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저의 고백
“이 수저가 네 수저이냐?”
“아닙니다. 내 수저는 그렇게 반짝이는 누런 빛깔이 아니에요.”
“그럼 이 수저가 네 수저이냐?”
“아닙니다. 내 수저는 색감도 빛깔도 없어요.”
“그렇다면, 이 수저가 네 수저이냐?”
“아닙니다. 내 수저는 거칠고 투박해요.”
“참으로 솔직하구나! 옛다, 다 가져라! 금수저, 은수저, 동수저, 그리고 흙수저까지. 다 네 것이로다!”
“안됩니다. 이것들은 다 제 것이 아니에요!”
“그럼 네 수저는 대체 무엇이냐?”
“....”
“말을 못하는거 보니, 무수저로구나!”
요즘 젊은이들은 스스로를 금수저라 칭하며 자부심을 드러내기도 하고, 흙수저라 부르며 자기 처지를 비하하기도 한다. 나 또한 그런 자기비하의 감옥에 나를 가둔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나는 "참 좋은 수저"이다.
겉모습은 쇠약하고 투박해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수저의 가치는 재질이나 모양이 아니라 무엇을 담느냐에 있다. 아무리 금으로 만들어졌다 한들, 썩은 음식을 담고 있다면 좋은 수저라 할 수 있을까? 은수저라 한들, 맛없는 음식을 담고 있다면 빛이 날까?
반대로, 연약하고 초라한 수저라 할지라도 향기롭고 보배로운 것을 담아낼 수 있다면, 이미 그 역할을 충분히 해낸 것이다.
내가 금수저나 은수저를 물고 태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은, 내 능력이 내게서 온 것이 아님을 알게 하려는 은혜라 믿는다.
재물과 자원에는 늘 한계가 있다. 금수저가 금수저를 다음 세대에 전해 주는 일에도 수많은 변수가 있다. 하지만 좋은 수저, 참 귀한 수저는 다음 세대에 무한히 전해질 수 있다. 나는 내 자녀에게, 내 학생들에게 그런 수저를 물려주고 싶다.
어딘가에서 어깨를 잔뜩 웅크리고, 고개를 깊이 파묻은 채, 흙수저의 늪에 빠져 있는 이가 있다면 이렇게 전해주고 싶다.
“당신은 참 좋은 수저예요. 당신이 담아낼 향기로운 음식을 누군가가 기다리고 있어요.”
우리가 서로에게 참 좋은 수저가 되기를, 보배로운 것들을 담아, 그리고 영원한 것들을 담아 서로의 마음에 건네주기를.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고린도후서 4장 7절)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고린도후서 4장 18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