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째 동서가 가족모임을 주관했다. 그런데 모임 장소가 조금 특별하다. 코로나로 인해 집이 아닌 밖에서, 그것도 사람들이 뜸한 숲 속 농막으로 초대를 한 것이다. 강화도 인화리의 숲 속. 그 옆 바닷가에서 바라보면 멀리 북한 땅이 보이는 곳이다.
부부교사로 재직할 때부터 정년퇴임 후의 계획을 세우더니 지금은 차곡차곡 노년의 삶을 진행하며 살고 있는 동서네다.
전원생활의 꿈을 갖고 오래전에 강화도 산속에 밭을 장만한 뒤로 서서히 농사꾼으로 전향하고 있는 중이다.
주말에는 두 부부가 숲 속에 지은 농막에서 지내며 밭을 일구고 있다.
그곳은 군인들이 지키는 검문소를 거쳐야만 출입할 수 있는 서해 최 북단에 있는 곳이었다.
서울에서 불과 한 시간 반 거리지만 인가도 사람도 뜸해서 산골의 정취를 오롯이 느낄 수 있는 곳이기도 했다.
산과 들. 바다를 함께 느낄 수 있는 자연 속에서하루를 보내는 일은 특별하다. 무엇보다도 내 곁에서 한시도 떨어지지 않으려는 반려견도 함께 데리고 나설 수 있어서 좋았다.
시댁의 다섯 형제 중 지방에 살고 있는 동생네 한 가족을 제외한 네 가족이만남을 갖는 오늘의 모임은 솔 숲그늘 아래에서 펼쳐지는 근사한 숲 속의 만찬이 될 것 같다.
이곳에서는 가을 풍경이 더 뚜렷했다.길가에는 코스모스와 갈대가 하늘거리고 보랏빛 산국화가 피어있다. 밤송이가 벌어져서 제풀에 떨어져 밟힌다. 솔바람이 한차례 불고 지나가면 도토리들이 농막 지붕 위로 우당탕탕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서 멋 모르고 농막 주변에 고라니라도 숨어 있었다면 놀래서 도망갈 것 같다.
동서네가 심어둔 고구마밭은 줄기가 무성하게 잘 자라고 있었다.
숲 속 농막에서 보낸 하루
모두들 도심의 아파트 안에서만 지내고 있었던 터라답답함을 털어 내려는 듯 숲 주변을 서성인다.
소나무 아래에서 수북한 잣 무덤을 발견했다.
청설모나 다람쥐가 겨울 동안에 먹으려고 숨겨둔 곳인가 보다.
어느 책에서 읽었던 다람쥐에 관한 글이 생각난다.
다람쥐는 머리가 별로 영특하지 못해서 자신이 숨겨둔 음식 창고를 찾지 못한다고 한다. 그래서 봄이면 이곳저곳에서 도토리나 밤나무의 싹이 돋는다고...,
동서, 내년에는 이곳이 잣나무 숲이 되겠네, 우리의 농담을 어디선가 다람쥐가 엿듣고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다람쥐가 자신의 음식 창고를 잘 찾을 수 있도록 주변의 풀들을 조금 뽑아내어 다람쥐 길을 만들어 주었다.
가을 숲은 봄 숲과 달리 구수한 향기가 난다. 마른풀과 나무줄기에서 나는 향기다. 모든 것들이 씨앗을 품고 있는 들판에는 모든 게 익어가고 있다. 내리쬐는 햇살에서조차 단내가 풍기는 것 같다.
며칠 후면 한가위가 돌아온다.
산속 묘지에 봉분들도 깨끗하게 벌초가 되어 모두 동그란 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젊었을 때는 무덤만 봐도 무서웠는데 요즘엔 그렇지 않다.
결국 흙으로 돌아가는 자연의 섭리를 받아들이는 걸 보면 내 인생도 가을의 길목에 서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봄 숲과 가을 숲은그 느낌이 너무 다르다.
희망으로 가득 찼던 봄 숲이 가을에는 고즈넉하고 쓸쓸하다. 사철 푸른 소나무가 가득한 이 숲에도
황금빛 가을이 보인다.
내년에는 이 숲도 싹이 트고 연한 풀잎들로 가득할 테지,
땅을 향해 떨어지는 열매들처럼 가을은 봄이 올 걸 알기에 미련 없이 떠난다.
가을 숲에서 형제들과 어울린 하루가 무척 의미 있게 다가온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열매이고 단풍이 물든 연륜이기 때문이다
식사 후. 바닷가 산책길을 걸었다.
철책이 드리워진 바닷가에서 더는 앞으로 나갈 수 없지만 인간이 막아놓은 철책 위로 갈매기들은 무심하게 날아다닌다.
실향민들이 많이 사는 교동이 바로 눈 앞에 보인다
가까이서 바라보이는 고향을 두고도 못 가보는 심정을 알 것 같았다. 누구나 하나씩 가지고 있는 고향.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갈 수 있는 고향이 있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행복하다.
봄에 뜯어놓은 쑥으로 만들었다는 송편과 고추 가지..., 동서가 애써 가꾼 것들이 봉지마다 담겨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