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콤 달콤 톡 쏘는 그 맛..., 방송인 강호동 씨는 지구의 마지막 날에 무엇을 하겠냐고 물었을 때 시원한 물냉면 위에 숯불에 구운 돼지갈비를 얹어 먹겠다고 했다. 나에게 만약 마지막 한 끼의 식사로 무얼 먹겠냐고 묻는다면 나는 금방 지은 따끈한 쌀밥에 익을 듯 말 듯 톡 쏘는 갓김치를 얹어 먹겠다고 하겠다. 그때의 김치는 내가 담근 것이 아니라 내 여동생의 친구 경진이 엄마가 담근 것이라야 한다.
우리 어머니는 손 맛이 좋기로 동네에서 소문이 나신 분이다.
봄이 되어 잃은 입맛을 찾아 주는 것은 향긋한 미나리 김치였다. 미나리 김치가 노랗게 익어 떨어질 때가 되면 파김치를 담으셨다. 알싸한 파김치는 익을수록 맛이 있어서 냉장고가 없던 시절에 오래 두고 먹어도 괜찮았다.
아마 사 월 이 맘때쯤이 아닐까? 앙파의 뿌리가 채 영글지 않았을 때. 어머니가 담는 양파김치는 파김치와는 다른 달큼한 맛이 있었다. 양파 꽃이 피기 전 연한 양파 줄기까지 담아서 먹는 양파김치가 가끔 생각난다.
한 여름에 먹었던 열무김치와 아직 김장 배추가 자라기 전 배추값이 금값일 때 담아먹었던 고구마순 김치. 고들빼기와 갓김치는 어머니의 손맛을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다.
그런데 그리움으로만 남은 어머니의 손맛 담긴 김치를 먹게 될 줄이야...,
어제 여동생이 김치를 가져왔다. 한입 먹으면 코가 톡 쏘는 알싸한 갓김치와 열무와 얼갈이배추를 섞어서 담은 시원한 물김치였다. 김치는 여동생의 고향 친구가 담아서 보내 준 것이다. 언니랑 함께 나눠 먹으라고 했단다.
워낙 좁은 고을에서 함께 자랐기 때문에 동생의 친구지만 막연히 애정을 갖고 있을 뿐 특별히 해준 것도 없는데 김치를 담아 보내다니 너무나 고마웠다.
흔히 갓김치 하면 여수를 떠올리는데 동생 친구는 갓을 여수가 아닌 전라도 우리 친정 동네에서 직접 사 왔다고 한다. 어머니 김치가 특별히 맛있었던 것은 양념과 손맛도 있지만 고향의 땅 맛도 있었다. 동생 친구가 보내준 김치에서 어머니 맛을 느낀 것도 바로 그 땅 맛이었다.
김치만 있으면 다른 반찬은 필요 없다. 나는 돌판에 삼겹살을 구웠다. 고기를 먹기 위해서가 아니라 갓김치의 들러리로 삼겹살을 구운 것이다. 노릇노릇 잘 익은 삼겹살에 갓김치를 돌돌 말아서 먹는다.
밥을 먹는 내내 남편과 눈으로 말을 한다. 톡 쏘는 갓김치를 먹고 코를 찡긋하고 눈을 크게 뜬다. 남편과 둘이서만 밥을 먹는데도 이렇게 맛이 있을 줄이야...,
맛있는 건 나눠먹어야지, 나는 가까이에 사는 딸네 집에 김치를 반 덜어서 보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나는 내가 담은 김치를 할머니가 담은 김치라고 종종 거짓말을 했다. 아이들은 할머니의 김치라는 말만으로도 무조건 맛있게 먹어주었다. 이제 와서 그때 그 김치가 할머니가 아닌 내가 만든 김치였다고 해도 아이들은 믿지 않을 터, 나는 그냥 손맛 없는 엄마로 사는 게 편하다.
저녁에 딸아이에게서 문자가 왔다.
''엄마 김치가 너무 맛있네요"
"원래 얻어먹는 김치가 더 맛있는 법이야 "
이모 친구처럼 손맛을 내지 못하는 엄마의 자존심 때문에 얻어먹는 김치 맛으로 대신했지만 실은 나도 손맛 좋은 경진이 엄마가 무척 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