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1년만 해보고 더 할 건지는 그때 정하자. 새로운 일을 시작하려고 마음을 먹으면서 의욕이 솟았다.
우리 집 대문을 열면 현관문이 따로 있는 투룸과 원룸이 각각 있다. 투룸의 세입자가 계약기간이 만료되면서 대대적으로 집수리를 했다. 작은방이 두 개인 투룸을 터서 거실이 넓은 원룸으로 만들어 놓았다. 마침 지인의 소개로 꽤 비싼 수입타일을 싼값에 살 수 있는 기회가 생겨서 바닥을 타일로 바꾸었다. 천정의합판을 뜯어내니 콘크리트가 그대로 드러난 천정은오히려 빈티지스러웠다.
인더스트리트 인테리어라나? 예전에는 주로 상가나 사무실을꾸미던 기법이었지만최근에는 주택에도 적용한다고 한다. 새로운 개념의 주거형태로 리모델링을 마치고 나니 남에게 세를 주기는 아까울정도로 멋진 집이 되었다.
에어비앤비를 해 보면 어떨까?
마침 남편이 정년퇴직을 하여 무료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고 나는 남편의 영어와 일어 실력을 활용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집 꾸미는 데에 재미가 들린 나는 이제는 원룸이 된 투룸 앞 주차장을 실내정원으로 꾸몄다. 빈벽에 초록이들을 심어서 올리고 공원에나 있을 법한 벤치를 두었더니창밖풍경이 제법 분위기가 있다.
공사 중에 사용하고 남은 회가루가 굳기 전에 어디에 사용할까 하다가 빈 벽에 겨울왕국의 눈사람 울라프를 그려 넣었다 후에 에어 비 앤 비의 이름을 울라프라고 하게 된 건 단순히 그 그림 때문이었다.
누군가는 오랫동안 계획하고 실천하는 일을 나는 그야말로 식은 죽 먹듯 해치웠다. 원래 냉장고와 세탁기 에어컨 가스레인지 같은 가전제품은 기존에 모두 준비되어 있었으므로 침대와 그릇, 그리고 책상과 식탁등, 기본 가구들을 마련하기만 하면 됐다. 모든 가구는 집에 있는 것들로 해결이 되었다. 딸아이가 결혼하기 전에 사용했던 가구들을 버리지 않고 그대로 두었기 때문에 다시 장만할 필요가 없었다. 침대와 탁자를 옮기고 주니어 옷장을 한편에 놓아두었다.깔끔한 방이 완성되었다.
침구는 하얀 면을 사서 재봉틀로 박고 이불자락 한귀퉁이에 수를 놓아 울라프의 이니셜도 새겼다. 주로 외국인들이 많이 오기 때문에 한식 취향으로 모시에 수를 놓아 커튼을 만들어서 달아두었다.
나는 집을 꾸미고 남편은 에어 비 앤 비에 회원등록을 하여 호스트를 신청하고 집안 구석구석 예쁘게 사진을 찍어 홈페이지 올렸다.
첫 번째 게스트는 누가 될까? 과연 게스트가 오기는 할까? 모든 게 궁금했다.
현관에 실내화를 나란히 놓고 식탁에는 꽃도 수북이 꽃아 두었다. 방명록도 준비하고 나름첫 손님에 대한 기대로 가슴이 부풀었다.
드디어 첫 번째 게스트와 연락이 닿았다. 하버드 대학교에 다니는 미국 청년 윌리엄은 여름방학 동안 이곳 대학교에서 수업을 받기 위해 한 달 동안 우리 집에 있을 예정이라고 한다.
내가 여행을 할 때 우린 주로 에어 비 앤 비를 자주 이용했다. 어느 집은 키만 둔 곳을 전화로 알려주고 주인은 떠날때까지 얼굴도 보지 못한 곳이 있는가 하면 또 어느 게스트 하우스는 웰컴 주스를 가득 따라주며 반갑게 맞아 준 곳이 있기도 했다.
나는 현관 입구에 '윌리엄의 집'이라는 작은 팻말을 걸어두고 선물로 태극문양 부채를 마련해 두기도 했다.최선을 다하여 즐겁게 일해보자는 포부로 우리의 첫 게스트를 맞이했다.
오홋, 저런 미남이라니.... 훤칠하고 잘생긴 갈색머리 백인 청년이 우리 집 대문을 들어서는 순간 새로 고친 게스트 하우스와 너무나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월리엄에게 내 자전거를 빌려 주었다. 우리 집에서 대학교까지는 자전거로 가도 될 만큼 충분한 거리였다. 안장을 끝까지 올리고도 다리가 길어 기역자로 굽어진 다리로 빨간 자전거의 페달을 밟으며 언덕을 올라오는 윌리암의 어정쩡한 모습이 아이처럼 귀여웠다.
