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llie Sep 12. 2022

명절에 대한 단상

며느리의 명절


코로나 시국으로 근 2년 만에 내려간 큰댁.

방 안엔 십자가가 걸려 있다.

우리의 전통을 제사로 잇고 있는 이 장소가, 이 시간이 언젠간 그리워질 날이 올 수도 있으려나?


올 추석에 성균관에서 발표한 제사 예법을 보면 제사음식에 ‘전’을 올리지 않아도 되고 간소화된 상차림을 허용한다고 했다. 앞치마를 두른다. 각종 다짐육과 손질된 야채를 으깬 두부와 뭉친 반죽을 한입 크기로 떼어 둥글게 성형한 후 밀가루 옷을 살짝 입히고 계란물에 담갔다 빼 기름에 지지는 ‘동그랑땡’은 빼놓을 수 없는 전의 대표 얼굴이다. 깻잎 반쪽에 반죽을 넣는 깻잎전, 고추씨를 발라내고 그 안에 반죽을 넣는 고추전 등 다양한 재료로 만드는 기타 전들도 밀가루를 입히고 계란물에 적셔 기름에 부치는 방식은 동일하다.


한국의 한가위는 먼저 돌아가신 조상님들께 ‘효’를 다하고 추수감사를 지내는 의미의 제사를 지내왔고, 가족이 모여 명절놀이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날이다.

그런데 현실은? 여성은 주방에서 명절 음식을 준비하기 여념이 없네. 요즘엔 교회식 추도예배나 성당에서 연미사를 지내기도 하고, 법당을 찾거나, 내지는 마음으로 추도하고 가족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우리 집안처럼 종교가 있지만 전통방식을 고수하는 집안도 아직은 흔한 풍경이다.


이번에 큰어머니와 형님과 일하면서 여든을 바라보시는 큰어머니 당신이 시어머니께 혹독한 시집살이를 겪으며 부엌일을 배우셨다는 에피소드를 들으며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부엌은 아무한테나 내줄 수 없다고 말씀하시며 일일이 진두지휘하며 손사래를 치신다. 윗 세대에 비할바는 아니지만 대물림되는 마인드는 그분의 주방에선 긴장을 늦출 수 없는 것 같다. 하지만 난 민속학자라도 된 양 사라져 가는 옛이야기를 놓칠세라 몰두하며 들었다…

큰어머니, 난 그분이 눈물로 살아오신 그 세월로 단단해지셨다는 걸 알기에 치열했을 그 삶을 존경한다.


그리고 우리 딸이 성인이 되었을 땐..

어린 시절 자연에서 뛰놀던 호시절을 따뜻한 가슴으로 기억하고, 명절이 다가오면 호흡부터 가다듬고 맞이하는 “며느리”의 명절 풍경은 “고전문학”으로 끝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어르신, 아이들 모두가 즐기는 명절 풍경 속에 홀로 고기굽는 큰댁 형님과 눈치껏 고기나르는 작은댁 며느리가 있다. 아이들에게 전승되는 전통문화, 명절이 모두에게 좋을 수는 없을까!

#추석 #명절 #제사 #기록

작가의 이전글 딸아이와 동네 한 바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