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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붉은 지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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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희동 김작가 Dec 31. 2019

일 년에 생일이 두 번이라고?

요즘 들어 유난히 늦잠을 잔다. 어제도  늦은 밤까지 TV를 보았다. 방송국 송년잔치에 박나래가 상을 타면서 웃는지 우는지 횡설수설하는 모습을 보고 나서도 잠이 오지 않아 채널을 돌려 송년특집으로 방영해 주는 언제 적 영화 '쿼바디스'를 보았다. 하지만 그나마도 줄거리가 너무나 선명하게 생각나서 중간에 꺼버렸다.

그러다가 최근에 써 둔 치앙마이 여행기를 첨삭하고 새벽녘에야 잠이 들었다.


얼마 전부터 불면의 밤이 잦았다. 의사 선생님은 작은 알약을 처방해 주면서

자리에 들기 전 한 알씩 먹으라고 했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는 것 중 어느 한 가지를 무언가에 의지하게 되면 고장 난 사람이다.

나는 약에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견뎌내려고 한다.

다행히 새벽녘쯤 늦게야 잠이 들기는 하니까  병명은 불면증 아닌 셈이다.


그래서 몰랐다. 오늘이 내 생일인 줄..., 커튼 사이로 내리쬐는 햇살이 너무 강해서 일어나 보니

해는 중천에 떠있고 핸드폰엔 축하 문자가 가득하다. 신년 축하 메시지와 생일 축하 메시지가 뒤섞여 뒤죽박죽이다.

이 사람들은 어떻게 나도 모르는 내 생일을 다 기억하고 을까.....


올해 1월 11일(음력 섣달 초엿새날)나는 생일을 분명히 맞았다. 그런데 한 장 밖에 남지 않은 달력의 마지막 날인 오늘이 음력으로는 섣달  엿 날, 바로 내 생일이다. 일 년에 생일이 두 번이나 들어있다니...,


나이 많은 이가  ''어서 빨리 죽어야 할 텐데..., ''라고 하는 말이 거짓인 것처럼 ''생일날이 뭐가 좋아 나이만 먹는데..., "라고 하는 말도 순 거짓말이다.

나는 생일날이 좋다. 어렸을 때부터 생일날은 맛있는 음식을 먹는 날이었고 웬만한 잘못 쯤 면죄가 되는 날이었다. 나이 든 지금도 마찬가지다.

손녀 아이가 쓴 손 카드와 아이들의 축하전화가 반갑다. 하룻 내 울리는 형제들의 카톡 축하인사도 고맙다.

가장 고마운 것은 남편이 손수 차려주는 생일상이다.

언제부터인가 남편은 내 생일날 아침상을 손수 준비해 주었다. 미역국을 끓이고 계란말이 반찬을 만들어서 제법 성의 있는 생일상을 만들어 주었다.

누군가 나를 해 차려준 밥상은 맛을 타박할 수 없다. 그런데 하물며 맛까지 있다. 미역국 끓이는 법은 도대체 어디에서 배웠담?

후각이 예민한 마누라를 위해 최고급 한우를 사다끓였다는 소고기 미역국은 입에서 살살 녹는다.

                    남편이 차려 준 생일상


오늘 아침 생일상에는 유난히 낯선 반찬이 눈에 띄었다.

장조림과 오징어채 무침이 추가되었다. 마치 007 작전이라도 하듯  나 몰래  사다 놓은  반찬가게 음식일 것이다.


옴마야~~ 생일날이니 그냥 편하게 앉아 있으라고 한다. 설거지까지?  이런 기분이구나...,

''아줌마~ 후식은 내 방으로 갖다 줘요''라며 코맹맹이 소리로 부탁하고 일어서는 우아한 사모님이 된 기분이다.


우리 가족 중에서 남편과 나는 음력으로 생일을 쇤다. 아이들처럼 양력으로 할까 생각한 적도 있지만 왠지 그 날은 나의 날이 아닌 것 같았다.

음력과 양력은 거의 한 달 정도 날짜 차이가 나지만 계절은 그렇지 않다.

어렸을 때 내 생일날 아침, 어머니가 만든 팥시루떡을 들고 이웃에게 돌릴 때, 턱 밑으로 뭉게뭉게 피어오르던 따뜻한 김의 촉감과 시린 손등의 서로 어긋난 촉감,

''우리 이쁜이 생일 축하한다.잉~'' 등 쓰다듬어 주던 이웃들의 온기가 양력과 음력은 다르다.


그 해 문고리에 손이 달라붙을 만큼  추웠던 날, 널 낳느라고 욕보았다고 유난히 추운 날을 강조했던 엄마의 목소리가 들리는 음력 섣달 초엿새와 양력 12월 6일은 기후가 다르다.


음력은 달을 기준으로 하고 양력은 해를 기준으로 한다. 달이 기울고 차는 것처럼 음력의 날짜는 가끔씩  변한다.

어느 해인가는 내 생일에 윤달이 들어 생일이 사라져 버리기도 하고 올 해처럼 일 년에 두 번 생일을 맞기도 하며 내년 새 달력에는  아예 달력에 음력 섣달 초엿새가 없다. 내년에는 내 생일이 없는 셈이다.


나이가 들어 생각하니 생일날이 좋은 것은 그 날엔 누군가가 나를 기억해 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또 누군가를 기억한다.


유난히 추웠던 날, 문고리가 얼 정도로 추웠던 겨울날,  이 날은 나를 낳느라고 애쓴 어머니를 그리워하고 기억하는 날이다.

그래서 내 생일은 양력이 아닌 음력이어야 한다.

그리고 오늘처럼 몹시 추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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