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묘 중인 마음들
너는 내 돈을 낭비하고 있어! 내 돈을 갈취하고 있어!
내 아들은 소년이야, 아기 취급하지 마!
Intellectual Disabilities (ID- 지적장애) 판명을 받은 2학년 남학생, 제이크의 엄마가 내게 한 말이다. 그 여름, 제이크는 Extended School Year (ESY; 연장된 학교 일정; “여름학교”라고 보면 된다)의 내 1개월 단기 학생이었다.
Extended School Year (ESY; 연장된 학교 일정; 여름학교)는 일부 특수교육 학생들에게 여름 방학때 제공되는 단기적인 부가 무상 공교육 서비스이다. 서비스를 받을 만한 학생에 부합되는지의 여부는 여러 항목들 (이 학생은 방학때 수업을 받지 않으면 능력을 상실할 수 있는가? 일반학기때 성공적인 획득이 있었는데, 방학때 지속적인 수업을 받지 않으면, 능력 상실의 우려가 있는가? 장애의 정도가 심해서 지속적인 수업이 필요한가?)을 통해 점검을 한 후, 학교팀에 의해 결정된다. 이 항목들 중 하나라고 부합되면, 여름 한 달간 매일 약 3시간 20분 정도의 단축된 오전 수업을 받을 수 있다. 카운티에서 지역별로 선별한 몇몇 학교들만 ESY를 위해 여름에 학교를 오픈하고, 부근 지역의 여러 학교의 학생들이 ESY 학교로 총집합한다.
부모와 학생 입장에선 여름학교는 긴긴 여름을 의미있게 보낼 수 있게 해주는 고마운 무상 서비스이다. 그런데, 카운티는 학교 선정, 스쿨버스 배치, 참가자들의 특성 파악, 희망교사 모집, 안전 수칙 엄수, 자료준비 등 대대적인 기획을 해야하기에, ESY 여름학교 전담팀까지 운영하며 큰 수고의 과정을 겪는다.
가장 중요한 건, 여름학교 교사 모집이다. 교사가 없으면 학교는 단 한 순간도 운영될 수 없다. 아무리 부수입의 유혹이 있어도, 대부분의 교사들은 여름 업무를 단호히 거절한다. 누구도 소중한 7월을 온전히 포기하고, 학생들과 씨름하며 골치 아픈 서류와 씨름하고 싶지 않은 것이 이 구역의 인지상정이다.
그래서 카운티는 달콤한 미끼를 던진다. 높은 시급, 3일간의 유급 준비 기간 (학생 없이 자료 준비만 하는 날), 때로는 보너스까지. 그 달콤한 유혹에 걸린 특수교사들과 자격을 갖춘 일반 교사들이 여름학교로 총출동한다. 나 역시 그 미끼에 걸려, 그해 여름, 첫 ESY 여름학교의 그물에 포획되고 말았다.
초등학교 2학년 제이크는 내가 처음 경험해본 신체 장애 (휠체어)와 지적 장애를 가진 학생이었다. 제이크는 Intellectual Disabilities Severe (IDS-심한 지적장애) 라고 불리는 특수학급이 있는 초등학교에 다녔으나, 여름학기에는 해당 반이 운영되지 않아, 부득이하게 내 자폐 학급에 배정되었다.
내 여름학교 클래스의 90% 학생들은 Autism Spectrum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학생들이었고, 고기능 자폐증 (언어 및 인지 능력이 비교적 양호한 학생들) 및 심한 자폐증 (언어 및 행동 장애가 심한 학생들)이 섰여 있었다. 나는 그동안 자폐증 학생들과 수업을 해왔기에, 주로 심리적인 밀물/썰물타기 전략을 활용하며 수업을 이끌어가는데 익숙했다. 그러나 제이크는 그런 심리전이 필요 없는, 그래서 더욱 생소한 학생이었다.
