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라면

고드름 찌르기를 했을수도 있겠다

by 미스리
I’d rather go home. I’m taking the day off now. Please don’t ask me to do that — it’s not my responsibility. 나는 차라리 집에 가겠다! 나 지금 하루 휴가 내겠어! 나한테 시키지마시오! 이건 내 책임이 아니요!



내 학급 (미국 공립 초등학교 특수교육)의 보조교사A가 교감한테 버럭 큰 소리로 대들면서 한 말이다.


마치 길다랗고 거센 장대 소나기가 장독대 뚜껑을 수직으로 내리 찍으며 두두둑 소리내듯, 특유의 빠르고 격양된 어조도 따발총 언어를 거침없이 교감 면전에 난사하는 그녀의 모습에 교감은 당황했다. 그녀는 본인의 시그내쳐 뚱한 표정을 보이고는 어깨를 들썩이더니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렸다.



‘헐...너 이 정도였어..? 이 정도로 무례한 사람이야?’


옆에 있던 나 역시 민망함, 실망감에 얼굴이 달아올랐다. 내 팀원이니만큼, 내 책임도 있었다. 교감에게 대신 사과를 하고, 내가 단 한두시간이라도 다른 학급을 보조하겠다고 타협했다.

분주한 6월 초, 학기말, 어느 금요일 아침, 너도 나도 우리 모두가 정말 바쁜 와중이었다. 그 날은 Eid al-Adha라고 불리는 무슬림 휴일이었고, 무슬림 교사, 보조교사들이 대거 결근을 했다. 이 무슬림 휴일은 달의 위치를 통해 정확한 날짜가 정해지기에, 미리 휴가 신청 및 대체 교사 신청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래도, 종교적인 이유로 휴가를 낼 합법적인 권리가 그들에게 있기에 그들 무리가 대거 “번개 휴가”를 낸 것이다. 카운티 전체에 이 번개 휴가가 있던터라, 학교 측에서도 대체인력 충당이 힘들었다. 그들의 일은 남아있는 교사, 교직원들의 몫이 된 꼴이다.


내 학급은 이미 1주일 전에 종강을 했기에, 일손 여력이 있는 상황임을 교감이 알았다. 그래서 교감이 내 보조교사 2명에게 특수 학급 보조 요청을 했던 것이다. 보통 교사한테는 이런 요청을 하지 않고, 보조교사한테만 한다. 교장/교감의 지시/요청은 반드시 따라야 함이 이 구역의 원칙이다. 그런데, 내 보조교사가 저런 충격적인 하극상 발언을 한 것이다. 아무리 개인주의 미국 문화일지언정, 저런 언행은 누구나 식겁할 정도로 무례했다.


You ask me to cover that classroom, even though I'm not responsible for? Do not ask me! (나한테 다른 학급을 도우라고? 내 책임이 아닌데도 말이야? 나한테 요청하지 마!)


그녀는 교실로 돌아와서 교감한테 한번 더 퍼붓고는, 교감에게 그리고 내게 보고를 하지 않은 채, 학교를 떠나버렸다. 그녀는 냉혈한 같았다. 마치 영하 20도 한파 속에서 꽁꽁 얼은 50센티 고드름으로 공격하는 냉혈한.

나를, 우리를 다신 안 볼 것처럼 자리를 박차고 나간 그녀의 무모함에 나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주말 내내 생각했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너라면…그랬을 수도 있겠다.


그녀는 감정조절, 특히 화 조절을 위해 정기적으로 약을 복용 중이었다. 그녀는 유별난 거친 성격을 가졌고, 볼륨 조절이 안되는 큰 목소리 (확성기 목소리 수준), 단조롭고 빠른 화법, 분개하며 따지는 듯한 어조, 과하게 격양하는 태도, 지독한 개인주의 성격을 가졌다.


장점이라면, 언제나 정직하다는 것, 하나를 알려주면 5개 이상 이해하고, 기억하고, 잘 수행한다는 것, 본인에게 주어진 일은 100% 책임을 다한다는 것, 꼼수를 부리지 않고 힘들고 고된 일을 자처해서 한다는 것이다.




“Good morning, Ms. Lee (좋은 아침, 미스리!)"


월요일 아침. 다신 안 볼것처럼 떠났던 그녀가 태연하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내 앞에서 옅은 미소와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아침 인사를 건넨다.


그래, 너라면...아무렇지도 않을 수 있겠다.


그 날의 하극상 사건은 추가 변론, 설명 없이, 그렇게 지나갔다.


벽에 강하게 붙어있던 스티커를 뜯으면 남겨지는 찌꺼기처럼, 각자의 마음에 정리하지 않은 찌꺼기가 분명 있을테다. 그럼에도 서로의 침묵 아래, 우리의 일상 속으로 그 날의 사건은 그렇게 묻혀졌다. 그녀의 장점은 잘 알고 있고, 충분히 감사했다만, 그녀의 단점, 매서운 돌발행동은 나를, 팀을 어둡게 했음이 분명했다.


나 혼자 "주의 요망"을 알리는 빨간 깃발을 내 마음에 펼쳤다. 그리고 그녀를 "요주의 인물 중에 최악의 요주인물"로 낙인을 찍었고, 그녀의 이마에 주홍글씨를 쓰고 말았다. 그리고 지웠다. 그리고 다시 썼다. 지웠다. 썼다.



그녀의 얼굴을 볼때마다, 그녀의 이마에 주홍글씨를 썼다 지우기를 반복했다.


결국 지웠다.


너라면... 그랬을 수도 있겠구나


그 후로 교감은 그녀에게 말을 걸지도, 별다른 업무 요청을 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녀에게 앞으로 무리한 요청은 절대 안할 듯하다. 우리 모두 그녀에게 "너라면"의 긍정의 혹은 부정의 "라면 프레임"을 씌우고 말았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녀의 이마에 주홍글씨를 쓰는 대신에, 수없이 "너라면"을 끓여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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