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름, 자폐 삼둥이 남매
Catch them! Ms. Lee, catch Aaron! Ms. Catherine, catch Arthur! I will catch Amy! (저들을 잡아라! 미스리, 아론을 잡으시오! 미스 캐서린, 아서를 잡으시오! 내가 에이미를 잡으리!)
무전기를 들고 있던 디렉터가 우리에게 외쳤다. 나를 비롯한 3명의 특수교육 교사들이 3갈레로 흩어져서 질주하는 3A (Aaron 아론, Amy 에이미, Arthur 아서) 학생들을 잡기 위해 뛰기 시작했다!
도망자 학생들을 추격했던 전력이 있기에, 달리기에 자신 있었다. 그런데, 내가 그 날 쫓는 학생은 우사인 볼트 (자메이카의 육상 달리기 선수로 세계 기록의 보유자, 번개처럼 빨라서 라이트닝 볼트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였다! 초등 3학년인데도 중1 정도로 보이는 큰 키에 늘씬한 근육질 몸을 가진 아론은 올림픽 결승전에서 신기록을 세우듯 달렸다.
“S..S…Sto…Stop! (스.. 스..스토..스탑!)”
300미터는 족히 뛴듯하다. 3학년 우샤인 볼트가 뒤를 돌아, 나를 힐끗 보더니 씨익..웃는다! 그리고는 덜커덩! 교문을 열고 나간다! 나가면 바로 주차장, 주차장을 50미터만 벗어나면 4차선 큰 차로이다.
나 역시 문을 박차고 나갔다. “악!” 순간, 허벅지 앞쪽에서 “푹!” 소리가 나고, 마치 덫에 걸린 듯, 몸이 멈춰섰다. 허벅지 앞 쪽 어딘가 찢어지는 통증이 몰려왔다. 근육 어딘가가 파열된듯했다. 허벅지를 양손으로 쥐고 간신히 다리를 끌며 아론을 찾아봤다.
"Hohohohohohoho..Hahahahahahaha (호호호호호…하하하하하하하)"
산타 할아버지같은 걸죽한 호탕한 웃음소리에 몸을 돌려보니, 주차장 부근 화단 옆에 웅크린채 웃고 있는 도망자를 발견했다!
야! 이 노노오오오오오옴!
욕은 한국말이 먼저 나온다! 한여름의 산타의 얼굴을 그제서야 처음으로 정면으로 봤다.
‘너, 얼굴도 우사인 볼트 닮았구나’
그 여름, 우리의 첫 만남은 이렇게 시작됐다!
일부 공립학교 특수교육 학생들은 여름 방학때도 학교에 간다. Extended School Year (ESY; 연장된 학교 일정; “여름학교”라고 보면 된다)라는 무상 프로그램을 받기 위함인데, 여름 한 달간 매일 약 3시간 20분 정도의 단축된 오전 수업을 받는다.
Extended School Year (ESY)는 여름 방학때 연정된 학교 수업을 받지 않으면, 일반 학기동안 타격을 심히 받을 수 있는 학생들에 한해서 제공되는 무료 부가 서비스이다. 카운티에서 지역별로 선별한 몇몇 학교들만 ESY를 위해 여름에 학교를 오픈하고, 부근 지역 여러 학교의 학생들이 ESY 학교로 총집합한다.
여름 방학때, 부수입을 원하는 특수교육 교사들, 그리고 특수교육 자격증이 있는 일반 교사들 또한 여름학교로 총출동한다. 미국 교사들이 여름방학 (2달; 6월 초중순-8월 초중순)을 너무도 귀하게 생각하는게 인지상정인지라, 그 누구도 여름 근무를 강요하지 않는다. 그러나, 돈이 여름 근무를 유혹한다. 하루 하루가 너무도 귀한 여름 방학이지만, 딱 한 달! 오전 4시간만 일하면 약 980만원 (환율 1300원 기준)의 부수입이 생긴다면 이 얼마나 큰 딜레마인가? 참고로, 여름 근무의 페이는 모든 여름 학교 교사들에게 동일하게 적용된다. 나 역시, 돈의 유혹 + 호기심에, 그 여름, 첫 ESY 근무를 신청했다.
세 쌍동이라고? 자폐 세 쌍동이?
