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두 번이나 연기된 개학, 이제 아이는 투정도 하지 않는다. 열 살 인생에서 너무나 큰 시련을 겪고 있는 것 같다. 오늘도 학교 대신 가방을 메고 외갓집으로 와서 회사에 가기 전 즈이 엄마가 내 준 숙제를 말없이 하고 있다.
오늘은 점토로 뭔가를 열심히 만들고 있다. 자기 나름대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 답답하기로 치면 매일 친구하고 뛰어놀던 아이가 어른인 나보다 더 하겠지만 지금은 오히려 내가 더 답답함을 느끼고 있다.
아이는 점토로 인형을 만들고 있었다. 한 개, 두 개, 세 개....., 열 개가 넘는 인형을 만들어서 책상 위에 세워 두고 있다.
아이가 노는 모양을 바라보았다. 아이는 인형들에게 모두 이름을 지어 주고 있다. 새 학년이 되어 다른 반으로 뿔뿔이 헤어진 2학년 때 같은 반 친구들 이름이다.
새 학년이 되었지만 아직 선생님과 새 친구들을 만나지 못한 초등학교 3학년 아이는 아직도 2학년에 머무르고 있는 중이다.
지금 대문 밖은 전쟁터다
전쟁을 겪어보지 못 한 우리 세대는 전쟁의 참담함을 모르고 자랐다. 포화 속을 뚫고 동료를 구하러 가는 전우들의 투지 넘치는 모습과 넘쳐나는 부상자들로 아수라장이 된 야전병원에서 신음하는 환자들의 모습을 배우들의 연기로만 보았다.
21세기의 전쟁은 형태가 다르다. 보이지 않는 적은 가장 악랄하고 잔인한 방법으로 우리를 파괴하고 있다. 놈의 전략은 간단하다. 피해자를 가해자로 만드는 전략이다. 확진자는 피해자였다가 한 순간에 가해자로 둔갑한다. 맨 먼저 사랑하는 가족들을 무너뜨리게 하고 친구와. 이웃, 직장 동료들을 차례대로 쓰러지게 만든다. 손 하나 대지 않고도 도미노처럼 무너지는 인간들을 보며 악마는 목젖이 보이도록 크게 웃고 있다.
방호복 안에 서려있는 뿌연 안개를 손부채로 식혀가며 환자를 치료하는 의료진들은 대역 배우가 아니다. 오늘 하루도 전 세계에서는 외롭게 죽어가는 사람들의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생생한 현실이다.
놈의 전략을 알고 있는 이상 더 당하고 있을 수는 없다. 다행히 놈이 숨어서 저격할 수 있는 거리는 2미터에 미치지 못한다고 한다. 그 이상은 놈도 여력이 없다. 더러운 숙주에 희생되지 않기 위해서는 사회적 거리 두기가 최선의 예방이다. 놈과의 전쟁에서 살아남는 방법이기도 하다. 나를 지키는 것이 이기는 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스스로 자가격리를 하며 고전 분투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자신들이 미션 임파서블의 주인공이라도 된 듯, 총알보다 무서운 비말을 두려워하지 않고 거침없이 활보하는 사람들이 있다.
강남의 유흥업소에는 하루 500 명이 넘는 사람들이 다녀갔고. 삼삼오오 짝지어 꽃구경을 나온 사람들도 있다. 아마 자신들은 절벽에서 굴러도, 총을 맞아도 절대로 죽지 않는 영화 속의 주인공쯤으로 생각하고 있는 게 아닐까?
얼마 전 우리 집을 고치러 온 인부들은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 이유를 물었다. 자신들은 모두 바이러스가 침투하지 않는 O형의 피를 가졌다는 어처구니없는 말을 했다. 거짓 정보를 믿고 자신을 지키지 않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다.
무심하게도 봄은 오고 꽃은 피고 있다. 하지만 지금 이 시간에도 한 생명이라도 살리기 위해 사투를 벌이고 있는 의료진을 생각하면 따뜻한 날씨가 오히려 걱정된다.
기온이 올라가면 비닐 방호복을 입고 있는 이들이 더 힘들어질 것 같기 때문이다.
다행히 어제부터 확진자 수가 감소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이 고비이다.
더 이상 무너지면 안 된다. 작은 불씨도 남겨서는 안 된다. 사회적 거리 2미터는 최후의 방어 전선이다.
위기가 기회라는 말을 떠 올리며 상상을 해 본다. 바이러스와의 전쟁이 종식되면 나는 여행을 떠날 것이다. 이탈리아와 프랑스 스페인을 다시 가 보는 거다.
너는 어디서 왔니? 코리아에서...,
사람들은 마치 방탄 소년을 맞이하듯 코리아에서 온 나를 환호한다.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제일 먼저 승리하고 자신들을 도운 천사의 나라에서 온 손님을 서로 모시려고 안달이다.
사회적 거리 하나를 지켰을 뿐인데 ' 메이드 인 코리아'를 이처럼 반기게 될 줄 몰랐다. 때맞춰 제일 먼저 신약을 개발한 나라가 우리나라가 된다면..., 상상의 끝판왕이다.
아이가 다녀가고 방 안에는 인형들만 남았다. 띄엄띄엄 나란히 서 있는 인형들의 모습에서 하루빨리 학교에 가고 싶은 아이의 마음이 그대로 전해지고 있다.
인형들의 사회적 거리 지키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