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의 작은 음악회

봄비를 뚫고 오신 손님

by 연희동 김작가


봄이 되니 사람이 그립다. 꽃이 피니 더욱 그립다.

봄비가 온다. 그깟 꽃구경 내년에 하면 되지요라고 했던 게 엊그제인데 봄비에 젖는 꽃잎을 보니 마음이 조급해진다.


지난 3개월은 나와의 싸움을 하는 시간이었다.

매일 하던 운동도 중단하고( 덕분에 근육이 풀리고 살이 올랐다) 시장은 물론 동네 슈퍼도 가지 않았다. 확진자가 아닌데도 확진자보다 사람 만나기를 더 두려워하는 것은 지난번 신종플루에 걸렸을 때의 심한 고통과 그 이후 폐렴으로 응급실을 찾아야 했던 기억이 생생하기 때문이다

면역력이 약한 사람들에게 가장 치명적인 코로나 19 바이러스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그렇게 꼭꼭 숨어서 지냈다.


봄이 되면서 새싹들이 땅을 뚫고 나오기 시작했다. 때가 되면 자연도 저처럼 순환이 되는데 한번 얼어붙은 사회는 해동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스스로 내렸던 자발적 집콕이 서서히 지루해지기 시작했다.


목련이 지더니 개나리가 피고 벚꽃과 라일락이 제 차례를 기다렸다가 피기 시작했다.

4월이 지나면 저버릴 꽃들


우리 집에는 수선화가 맨 먼저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뒤이어 튤립과 무스 카리아 앵초 꽃이 피더니 요즘에는 화단을 거의 점령하다시피 하고 있는 아주가 꽃이 꽃봉오리를 맺기 시작했다. 우리 집 화단에서 봄꽃을 마무리하는 것은 철쭉꽃이다. 붉은 철쭉이 하룻밤 사이에 뾰로통 입술을 내밀고 있다.


예전의 봄날 같으면 우리 집 작은 꽃밭에서는 모임의 뒤풀이가 이어지곤 했을 텐데..., 밥값보다 비싼 커피값을 아끼자며 모임 후 집으로 초대하는 나의 의중에는 내 자식 같은 꽃들을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숨겨져 있었다.


꽃을 바라보면서 혼자서만 사치를 누리고 있는 것 같아 아까운 마음이 들었다. 꽃이 지는 건 잠시,

아직은 손님을 초대하기 어려운 시기이지만 꽃을 함께 바라보고 싶은 한 사람이 생각났다.


작년 연말에 문학상을 탔다. 그 후 생각지도 않은 분에게 고마운 선물을 받았다. 내 수필 '선인장'을 멋지게 낭송을 해서 다른 작품으로 완성시켜 보내주신 분이 계셨다. 짧은 시도 아니고 숨이 턱에 차게 긴 수필을 어쩌면 자신이 지은 글처럼 그렇게 맛깔스럽게 읽어 낼 수 있을까, 코로나만 아니었다면 맨 먼저 초대하고 싶은 손님이었다.


용기 내어 전화를 했다. 현직 중학교 선생님이신 이수정 씨는 스타리라는 이름으로 음악 활동도 하고 계시는 분이다. 우리 집과는 정 반대 방향의 먼 거리에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초대에 응하여 봄비를 뚫고 달려와 주었다.


그분은 내 여동생과 친분이 있는 분이었다. 그래서인지 처음 만나는데도 여동생처럼 살갑게 느껴졌다.

나는 뒷산에 올라가서 쑥을 캤다. 쑥전은 오늘 점심의 메인 요리가 될 것이다.

동생이 공수해 온 톡 쏘는 갓김치와 상큼한 물김치, 항긋한 쑥전으로 소박한 점심상을 마련했다.


'누군가를 위해 밥상을 차릴 때 나는 행복합니다.'

신혼시절 남편의 퇴근 시간에 맞춰 상을 차리던 이야기를 글로 써서 투고했던 기억이 난다.

참 겁 없는 문장이다. 봄날처럼 짧았던 신혼시절이 지나고 그 후로 어쩌다가 저녁을 먹고 집에 들어온다는 남편의 전화 소리가 그렇게 반갑게 들리더니 이젠 삼시 세 끼를 차리는 일이 고역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기분이다. 누군가를 위해 밥상을 준비하는 일이 이처럼 설레고 행복했던가..., 이런 기분을 안겨 준 것만으로도 감사한데 봄 손님은 식사 후 작은 음악회를 선사해 주었다.


남편과 여동생 그리고 나..., 우리만을 위한 음악회였다. 밖에는 봄비가 내리고. 꽃잎이 떨어지고..., 부드러운 기타의 반주에 맞춰 봄 손님이 불러주는 노래 속으로 빠져 들었다.

우리들은 제각각 자기들 만의 추억의 장소로 떠나고 있다.


나는 노래를 잘 부르는 사람이 부럽다. 가끔 모임에서 노래를 불러야 할 때가 있다. 멀리서 마이크가 점점 내 앞으로 가까이 올 때면 가슴이 두근거리는 소리가 내 귀에 까지 들릴만큼 그 순간이 두려운 적이 있었다. 그럴 때는 노래방에 가서 노래 몇 소절 연습하고 올 걸 그랬나?라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하지만 지금 내 앞에서 부르는 봄 손님의 노래를 들으며 노래는 노력으로 되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무대가 아닌 집 안에서 작게 내는 소리지만 가까이에서 듣는 그의 목소리는 동굴처럼 울리는 뭔가가 있었다. 노래는 타고난 재능이 있어야 한다.


노래를 부르는 동안 우리 집은 작은 음악회장이 되었다

아마 지나가는 누군가 우리 집 대문간에서 발길을 머물고 조용히 엿듣다가 갔을지도 모른다.


남편은 심수봉이 부른 '그때 그 사람'을 신청하였고 나는 박인희가 불렀던 '봄이 오는 길'을 들려달라고 했다.


산 넘어 조붓한 오솔길에

봄이 찾아온다네

들 너머 고항 논 밭에도 온다네

아지랑이 속삭이네 봄이 찾아온다고

어차피 찾아오실 고운손님 이기에


갑자기 휘파람이 불고 싶어 졌다. 노래 대신 휘파람을 배워야겠다.

봄 손님이 노래를 부르는 동안 우리 집은 푸른 청보리밭이 되기도 하고 고즈넉한 찻집이 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불러준 노래 에버그린(Ever green)은 첫사랑을 생각나게 하는 노래였지만 오늘 이후 봄비 오는 날에 생각나는 곡이 되어버렸다.


오늘은 꽃잎도 나도 모두 함께 흠뻑 젖는 날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