여름 근무 확정을 받은 후, 학생들 리스트를 받았는데, 어랏! 이상했다. 3학년 3명의 학생들의 Last Name (성)이 같았다. 그리고 이름의 첫 알파벳 A가 같았다. 이 이니셜이 같은 3종 세트 아이들이 ‘서.. 설마 세 쌍동이?’ 시스템을 통해 학생들 상세 정보를 조회해보니, 부모 이름이 같다. '맞구나! 삼둥이 남매들!' 첫째 남자 아이 아론, 둘째 여자 아이 에이미, 셋째 남자아이 아서.
개강 전, 학생들의 문제 행동 및 특이사항을 미리 파악했는데, 그 어디에도 “Eloper” (도망자)라는 문구가 없었다. 그래서 여름 학교 첫 날, 세 쌍동이 남매들이 모두 도망자가 되어, 세 갈래로 도주하리라곤 예상을 못했다.
자폐 스펙트럼 (Autism Spectrum)을 가진 학생들 중, Elopement (도주)의 문제 행동을 갖고 있는 경우가 있다. 내 학급의 일부 학생들도 도주 행각을 자주 했기에, 나름 내가 유연한 대처를 한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이 도주를 하는 주된 이유는 attention-seeking (관심 받으려고 유도하는 행동)이다. 도주를 하면, 교사가 반응하고, 놀라며 쫓아오기에, 그런 교사의 당황하는 모습을 즐기는 도망자의 케이스가 대다수이다. 이런 경우, 놀라지 않은 척, 재미 없는 척, 도망자 놀이에 관심 없는 척을 해야 한다. 그래야 학생이 흥미를 잃고, 도망가던 길을 멈추고 돌아온다. 그렇다고 도망치는 아이의 뒷통수만 보며 방관할 수도 없으니, 아이의 특성을 미리 파악하고 밀당의 심리전을 해야한다.
도주하는 학생이 사고를 당하면 누구의 책임이냐고? 학교의 책임이다. 그럼, 도주 방지를 위해 교실 문을 잠그거나, 장애물로 문을 막아놓으면 안되냐고? 인권보호 때문에 법에 저촉되는지라 안된다. Restraint and Seclusion (구속과 고립)이라는 명분 하에 학생들의 자율적인 움직임에 대한 구속과 비자발적인 고립은 절대 할 수 없다.
그러니,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소 잃기 전에 외양간을 잠그거나 막을 수 없는 노릇이다. 그저, 외양간에서 탈출하는 소를 뒤따라 같이 뛰거나, 소와 심리전을 하는 수 밖에 없다.
삼둥이들의 경우 사전 정보가 부족한 상황이었기에, 교사들이 외양간에서 도주한 소를 쫓게 된 셈이다. 지독한 외양간 소 추격전으로 인해, 난 여름학교 한달 내내, 오른쪽 허벅지 통증으로 제대로 걷지 못했다. 980만원의 댓가는 꽤 컸다.
3A (Aaron 아론, Amy 에이미, Arthur 아서)는 생김새, 성격, 성향, 취향이 아주 달랐다. 단지, 같은 것이 있다면, 삼둥이라는 질긴 끈으로 묶였다는 것 그리고 자폐 스펙트럼 (Autism Spectrum)라는 진단명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첫째 아론은:
말을 참 잘 했다! 그것도 래퍼처럼 참 잘지게! 에미넴 (대중음악 힙합 래퍼)처럼 유연하게 몸을 흔들며 빠른 랩들을 독특한 음정으로 쏟아냈다. 수업 시간 3시간 중 2시간은 F Words (F로 시작하는 거센 욕설), F F F F F 청산유수 "내 귀에 캔디" 찰진 욕설들로 우리반을 뜨겁게 달궜다.
"F000, F000, I don't wanna be here, who am I, who are you? who are they? where am I? F000, F000, let me go, let me be, let the world abandon me!" (F, F, 나 여기 있기 싫어, 나는 누군가, 너는 누구니, 느덜은 누구니, 나는 어디에? F, F, 나를 냅둬, 나를 가만둬, 세상이 나를 버리게 냅둬). 창의적인 문장들에 웃음이 났지만, 무시하거나 다른 일에 관심을 돌리도록 유도했다.
아론에게 "하루 5도주"는 기본이었다. 도주하면, 이미 짜놓은 “도주 플랜”으로 대처했다. 무전기로 “Aaron is running to door 1” (아론이 1번 문으로 도주한다)고 신호를 보내면, 복도 곳곳에 대기 중인 다른 교사가 추격 대신, 미리 1번 문 앞에서 대기했다. 아론은 타인에게 상해를 일삼았다. 늘상 주먹을 불끈쥐고 제자리 뛰기를 연신 반복하며, 마이크 타이슨 (프로 복서)처럼 핵주먹을 날릴 태세를 갖췄다.
