지나고 또 한 해가 가도 뚜렷한 길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았다.

새벽에 하던 몇 푼의 아르바이트로 입에 풀칠만 근근이 이어가고 있었다.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앞이 캄캄했다. 보이지 않는 어둠의 긴 터널만 눈앞에 아른거렸다. 미래에 닥쳐올 두려움을 감내하기란 쉽지 않았다. 천장이 뚫어져라 한숨만 내쉬고 있었다.

봄은 왔다가 가고 또다시 찾아왔지만 우리 집엔 아직도 겨울에 머물러 있었다. 늦봄, 5월의 햇살은 눈부셨다. 투명한 하오의 햇살을 받은 이팝나무 꽃도 생기가 넘쳐났다. 호젓한 시골길을 달리는 버스 안에서 나는 터질 것 같은 울음을 꾸역꾸역 삼키며 어금니를 앙다물었다. 그때 일자리를 찾아가던 중이었다. 축 처져 있는 가족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고민하던 중 라디오에서 애절하게 들려오던 음악을 듣게 되었다.

어디선가 들어 본 것 같은 노래였지만 어떤 곡인지 알지 못했다. 이팝나무 꽃 사이로 부서지던 햇살처럼 청아한 소리로 느껴졌다. 그 멜로디와 가사는 마음 한구석을 저릿하게 했으며 두근거리게도 했다. 노래가 가슴을 울려본 적은 처음이었다. 나는 노래를 듣느라 내려야 할 정류장을 몇 코스나 더 가서야 하차를 하게 되었다. 먼지가 풀풀 거리는 시골길을 터벅터벅 걸어서 되돌아오는 길은 내 삶이 자꾸만 뒤처지는 기분이었다.

우린 결혼할 때도 아무것도 없이 시작했다. 문간방에서 월세로 몇 년을 허덕이고 전세방에서 전전했지만 한 번도 불행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남편이 회사를 그만두었을 때는 내 인생이 자꾸만 저만치 물러나는 것만 같았다.

내려야 할 곳을 잊게 했던 노래는 그 후 제목을 알게 되었고 삶이 벅차고 힘들 때 수시로 찾아왔다. 그러면서 노래를 듣는 시간이 많아졌다. 일을 하거나 텔레비전을 볼 때, 책을 읽으면서도 흥얼거리는 버릇이 생겼다. 문득, 노래를 배워서 소리 내어 불러보고 싶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따라 불렀다.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서른 번이고 노래 한 곡을 완전히 익힐 때까지 흥얼거렸다.

어느 해 문학회 연말 모임에서 노래방에 따라갔다. 문학행사가 끝나고 모인 자리였다. 나도 이번에는 뺀다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다. 반주가 나오자 두근거리는 마음을 뒤로하고 흥얼거렸던 노래 한 곡을 뽑아냈다. 노래가 끝나자 가슴이 더 떨렸지만 해냈다는 안도의 한숨이 몰려왔다.

나는 배우는 것에 뭐든지 남보다 뒤처졌다. 눈썰미도 없었고 계산법도 느렸다. 배워서 익히는 것도 수없이 반복해야 겨우 따라갈 수 있었다. 어렸을 적부터 그랬다. 남들이 몇 시간에 해내는 것을 나는 갑절 이상 걸려야 가능했다. 두세 배 아니, 열 배 이상은 노력해야 겨우 눈을 뜰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뭐든지 시작하면 포기하기가 시작하는 것보다 더 어려웠다.

라디오에서 나오는 노래를 따라서 부른다. 시작하는 부분에서 박자를 놓치기도 하고 음정이 맞지도 않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따라 부른다. 노래 한곡 속에는 어렵고 힘들고 아름답고도 슬픈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노래를 익히고 배우면서 알게 되었다.

누구에게나 인생의 겨울은 찾아올 수 있다. 내게 찾아올 겨울의 빈 들녘을 풍요로운 마음으로 준비하고 싶다. 아직도 노래 한 곡 멋들어지게 부르지는 못하지만 수시로 음악을 듣고 콧노래를 흥얼거린다. 그 노래는 힘들고 고달팠던 시절 위로와 힘을 주던 희망의 노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