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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skyea Sep 15. 2020

계시키 산책 일기 | Prologue

계씨 집안에 찾아온 작은 생명체

2019년 7월 말, 홀리데이 뮤직 페스티벌에서 한껏 놀다가 돌아온 늦은 주말 저녁. 집에 들어서자마자 아빠가 말했다. '집에 강아지 있다' 응?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 강아지라면 털날린다고 질색팔색 하던 엄마 때문에 우리 집에 인간 외에 다른 동물이 사는 건 금지인데, 어떻게 아빠가 집에 강아지가 있다고 말하는 것인가. 거실로 들어가 소파 밑을 보니 정말로 작은 시고르자브종같은 누렁 애기 강아지가 잔뜩 겁을 먹은 채 소파 밑에 쏙 들어가 있었다. 가여운 것을 꺼내려고 갖은 애교 있는 목소리를 내는 척하며 '나와'라고 했지만, 저 아기 강아지 눈엔 그저 무섭기만 한 큰 괴생명체 정도로 보였으리라. 물은 마셨을까 싶어, 엄마가 세숫대야에 받아놓은 물을 가지고 애기 앞으로 가져다줬지만, 자기 덩치보다 큰 세숫대야마저도 무서웠던 거 같다. 그래서 정성스럽게 손으로 물을 떠 입 앞에 가져다주니 그제야 물을 홀짝홀짝 마시기 시작한다. 그렇게 우리의 첫 만남이 시작되었다.


사실 나는 동물을 좋아하지 않았다. 가장 어쩔 줄 몰라하는 두 가지 경우가 있는데, 첫 번째는 아기 사진을 보여주며 귀엽지? 하는 사람이랑, 핸드폰 속 잔뜩 저장된 반려동물 사진을 보여주는 케이스다. 그럴 땐, 어색하게 미소 지으며 '하.. 하.. 참 귀엽네요'라고 억지스럽게 말하며 이 순간이 끝나길 기다릴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이 작은 생명체가 우리 집에 온 걸 아는 순간 그냥 모른 채 할 수가 없었다. 우리 집에 온 게 너무 불쌍했기 때문이다. 이 작은 생명체가 우리 집에 온 계기는 이렇다.


아빠는 젊었을 때부터 건강과 관련된 갖은 질병을 겪어온 사람이다. 30대 때는 해외에 돈 벌러 나갔다가 크게 교통사고를 당했으며, 내가 초등학교 다니던 시절에는 아빠가 중풍을 앓고 쓰러진 적이 있다. 그리고 10년 전부터는 위가 좋지 않더니 위암이 걸렸다. 물론 지금은 수술 후, 잘 관리하며 지내지만 건강과 관련해서는 너무 힘든 시기를 많이 보냈다. 그런 아빠가 걱정되는 엄마는 젊은 시절부터 절에 다니며 아빠를 위해 밤낮없이 기도했다. 그러던 중 엄마 인생의 멘토이자 절대적 존재, 스님이 이런 말을 하셨나 보다. '강아지를 같이 키우면, 강아지가 인간의 수명을 연장해줘' 아빠의 안녕이 엄마의 최대 안녕이기 때문에 엄마는 강아지를 별로 안 좋아하지만 그럼에도 아는 분을 통해 입양하기로 했다. 그리고 이렇게 이 작은 생명체가 우리 집에 오게 된 것이다. 아빠의 건강을 위해서.


서울 근교에 아빠의 작은 창고가 있다. 엄마와 아빠는 그곳에서 강아지를 키우려고 했다. 그리고 창고 주변에 들고양이가 많이 들락날락하며 창고 안을 헤집어놓아 고양이를 쫓을 겸해서 창고에 두기로 했다. 성견이 되면 아파트 안에서 키우기도 어려울 것 같아, 그게 좋은 것 같았으나 이 작은 것을 창고에 놓고 키운다고 생각하니 이건 감정을 가진 인간으로서 말이 안 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아직 태어난 지 2개월밖에 되지 않았으니, 2-3개월만 집에서 키우다가 좀 더 크면 데려놓자고 했다. 이렇게 점점 내 안에서는 작은 생명체에 대한 책임감이 커져가기 시작했다. 아빠는 세상에서 제일 무뚝뚝한 사람이라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고 엄마는 사랑은 넘치나 강아지에 대해 아는 게 없었다. 심지어 집에는 개밥그릇 하나 없어, 종이컵에 사료를 불려서 줬으니. 강아지의 ㄱ도 모르는 집에 와서 불행하게 만들 수는 없었다. 내가 돌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하지만 나도 아는 게 전혀 없었다. 정성스럽게 물을 떠먹여 줘서인지 나한테 조금 마음을 열었는지 내 방까지 따라왔다. 강아지 안는 법을 전혀 몰라 어정쩡하게 들어서 침대에 올려두고 우리는 둘만의 인사를 했다. '너의 이름은 이제 시키다. 계시키'


계씨네 집에서 첫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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