둘째 에이미는:
문제 행동이 심각했다. 주변의 물건들을 입에 넣거나 던지는 행동을 일삼았고, 늑대처럼 공중에 표효하며 울부짖었다. 말을 못했고, 간단한 제스쳐로로 소통이 불가했다. 늘 표정이 어두웠고 깊은 상심에 젖어있는 모습이었다. 아론처럼 도주를 일삼았다. 도주 중에 금새 잡히기는 했으나, 이어지는 일탈행동으로 제지가 힘든 학생이었다.
막내 아서는:
스윗하고 부드러운 학생이었다. 늘 함박웃음으로 아침 인사를 했고, 줄곧 규칙을 따랐다. 다른 둥이들처럼 큰 일탈행동은 없었지만, 도움이 많이 필요한 힘든 학생이었다. 쌍동이 형 아론의 행동을 따라하느라 도주를 몇번 시도하지만, 관심을 보이지 않으면 바로 멈췄다. 말을 못했지만, 언어 대신 제스쳐로 소통이 가능했다.
삼둥이 학생들의 문제 행동이 심각했지만, 내 반에 전임 보조교사 2명이 있었고, 디렉터들이 자주 순회하며 도움을 줬기에 감사했다. 무엇보다, 우리에겐 3가지 공통점이 있었기에, 그 유대감이 그 여름을 버티게 했다.
전교생 모두 우리의 도움이 절실한 특수교육 학생들이라는 것!
교사들 모두 특수교육 학생들을 위해 한마음으로 이 곳에 총집합했다는 것!
우리의 여름방학의 댓가를 이곳에서 함께 치르고 있다는 것!
여름학교가 끝나갈 무렵, 갑작스러운 이메일을 받았다. 그동안 삼둥이 아빠하고만 소통을 했었는데, 엄마한테서 처음으로 이메일이 왔다.
삼둥이 엄마의 이메일 요지는:
아이들의 사랑스러운 사진들을 보내줘서 고맙다. 아이들이 너무 보고 싶었는데, 이 사진들을 보며 위로를 받고 눈물이 났다. 아이들의 아빠와 이미 이혼했고, 현재 양육권 소송 중이다. 지금은 아이들의 아빠가 아이들의 양육권을 전적으로 갖고 있으나, 소송에서 이기면 내가 아이들을 내가 살고 있는 주로 데리고 올 것이다. 현재는 내가 너무 살고 있고, 또한 접근 금지 상태라서 못 만나고 있지만, 아이들을 곧 데려올 그 날을 소망하며 지내고 있다.
삼둥이 부모가 이혼한지 몰랐다. 보호자란에 2명의 부모 정보가 기재되어 있길래, 매주 금요일마다 아이들의 즐거운 모습을 담은 사진들을 그들에게 보냈었다. 삼둥이 엄마의 이메일이 워낙 민감한 내용을 담고 있어서 회신을 하진 않았다. 대신, 아이들의 학교 교장한테 이메일을 포워딩하고 알아서 처리하도록 요청했다.
삼둥이들이 떠난 책상에 앉아 가만히 생각해봤다. '삼둥이 엄마는 여름학교 단기 교사인 내게 왜 이런 메세지를 보냈을까?' 그녀에게 답답한 마음을 토로할 임시창구가 필요했는지 모르겠다.
내게 한달간 허벅지 통증, 손톱자국 흉터, 멍자국을 남긴 학생들이라 그저 4주가 빨리 지나길 바랬다. 이 괴팍한 남매들과 빨리 굿바이하길 바랬다. 그런데, 나는 삼둥이 엄마가 간절히 원해도 갖지 못하는 시간을 4주씩이나 갖고 있었다. 삼둥이 부모에게 시험관 시술로 힘들게 얻은 이 세 아이들이 얼마나 귀할까? 삼둥이들이 얼마나 감격스럽고 사랑스러운 꼬물꼬물 예쁜 아가들이었을까? 삼둥이 엄마는 이 아이들이 얼마나 그리울까?
다시한번 느꼈다. '내겐 일부인 이 아이들이 부모에겐 전부인것을.'
이 구역의 도망자들을 붙잡는 손길이, 누군가의 세상 전부를 붙잡고 있는 손길이라는 것을.
그래서 오늘도 나는 이 구역의 "도망자들"을 잡으며, 내 마음 한구석의 사랑을 다시 잡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