잘 생기고 똑똑한 하버드 대학생도 어느 한 곳 허전한 곳이 있었던지 때가 꼬질꼬질한 베개를 침대 머리맡에 두고 있는 걸 보았다. 눈이 휘둥그러지는 나를 보고 자신의 애착 베개라고 소개한다. 그걸 베지 않으면 잠이 오지 않아서 어느 나라를 가더라도 꼭 함께 데리고 다닌다고 한다.
월리엄이 떠나는 날은 마침 우리 부부도 여행 중이었다. 여행을 다녀와서 보니 탁자 위에 쓰고 남은 동전을 수북이 쌓아두고 한국 역사가 궁금했던지 만화로 보는 한국사 책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그리고 얌전히 개어 둔 이불 위에 짧은 편지를 적어 두고 갔다. 고맙다는 인사 편지였다.
첫 게스트여서 인지 떠난 후 마음 한곳이 휑하였다.
우리 동네는조용한 주택가다. 전철을 타려면 신촌이나 홍대역으로 나가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고 특별하게 내세울 관광지 하나 없는 동네를 게스트들이 좋아할리 없다. 더구나 우리의 조건에는 외국인 전용을 확실히 했고 한 달 정도 장기간 거주할 게스트를 우선으로 했기 때문에 며칠씩 집이 빈 채로 있을 때가 있다.
하지만 조급해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런 조건이 맘에 들어 예약을 한 게스트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멀리 멕시코에서 온 스테파니는 두 달 남짓 살게 된 게스트였다. 여성이었고 우리말을 배우려고 노력하는 게스트여서 남편 대신 내가 대부분 말 상대를 하였다. 우리나라의 도자기를 공부하러 왔다는 그녀는 멕시코에서 도자기를 굽는 도예가였다. 자신이 만든 도자기를 보여주었는데 주로 인체를 형상화한 것이 많았다. 도자기에 팔과 다리가 달려있는 모습이무척 희화적이었다.
스테파니는 부지런했다. 식초와 베이킹파우더로 매일 집을 쓸고 닦았다. 수건을 바꿔주지 않아도 자신이 항상 청결하게 빨아서 사용하고 이불 홑청도 자주 갈아 끼웠다.약간의 결벽증이 있었던 것 같다.
스테파니는 채식주의자였다. 그것도 계란이나 생선. 유제품을 먹지 않는 완전 채식주의자인 비건(Vegan) 채식을 하고 있었다.
우리가 에어비엔비를 시작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여행을 좋아하는 우리 부부가 내 집에서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온 게스트들을 만나 서로 친밀감을 나눌 수 있다는 장점 때문이었다. 멀리 떠나지 않고도 매일 여행을 하는 듯한 즐거움을 느끼는 호스트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우리는 가끔 게스트를 식사에 초대했다.
주차장 벽에 그려넣어 에어비엔비의 로고가 된 울라프
채식주의자인 스테파니를 위한 비빔밥 식단
게스트와 함께
스테파니 같은 채식주의자에게는 비빔밥을 만들어 주었다. 향긋한 들기름에 볶은 나물 향에 반하였고 들기름이 어떤 채소에서 나오는지 들깨를 보여주자 최고의 오일이라며 찬사를 보냈다.
스테파니는 우리 부부에게 친밀감을 느꼈는지 이혼의 아픔을 극복하기 위해 멀리 이곳까지 왔노라며 속내를 드러내 보이기도 했다. 그는 우리 부부와 이별을 몹시 아쉬워하며 자신이 만든 도자기 목걸이를 내 목에 걸어주고 떠났다.
호스트 노릇이 언제나 감미롭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핸드폰을 잃어버리고 천하를 잃은 것처럼 우울한 게스트를 위해서 핸드폰 구출하기,
생판 모르는 골목에서 도움을 청하는 게스트 모셔오기, 일주일 내내 집 안에 에어컨을 틀어놓고 사는 게스트 참아내기, 새벽에 현금지급기 앞에서 호출하는 게스트의 현금 인출해 주기 등,
사람을 상대하는 일은 가끔 지치기도 하지만 한국에 처음 오는 외국인 여행객을 상대하는 일은 새롭고 즐거웠다. 그래서 1년 말고 계속해서 에어비앤비를 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고남편과 이야기를 했다.
어느 날 갑자기 두 명의 경찰이 우리 집으로 왔다. 나는 우리나라에 관광경찰이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에어비앤비는 불법이라고 하였다.
불법이라고?
에어비앤비는 외국인 관광 도시민박업으로 우리나라에서는 게스트와 호스트가 같은 공간을 사용해야 한다. 즉 우리 집처럼 현관이 따로 있는 집은 허가도 나오지 않거니와 우리처럼 허가도 없이 하는 것은 불법이라고 한다.
허가라고요? 이럴 수가...,
그때까지 우리는 구청에 따로 허가를 내야 하는 것 조차 모르고 있었다.
에어비앤비에 회원 등록만 하면 모든 게 다 되는 줄만 알았다.
우리가 에어비앤비를 시작하고 365일째, 처음 약속대로 일 년만 해보고 더 해볼지 생각해 보기로 한 그 날. 남편은 한 장의 벌금 고지서를 수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