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급이었어

by 연희동 김작가

요즘 지상파 방송, 종편 할 것 없이 채널을 돌렸다 하면 나오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트롯 가수들이다. 트롯 경연을 거쳐서 나온 일곱 명의 가수들,

트롯 특유의 구성진 가락과 꺾기. 귀에 쏙쏙 박히는 가사가 많은 사람들을 트롯 애창자로 만들었다.

어디 숨어있다가 이제야 나온 거야? 트롯뿐 아니라 모든 음악 장르, 심지어 성악까지 섭렵한 가수도 있다.

알고 보니 이들은 대회에 출전하기 전 이미 현직 가수였으며 잘 나가는 가수들 뒤에 묻혀 빛을 못 보던 소위 B급가수들이었다.

그들의 살아온 이야기가 노래보다 더 절절하다. 그래서일까, 사람들은 그들의 노래에 더욱 박수를 보내며 응원을 하는 것 같다.




1등만 기억하는 안타까운 세상에서 살았다, 집에서도 사회에서도 1등이 우선이었다. 차점자를 위한 배려나 그를 위한 기회는 없었다.


내가 아는 지인의 두 아들은 전혀 다른 성향을 지녔다. 큰아들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쭉 1등을 놓치지 않더니 일류대학교를 나와서 변호사가 되었다. 얼마 전. 같은 계통의 직업을 가진 여성과 결혼을 했다. 지금은 1등 인생을 살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1등 아들을 둔 엄마의 위세는 당당했다. 큰 아들과 큰 며느리의 이야기를 할 때는 목소리도 컸다. 하지만 1등짜리 엄마의 자존심도 작은 아들 앞에서는 한 풀이 꺾인다.


학교 다닐 때부터 공부에 별 관심이 없었던 작은 아들은 사회에 나와서도 부모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것 같다. 엄마조차 잘 나가는 큰 아들만 내세울 뿐, 작은 아들의 이야기는 숨기려고 하니 가정에서 작은 아들의 위치가 어떠했을지 가늠이 된다.

작은 아들까지 1등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아마 그녀의 교만은 하늘을 찌르고도 남았을 것이다


나는 그녀의 작은 아들이 부모의 성에 차지 않았을지언정 엄마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엄마의 교만을 누그러뜨린 아들이 바로 작은 아들이기 때문이다.


요즘과 달리 내가 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상대 비교 평가를 했다. 입학해서 졸업 때까지 내 등수는 물론, 심지어 다른 아이의 등수까지 꿰차고 있었다.

졸업한 지 수 십 년이 되었지만 우리에겐 지금도 그 시절 상대 비교 평가의 폐해가 남아있다.


왜 우리 반에서 일등 했던 애 있잖아

너 중학교 때 모범반 아니었니?


가끔 오래된 친구의 이름이 생각나지 않을 때면 맨 먼저 생각나는 게 성적과 등수였다. 공부 실력이 인간의 점수인 양 알고 있었던 시대에 살던 사람들의 오류다.

이보다 더 부정적인 기억이 어디 있을까? 일등과 꼴등으로 친구를 기억하다니.... 차라리 숙제를 잘 안 해오던 아이, 달리기를 잘하던 아이, 매일 지각하던 아이로 기억하는 게 더 인간적이다.


내가 다니던 중학교에서는 각 학년에 한 반씩 학년 전체 성적 50등까지의 아이들로 모범반을 만들었다.

모범반이 된 아이들은 자부심이 대단했다. 선생님들 마저도 다른 반을 꼴통반이라고 부르며 모범반으로 배정된 아이들을 우쭐하게 만들었다.

과연 3년 후에도 모범반 아이들이 모범생으로 남아 있었을까? 나부터도 성적이 부실해서 도시의 명문고등학교에 지원했지만 보기 좋게 떨어지고 말았다.


다시 트롯가수들의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1등에게는 1억 원의 상금과 부상으로 멋진 승용차와 무려 200 켤레의 수제화가 주어진다. 럭셔리한 안마의자와 유명 작곡가의 신곡 혜택도 받는다.

2등에게는? 국물도 없다. 뭐가 그래, 좀 나눠주면 안 되나? 나하고는 아무 상관도 없지만 1등만 기억하는 세대에 자란 나로서는 차점자가 좀 억울해 보였다.


임 영웅이 일등을 했다. 2등을 한 영탁은 그냥 2등이다.

그런데 달랐다. 일등한 임영웅만 알아주는 줄 알았는데 준결승을 한 일곱 명 모두가 같은 프로에 똑같이 참여한다.

일등을 내세우지도 않는다. 사람들은 꼭 1등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취향에 맞는 가수의 팬이 되어 응원을 한다. 보기 좋다.

실력보다는 인간됨과 진솔한 삶의 모습이 더 평가받는 시대가 된 것 같아서 좋고 등만 알아주는 사회가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것 같아서 더욱 좋다.

일곱 명이 뭉쳐서 서로 의지하고 다독여주는 모습도 좋다. 소위 잘 나가는 일류 가수들 조차 그들과 함께 촬영하는 걸 반가워하는 눈치다. 대세가 바뀌었다,


요즘 나는 TV를 보면서 많은 것을 배운다. 트롯이 그 어떤 음악보다도 우리 정서에 맞다는 걸 알았고 무엇보다도 일등만 기억하던 사회에서 노력하는 사람들이 박수를 받는 사회로 바뀌고 있는 모습을 어느 채널에서나 볼 수 있어서 좋다.


숫자는 순서를 매기기 위해 존재하기도하지만 누구나 공평하게 나눠 갖게하기 위해 존재하기도 한다.


(이미지 daum츨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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