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우리 부부의 결혼기념일이 빼빼로데이에 밀려버렸다. 아침에 손녀 아이가 학교에 가는 길에 할아버지에게 빼빼로 한 통을쥐어 주고 간다. 뒤돌아가는 아이에게 뭔가 말을 하려다가 그만두었다.
작년에 우리 부부는 결혼 40주년을 맞이했다. 사는 동안 결혼기념일 따위 그다지 염두에 두지 않았지만 작년 40주년 결혼기념일을 무덤덤하게 보냈을 때는 조금 서운했더란다. 솔직하게 말하면 그날조차 어느 해와 다름없이 삼겹살이나 구워 먹으며 보냈지만 전혀 마음에 두지 않았었다. 그런데 나와 같은 해에 결혼한 두 명의 친구가 결혼 40주년 기념식을 얼마나 성대하게 치렀는지 나중에 알게 되면서 상대적으로 은근히 초라하게 느껴졌다.
딸만 셋을 낳은 한 친구는 딸들이 리마인드 결혼식을 올려 주었는데 딸들과 나란히 웨딩드레스를 입고 찍은 사진이 여왕님처럼 품위 있어 보였다.
다른 한 친구는 아들의 장모 장인. 즉 사돈과 함께 단풍이 아름다운 캐나다로 여행을 다녀왔다고 했다.
아무렇지 않게 보내버린 사람은 나뿐이었다.
부부가 40년을 함께 탈없이 살았다면 당연히 기념할 만한 일이다. 어느덧 훌쩍 지나가버린 세월이지만 그 세월은 인내와 고난이 켜켜이 쌓인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편과 나는 약속을 했다. 내년 결혼기념일은 우리도 조금 특별하게 보내보자고...,
코로나가 우리의 계획을방해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남편과 나는 멀리 북유럽의 하늘에서 펼쳐지는 환상적인 오로라 쑈를 감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꿈은 꾸라고 있는 것이다. 비록 실현되지 못한 꿈이지만 꿈을 꾸는 동안 행복했다.
41년 전, 그해의 11월 11일은 몇 년 만에 찾아오는 길일이라 하여 시내에 있는 결혼식장은 이미 예약이 꽉 찬 상태였다. 하지만 국가적으로는 대통령이 시해된 비극의 해이기도 했다. 국가비상 계엄령이 내려진 가운데 치른 결혼식,
언론보도 통제를 막는 수단으로 인쇄물을 금지했기 때문에결혼 청첩장조차 찍을 수 없었다. 결혼식 당일에는 경찰 공무원이셨던 시아버님 덕에 경찰복을 입은 하객들이 많이 참석하여 우리의 결혼식장은 어수선한 시국과 맞물려 삼엄해 보이기까지 했다.
더구나 온종일 어두컴컴했던 하늘에서는 희끗희끗한 눈보라까지 날리면서 조신하게 한복을 차려입은 새댁을 덜덜 떨게 하였고 그 떨림이 나쁜 징조가 아니길 바라며 서울이란 낯선 곳에서 새로운 삶의 터전을 이루었다.
우리가 처음 만나던 날, 남편은 사천만 인구(40년 전 우리나라의 인구를 잊고 있지 않는 대목이다)
중에 너를 만나게 되었다며 무척이나 고무된 모습으로 고백을 했다.
그리고는 자신의 손수건을 꺼내 내가 앉을 벤치 위에 살포시 깔아 주었다.
평생 내 엉덩이에 손수건을 깔아줄 줄만 알았던 남편의 매너는 그때가 처음이고 마지막이었다.
성실하면 모든 게 다 이해되는 줄 아는 남편과 그래도 성실한 게 어디냐며 참고 살았던 결혼 생활이 40년을 지나오는 동안 두 아이의 부모가 되었고 이젠 머리 하얀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어 서로를 바라보며 살고 있다.
아침에 손녀에게 받은 빼빼로를 아드득 깨물어 먹고 있는데 택배 배달원이 보낸 문자가 왔다. 곧이어 배달원조차 들기 버거워하는 커다란 박스가 집 안으로 들어왔다. 그것도 두 뭉치 씩이나....
아들이 보낸 선물이다.
얼마 전 우리 부부가 다니던 헬스장이 폐업을 하면서 우리는 매일 하던 운동 대신 자전거를 타고 한강변으로 라이딩을 나갔다. 작년에 자전거를 타다가 넘어진 뒤로 잠시 멀리했었지만 계절마다 다른 풍경을 바라보며 달리는 라이딩만큼 즐거운 운동은 드문 것 같다.
식성도 취미도 전혀 다른 우리 부부지만 한 가지 같은 취향이 있다면 바로 자전거 타기를 좋아하는 점이다.
2년 전. 바르셀로나에서 일주일 동안 자전거로 여행을 했을 만큼 우리 부부는 여행과 자전거 타기를 즐긴다.
커다란 박스 안에서 나타난 선물 그걸 지키는 우리 집 노견
이미 박스를 풀기도 전에 그 안에 자전거가 있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이 선물은 우연히 우리 결혼기념일에 도착했을 뿐. 아들이 의도한 결혼 기념 선물은 아니라는 것도 안다.
언박싱을 하자 그 안에서 반들반들 윤이 나는 까만 자전거가 나타났다. 놀라지 마시라(사실은 누구보다도 내가 더 놀랐지만) 그 자전거는 이제 열심히 페달을 돌리지 않아도 언덕 위에 있는 내 집까지 가뿐하게 올라올 수 있는 전기 자전거였다.
두 번째 뜯어본 박스에서 나온앙증맞게 접힌 자전거를 보고 나는 환호성을 질렀다. 내 자전거 역시 페달을 돌리지 않아도 쉽게 언덕을 오를 수 있는 작고 가볍고 스마트한 전기 자전거였기 때문이다.
주인님.., 하고 나타난 자전거에게 나는 즉석에서 이름을 지어 주었다.
'샤넬' 고급스런 이름이 퍽이나 잘 어울리는 자전거였다.이 자전거를 타고 나는 어디라도 갈 수 있을 것 같다.
한 남자와 40년을 살면 더 이상 힘들게 페달을 돌리지 않아도 된다. 이제 남은 인생은 내가 스스로 동력을 만들지 않아도 될 만큼 나는 그동안 열심히 살았기 때문이다.
오늘 내 집에 전기자전거가 들어온 후로 내 생활은 거대한 진화의변화를 맞게 되었다. 불을 발견한 인류가 더 멀리 나가서 더 많은 채집을 했듯이 전기 자전거는 우리의 라이딩을 집에서 점점 더 멀어지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