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커피에서 엄마라떼까지
결론부터 말하자면, 끊었다.
10년을 마셨다. 하루에 두 잔, 총 7,300잔.
주중의 첫 잔은 만성 피로와 무력함을 깨우기 위한 것이었다. 두 번째 잔은 단조로운 출근길에서 숨을 고르며 일상을 위로하기 위한 것이었다.
주말의 첫 잔은 늦잠의 여유를, 두 번째 잔은 누군가와 마주 앉아 나누는 대화를 위한 것이었다.
문제는, 불면증이다.
새벽 1시, 2시에도 전혀 피곤하지 않았다. 잠들지 않으려고 발버둥친듯하다. 다음 날 6시 40분에는 억지로 눈을 떠야 했고, 4-5시간의 수면으로 비틀거리며 하루를 시작했다. 아침엔 커피로 정신이 강제 각성됐고, 낮엔 정신이 뉘엿뉘엿 트였고, 저녁엔 우뢰처럼 에너지가 솟아올라 잠들 수 없는 악순환이 계속됐다.
어느 아침, 좀비처럼 첫 잔을 들이켰다. 두 번째 잔을 텀블러에 담아 운전대를 잡았다. 정신이 멍했다.
‘이건 아닌데… 커피 때문일까? 아니야. 커피를 끊어야 해? 아니야…’ 머릿속에서 실랑이가 이어지던 순간
카톡와쏭!
엄마였다.
한국에서 온 메시지엔 유튜브 영상 하나가 덩그러니 있었다. 제목은 “커피 끊어야 산다.” 1년에 두어 번씩 도착하는, 엄마의 단골 ‘커피 경고’였다.
커피 끊어야 돼! 위 헐어! 빈속에 마시면 속 다 깎여!
수없이 들어온 말인데, 이상하게 그날은 재생 버튼을 눌렀다. 내용은 뻔했다. 그리고 옳았다.
그래도 그날은 달랐다. '끊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다. 그렇다고 당장 끊을 용기는 없었다. 피로, 두통, 짜증, 불안… 이 금단 후유증이 많이 두려웠다.
도둑커피를 챙겨야 해!
그로부터 세 달 뒤, 한국에 갈 짐을 꾸리며 ‘도둑커피 세트’를 챙겼다. 스탠리 텀블러와 미니 브루어 세트. 엄마가 방심하는 사이 슬쩍 내려 마시려는 심산이었다.
한국 도착. 시차 적응도 안 된 새벽, 내 앞에 놓인 건 "엄마라떼"였다. 12곡물을 직접 빻아 만든 엄마표 미숫가루.
엄마는 그 라떼로 하루를 시작했다.
새벽 4시—음식 준비
5시—새벽예배
6시—걷기
6시 반—밭일
7시—방문 간호사
오후 2시까지 일하고도 수영, 헬스, 영어교실, 수필교실…
그리고 밤 10시 취침.
엄마의 “카페인 프리 우뢰맨” 리듬 속에서 내 도둑커피는 설 자리가 없었다.
이럴수가! 그러다, 나도 모르게 10년지기 커피를 끊. 었. 다.
엄마의 힘은, 커피보다 강했다.
엄마와 떨어져 타국에 산 지 20년,
커피에 중독된 지 10년,
커피와 결별한 지 3개월.
엄마를 만나고 버릴 것을 버렸고, 얻을 것을 얻었다.
버렸다. 커피에 대한 강박을.
얻었다. 자유함을.
커피에 의존했던 삶에서의 자유.
커피를 마신다 생각했지만, 사실은 커피가 나를 마셨던 세월.
커피를 못 마시면 몰려올 두려움, 그 금단으로부터의 자유.
엄마라떼는 내게 자유를 선물했다.
출근길, 나는 이제 엄마라떼를 마신다. 12곡물 미숫가루 한 모금에, 우리에게 우리가 있음을 되뇌며...
우리에게 우리가 없었다라면...갖지 못했을 자유함에 감사하며...
엄마의 사랑을 마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