제이크는 소통을 위해 터치 스크린 디바이스를 사용했지만, 인지 능력 및 손근육 능력이 현저히 낮았기에, 옆에서 누군가 지속적으로 1:1 prompts (일대일 적극적인 도움)을 계속 제공해야 했다. 내 반에 배정된 2명의 보조 교사 중 한명이 제이크 옆에서 전담 보조를 하도록 했다.
제이크는 주변의 물건들을 발견하는 즉시 입에 넣었다. 그래서 삼킬 수 없는 큼지막한 물건들만 제이크 곁에 두었다. 입에 넣을 만한 물건이 없으면, 제이크는 본인 손을 마구 물어 뜯었다. 음식 섭취 시에도 밀착 도움이 필요했고, 혹시라도 질식할까 봐 지켜보는 내내 가슴이 철렁거렸다.
휠체어라는 큰 물리적 보조기구에 위축되기도 했고, 끊임없이 물건을 입에 넣는 제이크를 바라보며 질식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에 마음이 몹시 불안했다.
여름학교 첫 날, 제이크의 휠체어 안전벨트에서 작은 핀 1개가 떨어져 나간걸 발견했다. 벨트를 채우는데 문제가 없었고 안전에 지장은 없었지만, 부모한테 이메일을 통해 알렸다. 부모는 곧바로, 부속품을 직접 구입해 고치겠다는 회신을 보내왔다.
제이크는 sippy cup (양 손잡이가 달린 유아용 컵)을 사용해서 우유를 마셨다. 부모가 우유가 담긴 이 컵들을 매일 2개씩 보냈다. 어느 날, 실수로 우유통을 집에 보내지 않은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 날 부모에게서 이메일이 왔다.
내용의 요지는:
휠체어 부속품을 구입해서 휠체어를 고쳤다. 쓰지 않아도 될 돈을 너 때문에 썼다. 너는 우리의 돈을 낭비하고 있다. 너는 내 돈을 갈취하고 있다!
내 집에는 sippy cup이 필요한 아이들이 3명이 있다. 너는 내 아이들의 sippy cup을 갈취했고 내 돈을 낭비하고 있다. sippy cup을 돌려달라. 돌려주지 않으면, 더이상 나는 sippy cup을 학교에 보내지 않겠다.
억측 궤변에 당황했다. 휠체어 핀 분실이 어디서 발생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우유통의 전말도 단순했다. 친절한 보조교사가 제이크의 우유통을 씻은 후 싱크대에 두었던 탓에, 그날만 실수로 보내지 않았던 것이다. 다음 날 보내면 해결될 문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는 나를 “이빨 자국이 가득한 낡은 유아용 sippy cup을 탐한 자”로 단정 지었다. 그래도 마음 한켠에는 ‘그날 학생 소지품을 제대로 점검하지 못했나’라는 자책이 스며들어 불편했다.
결국 여름학교 디렉터한테 상황을 알렸고, 담당 Procedural Support Liaison (PSL- 특수교육을 받는 학생들의 부모와 교사들 사이를 중재하는 관리자)이 도움을 줬다. PSL은 그 부모를 아주 잘 알고 있었고, 교사들한테 화풀이하기로 워낙 유명한 부모라는 것을 이미 인지하고 있었다.
“그 부모들한테 장애아가 3명이 있는데, 첫째는 심한 신체/지적 장애를 가진 제이크 (내 여름학교 학생), 둘째와 셋째는 심한 자폐를 가진 아이들이야. 그 엄마가 3명의 아이들한테 시달리면서, 그동안 교사들한테 화풀이를 해왔어. 우리 모두 그 엄마가 얼마나 힘든 엄마인지 잘 알고 있고, 네 입장을 이해해. 내가 연락해서 처리할테니, 아무 걱정하지 말고, 너는 네가 해온것 처럼만 잘하면 돼.”
그래서 내심 안도했다. ‘아, 내가 욕받이였구나. 그런데 나만 욕받이가 아니었구나."
