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그만 버리고 살아요

추억의 방

by 연희동 김작가

사람도 그렇지만 집도 친해지려면 시간이 걸린다. 더구나 모든 구조가 닮은 아파트와 달리 단독 주택에 사는 사람들은 더 오랜 시간 집과 부대껴야 정이 든다. 보일러가 고장 나고 하수구가 막히는 건 금방 수리할 수 있지만 어디선가 물이 세고 있는 것은 여러 날 고생하고 꽤 큰돈을 들여야만 겨우 찾아내어 고칠 수 있다. 그렇게 20년을 사는 동안 집과 나는 친해졌다. 그동안 살살 다독이며 살았더니 이젠 제법 나를 위해 줄 줄도 안다.

봄이면 죽은 듯한 땅 속에서 싹이 움트는 광경을 보여 주기고 하고 새가 떨어뜨린 씨앗에서 자란 뜨락의 벚나무는 봄 한철 커다란 꽃다발을 선물하기도 한다. 지루한 장마철에도 낙숫물 소리를 들으면 위로가 되고 흙탕물이 골을 이뤄 수채 구멍으로 빨려 들어가는 모습은 마치 SF 영화를 보는 듯 흥미롭기도 하다.

겨울날 아침, 앞 집의 빨간 지붕과 내 집 뜨락에 소복이 덮여있는 눈을 보면서 나는 아이처럼 탄성을 질렀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넓이만큼 똑같이 분배받은 눈송이를 담고 있는 주택가 마을은 나의 탄성이 무색할 정도로 고요했다.

나는 집과 친하게 지내며 사철 변화하는 계절의 모습을 즐기며 살고 있다.


하지만 집도 나이가 들면 늙는다. 지은 지 20년이 되는 우리 집은 그동안 큰 공사는 한 번도 안 하고 살았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고장 난 곳이 간간히 나타나는 나의 모습처럼 우리 집도 붉은 벽돌 빛이 바래고 군데군데 손을 봐야 할 곳이 생겨났다.

리모델링을 하기로 한 날, 건장한 인부들이 와서 맨 먼저 집안 가득 차지하고 있는 물건들을 옮겼다. 커다란 가구를 들어 올릴 때마다 새로 집을 짓는 일보다 살고 있는 집을 고치는 게 더 어렵다는 말은 아마 열 번도 넘게 들어 본 것 같다.

마당으로 내놓은 덩치 큰 살림살이들을 보며 당분간은 비가 오지 않기만 바랄 뿐이었다.


집을 고치는데 15일 정도면 족하고 그동안 나는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인부들이 벽을 허물 장비를 가지고 들이닥쳤다.

내 아이가 주사를 맞을 때 아예 눈을 감아 버린 것처럼 벽을 두드리는 해머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서둘러 집을 나섰다. 아들과 남편, 거기에 인부들까지 집 고치는 일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내가 빨리 떠나 주기를 바랐다.

여행 중에 남편에게서 간간히 집안 소식이 전해져 왔다. “오늘은 마루 바닥을 떼어냈음 먼지가 장난이 아님” “ 거실벽을 칠했음 냄새가 심함 ” “ 거실 바닥공사가 끝나가고 있구려” 등, 여행이 거의 마무리될 때쯤에는” 당신이 우리 집을 제대로 찾아올지 모르겠군” 이라며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현관문을 열자 나무향기가 제일 먼저 나를 맞이 했다. 깔끔하고 세련되게 단장을 마친 우리 집이 낯설어 보일만큼 변했다. 처음 이 집으로 이사 왔을 때보다 가슴이 더 벅찼다. 하지만 제 자리를 찾지 못한 가구들은 먼지를 뒤집어쓴 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긴 여행의 후유증도 잊은 채 앞치마 끈을 조여 메야했다.

여행 후 시차적응이 안 되는 게 오히려 도움이 되었다. 먼지 낀 살림살이들을 닦고 제 자리에 정돈하느라 꼬박 밤을 새웠다.


아이들이 왔다. 밤새 정리해둔 가구들을 보고 깜짝 놀란다.

그런데..., 새 집에 헌 가구들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한다. 사용한 지 8년 차 되는 냉장고는 너무 크고 윤이 잘 나는 가죽 소파는 새로 깐 마루 색깔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타박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서재의 책들도 버려야 할 것들이 많다고 하고 옷장의 옷들도 유행이 지난 것은 아낌없이 버리라고 한다.


''이제 그만 버리고 살아요''


손때 묻은 내 살림살이를 버리라고 한다. 하기야 나도 내 아이들과 비슷한 말을 친정어머니에게 한 적이 있었다. 그때는 버리라고 하기보다'' 제발 쓰고 살아요''라고 했던 것 같다. 어머니는 새것은 아껴두고 헌것만 입고 금방 상해서 버려야 할 것들만 드셨기 때문이다. 내가 아무리 아끼지 말고 쓰고 살라고 해도 돌아가신 뒤 어머니 유품 중에는 내가 사 드린 속옷들이 상표가 뜯어지지도 않은 채 그대로 있었다. 지금 내 아이들이 나를 바라보는 심정도 그와 같을 것이다.


지금 내 곁에는 아깝다기보다 정이 들어서 버리지 못하는 물건이 많다. 우리 집에서 가장 덩치가 큰 피아노는 작은 아이의 나이와 얼추 비슷하다. 이웃집에서 들리는 피아노 소리를 부러워하는 큰 아이를 기죽게 하지 않으려고 힘겹게 장만한 물건이다. 그 후 두어 번 이사를 할 때마다 웃돈을 더 줘가며 날랐던 것인데 아이들이 자라고 나서는 무용지물이 되었다. 그런데 지금은 손녀딸이 가끔씩 외갓집에 오면 건반을 두들기고는 한다.


친정어머니가 물려준 미싱은 버려서는 안 되는 어머니의 유품이다. 지금은 받침대를 만들어 작은 조형물을 얹어 두었는데 아이들 말로는 우리 집에서 가장 어울리지 않는 물건이라고 한다.


우리의 추억이 깃든 앨범과 나를 기쁘게 해 준 아이들의 상장, 누렇게 변해버린 구형 컴퓨터, 두 아이들이 보던 전집과 모아 둔 일기장, 여름 한 철 사용하는 선풍기, 디지털시계에 밀려 난 괘종시계, 유행은 지났지만 아직 입을 만한 옷들...,


아이들은 이 모든 것들을 버리고 깔끔하게 살기를 바라지만 이것들은 모두 소중한 나의 가족이다. 아직도 나는 저 물건들과 처음 만났을 때의 감동을 기억하고 저들이 늙어가는 동안 나에게 베푼 선행에 대하여 알고 있다.

나는 이들을 구할 방도를 생각했다. 이층에 아들이 사용하던 방 하나를 손님방으로 꾸밀 작정이었다. 일 년에 한 번이나 올까 말까 한 손님을 위해 방을 꾸미느니 나는 이 방을 내 소중한 물건들을 간직하는 방으로 만들기로 했다.


"추억의 방"

식구들 그 누구도 이 방을 '창고방'이나 '골방'이라고 부르지 못하도록 방문 앞에 명패를 걸어 놓았다. 나와 같은 세대를 살아온 물건들은 '추억의 방'에서 나와 공감하고 때론 나를 위로해 주기도 할 것이다. 가끔 나는 '추억의 방'에서 잠이 들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런 날에는 나를 깨우지 말았으면 좋겠다. 나는 가장 행복한 시절로 돌아가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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