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시절
막 유치원 하원 차량에서 내린 딸과 10분 거리의 너른 숲이 펼쳐진 공원으로 향했다.
자연 관찰을 좋아하는 둘째에게 힐링의 시간을 주려고 마음먹고 채비해 나왔다.
공원 가는 길 중간에 널찍한 구립 텃밭이 있는데, 우리의 목적지는 뒤로한 채 아이는 뒤도 안 돌아보고 성큼성큼 철제문 안으로 들어간다. 수확을 하시는 할머니, 새로 모종을 심으시는 할아버지가 보이고, 텃밭 입구에 닭장과 토끼장이 둘째의 눈을 한껏 홀린다. 한참 관찰하고 토끼와 대화를 나누다 할머니에게 다가간다. 내가 로메인 상추 심으셨냐고 여쭤보니 바로 "좀 줄까?" 하신다. 인정 많으신 할머니가 비닐에 치커리까지 함께 가득 담아주신다. 자연스레 오늘 저녁 메인은 고기가 되겠다.
노을이 물들어 가고 있다.
빵빵한 검은 비닐봉지를 들고 나와 숲 공원 대신 계획을 수정해 우린 도서관으로 향했다. 행여 벌레라도 나올까 털털 털어 꽁꽁 묶어 천 가방에 넣어 두었다. 도서관에 가면 산만하게 돌아다니는 내 아이가 웬일인지 조금씩 발을 들여놓으니 차츰 분위기 파악을 한다. 그리고 자기가 좋아하는 자연관찰 책이 어디에 있는지 스스로 발견하기도 한다.
곤충 책을 몇 권 정도 훑으면, 나는 그림책이 즐비한 유아방으로 안내한다. 물론 관심이 많지는 않지만 재미있는 그림으로 유도를 하면 한 권 내지 두어 권쯤은 들어주기도 한다.
그동안 책 육아에 관심은 많았어도 큰 아이에 비해 공력이 덜 들어간 건 사실이다. 잠자리 독서도 큰 아이 책을 골라 읽어줄 때면 책에 킥을 날리기 일쑤였으니. 7세 둘째가 한글을 어느 정도 익힌 이 시점이 우리 아이의 적기 교육이라고 믿고 싶다. 무엇보다 지친 나의 체력으로 열성을 다하지 못한 지난 시간은 돌이킬 수 없어 이제부터라도 아이에게 가정에서 할 수 있는 정서 보육, 학습의 즐거움을 스며들게 해 주기로 마음을 먹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삼겹살을 사서 할머니가 키워내신 맛 좋은 상추로 밥상을 내니 야채 편식이 있는 둘째도 열심히 싸 먹어본다.
한동안 오빠에게 관심이 가있던 엄마에 대한 욕구불만이 조금은 풀어졌는지 모르겠다.
나와 참 다른 장점을 많이 가지고 있는 아이를 어떻게 지지해주어야 할지. 물질적으로 모든 걸 다 해 줄 수 없는 엄마지만, 취사선택을 잘하는 엄마이고 싶다.
아이의 니즈와 엄마의 혜안이 만나 최선의 효과를 끌어내야 할 텐데.
느릿느릿 달팽이 엄마는 또 고민으로 하루를 마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