중재자 역할을 해준 PSL에게 감사했다. 미국은 이렇게 교사가 학부모에게 시달리지 않도록 교장, 교감 혹은 PSL이 중재자 역할을 해준다. 물론, 교사가 학생에게 명백한 아동학대를 한 경우에는 즉각 체포되고 법적 처벌을 받는다. 그러나 학부모의 억측과 오해로 발생한 분쟁이라면, 교사는 손을 떼고 자신의 업무에만 집중할 수 있다. 교사는 교사 일을 하고, 학교 관리자가 분쟁과 마찰을 처리하는 것이 이 구역의 상식이다.
어느 날, 하교 준비를 하는데, 제이크가 본인 목에 걸고 있는 Chewy (입에 넣고 질겅거릴 수 있는 고무/실리콘 재질의 감각 장난감)를 입으로 뜯는 것을 발견했다. 목걸이 형태의 Chewy는 지속적인 씹기와 우물거림 자극이 필요한 학생들에게 주로 사용되는 감각 장난감이다. 그날은 쿠키 모양 Chewy가 조금 뜯어지고, 랜야드에 달린 작은 플라스틱 단추도 떨어져 나갔다.
제이크가 작은 조각들과 플라스틱 단추를 삼킬까봐 걱정되어, 나는 Chewy를 빼앗아 봉지에 넣고 상황을 설명한 메모와 함께 집으로 보냈다. 제이크가 본인의 Chewy를 망가뜨린 건 이번이 세 번째였고, 부모의 억측과 불평이 우려되어 매번 이렇게 처리했다. 이날은 임시방편으로 내가 가져온 유아용 Chewy 커다란 실리콘 소재)를 그의 목에 걸어 주었다. 그런데 이것이 화근이었다. 그날 바로 이메일이 왔다.
내용의 요지는:
네가 내 아들의 Chewy를 계속 망가뜨리며, 내 돈을 낭비하고 있다. 네가 제이크한테 보낸 Chewy는 유아용이다. 내 아들은 유아가 아니라 소년이다. 소년에 걸맞는 Chewy를 목에 걸어야 한다.
담당 PSL한테 또 알렸다. PSL은 새 Chewy 10개를 구입해와서는 모두 집으로 보내주라고 조치했다. 부모가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고, 장애 아이들을 돌보며 정신적으로 지친 상태임을 고려한 배려였다. 레고 모양, 아이스크림 모양 등 알록달록 귀여운 Chewy들을 보냈고, PSL의 중재 덕분에 사건은 잠잠하게 마무리되었다.
여름학교 마지막 날, 제이크 엄마에게서 또다시 이메일이 도착했다. 발신자 이름을 보는 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러다 정말 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PTSD-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라도 생기는 건 아닐까 싶었다.
내용은:
고맙다. 제이크가 매일 웃는 얼굴로 집에 왔다. 분명 여름학교 내내 즐거운 추억을 쌓았을거라고 생각한다. 제이크를 위해 수고해줘서 고맙다. 남은 방학 잘 보내길 바란다.
회신은 하지 않았다. 제이크 엄마의 파묘가 여기서 멈추길 바래서였다. 더이상 그 엄마의 감정의 묘를 건드리고 싶지 않았다. 그 땅 밑에는 애써 묻어둔, 세상 밖으로 나와선 안 되는 것들이 도사리고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녀의 내면의 땅에서 나와서는 안될 것이 나오는 걸 굳이 보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한편으론 생각했다.
그 여름, 나 역시 안도감, 속상함, 불편함, 안타까움이 뒤엉킨 미묘한 감정의 파묘를 겪었다. 그런데, 감사했다.
앞으로도 어딘가에서 또 다른 파묘 중인 학부모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들의 감정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선, 나 스스로 단단한 중심을 세워야 했다. 학부모의 파묘에 휘둘리지 않을 결심이 필요했다.
그 여름, 내 안의 파묘를 통해 감정들을 들여다보고, 흐르게 하고, 흘려보낼 수 있었기에, 미리 이 순환의 과정을 겪을 수 있어서 감사했다.
파묘는 아프지만, 언젠가 그 자리에 새로운 감정의 싹이 자란다. 나는 그 순간들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있는 중이다.
어떤 감정이든, 묻혀 있는 채로는 끝나지 않기에. 파묘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