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향한 첫 방

by 배꽃

큰아들이 대학입시에 떨어졌을 때였다. 일 년을 더 공부해서 자신이 원하는 대학교에 가고 싶다고 했다. 집에서 공부하면 좋으련만 아들은 굳이 도시로 나갔다. 인터넷을 통하여 방을 얻어놨으니 짐만 옮겨달라는 통보를 받았다.

옷 보따리와 이불을 챙겨서 아이가 얻어 놓은 방으로 몇 시간 달려갔다. 시끄러운 차 소리와 번잡한 거리에 자리 잡은 원룸에 들어서는 순간 깜짝 놀랐다. 두 평 남짓 될까. 네 식구가 발을 다 들여놓지 못할 정도로 좁은 방이었다. 책상과 의자가 놓여 있고 책상 한 귀퉁이 밑으로 일인용 침대가 반쯤 들어가 있었다. 아들이 침대에 누웠더니 몸의 반이 책상 밑으로 들어갔다.

한 면이 창문으로 된 방은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찬바람이 몰아칠 것 같았다. 삼월이 시작되었건만 방 안은 온통 냉기로 가득했다. 8차선 도로를 끼고 있는 원룸은 아무리 더워도 문을 열 수 없었고 칼바람 추위에 따뜻하게 해 줄 히터도 없는 곳이었다.

끼니가 더 문제였다. 아이는 입이 까다로웠다. 뭐든지 잘 먹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음식 한 가지를 먹어도 맛을 음미하며 모양과 색깔도 예사로 보지 않았다. 그런 아이가 학원 시간에 맞춰서 이른 아침에 일어나 밥을 찾아 먹어야 하고 설거지와 청소며 옷가지도 알아서 해야 했다. 옆에서 챙겨주는 사람이 없으니 혼자 장구치고 북도 쳐야 했다.

혼자 할 수 있겠냐고 몇 번이나 다짐을 받고 돌아오는 차에 올랐지만 비좁은 방에 아들을 혼자 두고 나오는 발걸음이 천근만근이었다. 내가 처음 직장 생활을 시작했을 때 나의 어머니도 이런 마음이었을까.

여고를 졸업한 나는 도시로 나와서 회사에 취직을 했다. 한 달 후에 회사 숙소에서 나와 가까운 곳에 단칸방을 얻었다. 시골에 있는 어머니에게 알렸더니 곧장 기차를 타고 달려오셨다. 짐 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양손에 들고 오셨다. 두 평 남짓한 방은 다리도 못 뻗고 새우잠을 자야겠다고 하셨다. 내 방이 생겨서 신이 난 나와 달리 어머니는 이렇게 작은 방은 처음 봤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제일 큰 보따리 하나를 풀었다. 어머니가 직접 수를 놓은 홑청에 솜을 넣어 만든 이불이었다. 딸이 취직이 됐다는 소리를 듣고 며칠 동안 정성을 들여서 만든 이불은 방이 너무 작아서 다 펴지도 못하고 반은 접어야 했다.

그날 처음으로 어머니 품에 안겨 오붓한 시간을 보냈다. 동생들에게 일찍 어머니 품을 내 준 나는 일찌감치 철이 들었다. 그날만큼은 어린아이가 되어 어머니 팔을 베고 누워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머니는 “살다 보면 네 방을 갖는 날이 있을 것이다.”라고 하셨다. 그건 아마 어머니의 소원일 수도 있었고 맏딸인 나의 앞날이 잘 되길 바라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일 년 사글세는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 다시 그 방을 재계약했다. 전세로 옮기고 싶었지만 적금 탈 때까지 기다렸다. 회사에서 퇴근을 하고 좁은 내 방으로 들어가면 적막강산이었다. 피붙이 하나 없는 도시에서 갈 곳은 오로지 두 평 남짓한 내 방뿐이었으니까.

집에서 살 때는 늘 꿈꾸었던 나의 방이었다. 네 명의 동생들과 한 방에서 지지고 볶고 싸울 때면 온전한 자유를 누리길 얼마나 바랐던가. 새로운 세상 속에서 나만의 젊음을 불태우고 싶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막상 내 방을 갖고 나 혼자만의 생활을 누렸지만 동생들이 그립고 부모님이 애타게 보고 싶었다.

어느 초겨울이었다. 회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니 썰렁한 방이 춥게 느껴졌다. 번개탄에 불을 붙이고 연탄을 피웠다. 깔아놓은 이불을 덮고 잠시 누웠는데 나도 모르게 스르르 잠이 들었다. 누군가 부르는 소리는 들렸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마침 주인아줌마가 딸 시집보냈다며 떡을 가지고 와서 문을 두드렸다. 아무리 불러도 기척이 없었다며 나를 깨운 것이다. 아줌마는 119를 불러 병원 응급실로 향했고 내 입에는 산소 호흡기가 꽂혀 있었다.

그 해 겨울을 보내고 새봄이 돌아오자 나는 나의 첫 방을 떠났다. 2년 부었던 적금을 탔고 좀 더 넓은 방을 구했다. 두 칸짜리 방이었다. 리어카에 짐을 싣고 옮겼다. 처음 방을 얻었을 때보다 짐이 두 배 정도 늘었다. 시골에서 학교에 다니는 동생들을 한 명씩 순서대로 데려왔다. 그러다 보니 나중에는 가족이 모여 살 수 있는 여러 개의 방이 있는 집이 생겼다.

옛날의 그 첫 방이 너무 궁금하여 얼마 전에 찾아갔더니 도로와 건물이 새로 들어서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누구에게나 첫 방은 잊지 못할 공간일 것이다. 세상에 처음 발을 디딜 때처럼 첫 방은 평생 잊지 못할 공간으로 남는다.

아들은 자신의 첫 방에서 대학교에 입학을 했다. 교환 학생과 인턴으로 갈 때는 몇 달 동안 비워 두었던 방이다.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기 위해 수없이 많은 방을 거쳐야 하겠지만 내가 그랬듯이 아이도 두 평 남짓한 그 방은 잊지 못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