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밥상

by 연희동 김작가


나만 그런가? 나는 지금까지 킹크랩을 먹어보지 못했다.

언젠가 값을 물어봤더니 무게에 따라 다르지만 대략 한 마리에 20만 원이 넘는다고 했다.

무슨 게 한 마리가 20만 원이나 하냐고 속으로 생각했다.


내 생일날 아침, 흰 눈이 소복이 쌓이고 있다.

점심을 먹고 말없이 밖에 나갔던 남편이 돌아왔다. 눈을 흠뻑 뒤집어쓰고 어딜 다녀오셨나..., 손에 하얀 스티로폼 박스가 들려있다.


며칠 전 남편이 뜬금없이 나에게 물었다.

''자기는 뭐가 제일 먹고 싶어?''

갖고 싶은 것도 아니고 먹고 싶은 걸 물어보니 갑자기 생각이 나지 않았다.

마침 예능프로인 '정글의 법칙'을 보고 있는 중이었다, 김병만 씨가 밀림에서 코코넛 크랩을 잡는다. 바닷가도 아닌 산속에 게가 있다고? 믿기지 않았지만 열대우림에서 코코넛 열매를 파먹고 산다는 커다란 크랩이 실제로 화면에 보였다.

무슨 맛일까? 빨갛게 구워진 크랩의 다리를 출연자들이 맛있게 먹는 걸 보니 군침이 돌았다.

코코넛 크랩...,

건성으로 대답했다.


스티로폼 박스 안에서 얼굴을 내민 건 커다란 킹크랩이었다. 언뜻 봐도 꽤 무게가 나갈 것 같다.

40분을 고열에 쪄서 가져온 터라 김이 모락모락 나는 킹크랩이 식탁 중앙에 턱 하니 버티고 앉아서 어디 덤벼보시지 라며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딸네 가족이 도착했다. 아이들 역시 거대한 크랩을 보고 놀란다.

킹크랩의 다리가 고작 여덟 개 뿐이라는 걸 오늘 처음 알았다. 긴 다리가 각각 세 개씩 투실한 집게 다리가 한 개씩, 암만 그래도 그렇지 이 양반이 정신이 나갔군, 비싼 걸...,

말은 그렇게 했지만 손은 벌써 집게다리를 공략하고 있었다.


미쳐 인증샷을 찍기도 전에 다리 몇 개는 사라져 버린 킹 클랩




나는 1950년도 중반에 태어났다. 자유당 시절이었다.

사람들은 라테와 꼰대, 자유당 시절은 한 묶음 3종 세트로 치부해 버리더구먼.


태어나보니 위로 아들만 넷을 둔 아들부잣집의 고명딸이었다. 우리 아버지는 그 시절 우리 읍에 있는 관청에서 가장 지위가 높으신 분이었다. 나는 태어나자마자 로또를 맞은 것이나 다름없다.

자유당 시절에 국가 녹을 먹는 사람은 다 썩었다는 편견을 버리기 바란다. 우리 아버지는 청렴결백하기가 히말라야 만년설보다 더 깨끗하였다.( 훗날 사직을 강요당한 이유가 너무나 맑았기 때문이라고들 했다)


그러는 우리 집에도 일 년에 한 번, 창고가 그득할 때가 있었다. 추수를 마치면 군에서는 농수산물 품평회가 열리곤 하였다.

우리가 살았던 지역은 농촌과 어촌이 함께 어울려 있어서 수산물과 농산물이 풍족했다. 농부들은 그중에서 가장 씨알이 굵고 좋은 것들을 골라서 대회에 출품했다.

대회가 끝나면 출품된 상품들은 본인들이 가져가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그 지역의 기관장들 집에 선물로 돌리곤 하였다.

단지 곳간 문만 열어뒀을 뿐인데 사람들이 이고 지고 놓고 갔다.

자유당 시절이었다니까요...,


나는 아버지와 겸상을 하는 은총을 오랫동안 누렸다. 든든한 아버지의 사랑을 등에 업고 세상 물정 모르고 까불며 네 명의 오빠들 앞에서 일그러진 영웅 노릇을 해왔던 그때가 나의 가장 화려한 시절이었다.

아버지의 밥상은 곧 나의 밥상이기도 했다.


요즘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 것이 있다. 옛날 사람들은 모두 가난하고 굶고 산 줄로만 알고 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가난하기는 했어도 굶어서 죽는 사람들은 없었다.

우리 어머니만 해도 밥을 얻으러 오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밥그릇에서 밥을 덜어주고는 하셨으니까....,


아버지의 밥상은 정갈했다. 계절마다 다른 반찬이 놓여 있고 나는 아버지가 얹어주는 반찬을 원 없이 받아먹었다. 그중에서도 가을에 속살이 토실하게 오른 게맛을 잊을 수가 없다. 어머니는 살아서 퍼득거리는 게를 채반에 올려 쪄주셨다.

커다란 집게발의 껍질을 벗겨 입에 넣어 주시던 아버지는 우리 들이 먹는 모습을 보고만 있어도 흐뭇하다고 하셨다.


요즘에는 옛날에 먹었던 음식이 자주 생각나곤 한다. 나는 절대 꼰데가 아니라고 하면서도 라테 시절을 그리워하고 있다. 내가 가장 행복하고 풍요로웠던 때가 그 시절이었으니 생각나지 않을 수가 없다.

(라테는 말이지요 뭐든 제 고유의 맛을 지니고 있었답니다.

싸다고 사고, 속아서 사는 중국산이 아예 없었거든요 작아도 실하고 맛 또한 제 맛을 품은 토종음식만 먹고 자란 사람이랍니다, 이래 봬도 저란 사람이...,)


지금 비록 반 세기 넘어 처음으로 킹크랩이라는 걸 먹어 보았지만 옛날에는 나도 한 때 잘 먹고 잘 살았다는 말을 하려는 겁니다 (전형적인 라테 맞네요)




커다란 클랩이 산산이 분해되고 내장이 담긴 딱지는 밥을 비벼 마무리를 했다. 킹크랩 한 마리가 나와 남편, 딸네가족 까지 다섯 식구를 풍족하게 먹였으니 과연 이름값을 한다.


"아마 코코넛 크랩 맛도 이 맛과 비슷할거야"


남편이 건넨 크랩의 속살을 받아먹으며 내가 가장 화려했던 시절, 아버지의 밥상 앞에 앉아있는 내 모습을 떠올렸다.


오늘은 내 생일날, 남편의 모습에서 아버지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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