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라면

호르륵 함께 먹기

by 미스리
우리 비행기는 잠시 후 인천공항에 도착할 예정입니다.


“우리”라는 말에 마음이 멈칫한다. “비행기”라는 일반 명사 앞에 소유를 나타내는 지시 형용사로 사용된 “우리”라는 단어가 낯설어서일까? 내가 타고 있는 비행기, 우리가 타고 있는 이 비행기가 집합적인 소유로 쓰여서일까?


미국에서는 그럼 “우리의”라는 단어를 쓰지 않냐고? 아니다. 미국에서도 “our (우리의)”라는 단어를 일반명사 앞에 사용하고 비행기 앞에 our라는 단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Thank you for choosing our airline and enjoy your flight (우리 비행기를 선택해줘서 고맙고 즐거운 비행 하길 바란다)”처럼…



지극히 개인주의 문화에 반신욕하듯 어정쩡하게 몸담았던, 흘러간 어쩌면 잃어버린, 나의 어쩌면 우리의 20년간의 세월. 그 부담스러운 2자리 숫자 속에서 잊고 있던, 감추고 있던, 어쩌면 잃었던 모국어 “우리”라는 단어에 “마음 정지”가 왔다.



낯익은 언어, 낯선 어휘에 나는 나에게 ‘너는 한국인, 교포, 이방인, 외톨이…어쩌면 잃어버린 사람 (돌아온 탕자?)이냐’’고 묻는다. 그리고 무엇을 얻었고 무엇을 잃었는지 묻는다.


얻었다.


이방인으로 숨죽이며 숨고르며 살았지만 얻었다. 새로운 가족, 정체성, 가치관, 공동체, 언어, 학위, 직업…


그리고 잃었다.


어쩌면 많이. 이번 한국 방문 기간 동안, 나의 우리의 잃어버린 것들을 찾아보려고 한다.




우리 딸이 옥수수 두 푸대, 떡 세박스를 택배로 보냈당께! 이따 와! 우리 같이 나누게!

시골 교회 어르신들이 목사님 설교 중에도 시끄러운 귓속말을 하신다.


아따, 저 선풍기 대그빡이 어째 저리 안돌아간대. 우리 영감이 고쳤다드만. 그 손모가지로 뭔지랄을 했능고, 더 못 쓰겄네!

어르신들이 교회 예배 중에 지팡이로 선풍기 대그빡을 툭툭 수동회전 시킨다.



우리 권사님, 어째 더 젊어지셨네! 더 이뻐지셨네! 우리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게!

80대 어르신이 90대 어르신의 90도로 굽은 허리를 감싸며 젊음 칭송을 하신다.



우리 어매가 드시고 싶다고 해서 많이 했지! 우리 다같이 먹으면 좋응께, 많이 드쇼!

이른 아침, 옆집 이웃이 찹쌀밥이 한가득담긴 김 모락모락나는 양푼을 두고 가신다.



여기좀 봐봐봐, 허이고. 어젯밤부터 여그서부터 여그까지 다리를 못 펴겄어, 며칠전까진 암씨랑도 안혔는디, 이 사단이네!

뒷집 어르신이 몸빼바지를 훅 내리고는 “여그서부터 여그까지” 골반과 다리 라인을 훤히 내놓으신다. 엄마는 암씨랑도 않은 듯, 커다란 파스 5장을 테트리스하듯 정열 맞춰 내리 붙이고, 영양제를 드리고, 고주파 마사지 테잎을 붙여 놓는다.


우리 형님 다리가 그래도 탄탄하네! 금새 나을꺼여! 또 와잉! 우리 아프지말게!

친정집 현관문은 수시로 열린다. 엄마집은 동네 어르신들에게 사랑방, 약국, 보건소, 목공소, 쉼터이다. 방문간호사이신 엄마에게 통증 호소, 영감 호소, 웬수 호소, 고장 호소, 외로움 호소 등의 이유로 어르신들이 불쑥불쑥 현관 문을 열고 들어오신다.


엄마는 밥을 먹다가도, 티비를 보다가도, 염색을 하다가도, 목욕 후에 물기를 뚝뚝 흘리고 나와서도, 노브라에 고쟁이 차림에도, 스스럼 없이 “호소” 대화에 참여하고 “우리” 멘트로 마무리하신다.


우리 그러지 말게, 우리 아프지 말게, 우리 건강하게, 우리 잘하고 살게…

그리고 “호소 출장”을 나가서 "호소인"의 무거운 짐을 들고, 쓰레기를 버리고, 고장난 물건들 고치고, 도배하고, 집 수리까지 하신다.


찾았다. 잃어버린 하나. 엄마.




20년동안 내가 모르고 살았던 엄마의 삶. 10년전 고향으로 귀농하신 후, 방문간호사로 지역 어르신들을 섬기며 “우리 공동체”에 녹아있는 엄마의 또 다른 모습. 서울살이할때는 몰랐던 엄마의 모습. 타국살이 20년간, 지독하게 "나"로만 살았음에 회환이 들었다. "나" 때문에 "우리"를 등한시했던 지난 시간들. 내가 엄마 곁에 없는 동안, 엄마는 나 없는 결핍을 "우리 공동체"에 기대며, 반쪽 삶을 지탱해온듯했다.





우리 열차는 ○○ 행 고속열차입니다. 오늘도 빠르고 편안한 KTX를 이용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열차에서 울린 “우리”라는 단어에 마음 정지가 또 온다. “우리”가 곳곳에 녹아있는 우리 나라 덕분에 잃어버린 "우리"를 생각해봤다.


모국어 "우리"는 20년 이방인의 긴장감을 녹이고, 경계심을 낮추고, 마음을 해동시킨다.



우리 열차는 잠시 후 ○○ 역에 도착하겠습니다. 두고 내리는 물건이 없도록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이방인에게 이방나라로 돌아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우리 열차"에 두고 내리는 마음이 없도록, 잃은 것을 더 잃지 않도록 점검할 시간이 주어진 것에 감사했다.


우리라면...


우리로 인해 마음 냄비가 데워진 이 순간, 우리가 "우리라면"을 서로에게 권하며, 소중함을 소중함으로 알도록 각인하는 시간을 보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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