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희동과 사러가 마켓은 그렇게 함께 늙어가고 있었다

by 연희동 김작가

며칠 전에 당근에서 첫 거래가 성사되었다. 새로 산 자전거 안장이 너무 딱딱해서 교체하고 본래 장착되어 있던 안장을 내놓았는데 구매자가 나타났다. 자신은 연희동에 살지 않지만 퇴근하는 길에 우리 집 주변으로 오겠다고 했다. 약속 장소를 어디로 정할까?

사러가.... 그래 사러가 마켓 정문 앞에서 만나자고 했다. 두 말없이 약속이 성사되었다.


어느 도시 또는 동네마다 그곳의 이미지를 알리는 랜드마크가 있다. 우리 동네 그러니까 내가 20여 년을 살고 있는 연희동에서 사러가 마켓을 랜드마크로 꼽으면 누군가는 얼마나 내세울 게 없는 동네면 한 낱 슈퍼마켓을 랜드마크로 꼽을까?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연희동이라는 동네를 알면 그곳이 왜 동네의 이미지를 빼닮은 곳인지 깨닫게 된다.


군사정권 시대의 연희동은 한때 장관촌으로 불리기도 했다. 70년도 중반 파릇한 사회 초년생이었던 나는 당시 홍익대학교에 다니는 친구를 따라 연희동이라는 동네에 처음 와 보았다.

친구의 언니가 사는 집이 연희동이었고 친구는 언니 집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각각 다른 형태와 구조를 지닌 단독주택들이 즐비하고 높은 담장과 정원을 품고 있는 동네, 더 놀라운 것은 지붕에 있는 네모난 굴뚝이었다. 저 굴뚝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 시대 부의 상징인 벽난로가 있다는 뜻이다. 벽난로와 파란 잔디정원에 기가 죽은 나는 동네 초입에 있는 사러가 마트에서 또 한 번 놀라게 된다.

마치 영화 속에서 본 미국의 쇼핑상가를 축소해 놓은 것 같았다. (그 시절 나는 미국을 동경했으므로) 마켓 중앙에 있는 수입상가에 진열해 놓은 알록달록한 초콜릿과 과자. 화장품. 멋스러운 주방기구. 이름 모를 서양 소스들. 그 현란한 아름다움에 빠져 촌티를 풀풀 날리며 바라보고 서 있는 내가 친구는 조금 겸언쩍었을지도 모른다.



그 후 결혼하여 서울의 이곳저곳에 살다가 20년 전 연희동에 정착하였다.

놀라운 것은 내가 처음 느꼈던 그대로 변하지 않은 동네의 모습이었다.


플라스틱 그릇이 처음 나왔을 때 우리 어머니는 살기 좋은 세상이 되었다며 무거운 유기그릇을 사정없이 바꿔치워 버렸다. 아파트가 하늘을 가리고 서 있는 서울에서 단독주택은 버려진 유기그릇만도 못했다. 하지만 연희동은 내가 처음 왔던 군사정권 시대 모습 그대로였다. 늙은 장군이 벗어놓은 옷처럼 품위는 있으나 낡아버린 집들이 옛날의 위용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그곳에 사러가 마켓이 있다. 하물며 그 옛날 그대로다.

나를 홀린 수입상품 가게도 그대로이고 심지어 그때 그 상가의 주인도 여전히 그대로인 가게가 있다고 한다.

함께 늙어가는 것.

연희동과 사러가 마켓은 오래된 부부처럼 그렇게 닮아있었다.


단지 역사가 깊다고 해서 랜드마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어울림과 조화로움은 동의 개념이다.

집과 집이 어울리고 사람과 사람이 어울리는 곳,

집을 건축할 때 첫 번째가 그 건물이 주변과 잘 어울리는가? 를 먼저 생각한다고 귀동냥으로 들었다.

그렇다면 사러가 마켓이야말로 한때 잘 나갔던, 그러나 지금은 빙 둘러쳐진 산 소쿠리 안에서 오손도손 살고 있는 연희동 우리 동네와 너무나 잘 어울린다.


동네의 지붕보다 높지 않은 건물도, 지하가 아닌 널찍한 마당 주차장도, 주차장 가장자리에 심은 아기 벚꽃나무 울타리도, 그냥 마을에 스며든다. 저녁이면 공터가 되는 이곳 주차장은 동네를 몹시 한적하게 보이게도 한다.


인간관계뿐 아니라 건축물에 있어서도 가장 좋은 덕목은 어울림이다. 부부가 서로 어울리면 금실이 좋아 보이고 이웃이 잘 어울리면 동네가 풍요로워 보인다. 동네 초입에 있는 사러가 슈퍼마켓은 쌩퉁맞게 높지도 않을뿐더러 화려하게 치장하여 호객행위를 하지 않는다 그저 아담한 건물이 연희동의 오래된 집들과 잘,,. 너무나 잘 어울린다.


이 글은 어느 특정 가게의 리뷰가 아니다. 그래서 상품의 품질에는 함구하겠다. 다만 더운 여름에 수박 한 덩이를 무겁게 사 들고 온 친구가 "저 아래 사러가 마켓에서 샀어"라고 한다면 나는 그냥 믿고 자를 뿐이다. 오히려 사러가 마켓에서 파는 물건보다 한 곳에서 거의 반세기 동안 꾸준히 사업을 이어가고 있는 마켓 사장님의( 쇼핑센터 대표님이 더 격이 있어 보이지만 왠지 정스럽게 들리지 않아서) 경영철학에 평점을 주고 싶다

외출 후 집으로 돌아오면서, 혹은 선선한 오후 시간에 장바구니를 들고 그곳에 가면 아는 얼굴들이 모인다. 한 번도 자신의 집에서 물건을 산 적도 없는데 늘 웃는 얼굴로 눈인사를 하는 상가 주인도 만난다.


나는 유럽을 여행하던 중에 오래된 중세 건물의 게스트하우스에서 묵은 적이 있다. 그곳은 세월의 흔적이 오롯이 남아있는 겉과 달리 건물 안은 초 현대식으로 꾸며져 있었다.

연희동 사러가 쇼핑 슈퍼마켓을 보면서 나는 가끔 유럽의 건물에서 느꼈던 표리부동을 느낀다.


아무렇지 않게 건물 안으로 한 발짝 들어서면 확 트인 내부의 중앙에 오밀조밀한 수입상가를 만난다. 뜻밖의 조합이다. 요즘 세상에 수입품이 무슨 대수냐고 콧등을 뀌는 사람도 이곳의 아기자기한 물건들을 보면 누구나 한 번쯤 발길을 머물게 된다. 베이커리와 떡집. 약국. 커피숍. 반찬가게와 건어물 가게, 꽃집과 철물점까지 없는 게 없는 쇼핑센터이다. 그리고 그 옆으로 싱싱한 청과와 식료품 해산물 코너를 갖춘 슈퍼가 있다. 이곳이 왜 마켓이라고만 부르기 애매한 곳인지 사러가 쇼핑센터를 들어가 봐야 알 수 있다.


오늘은 동네 미장원에 갔다. 어느 곳이나 미용실은 동네 사랑방이다.

나이 지긋한 아주머니가 파마를 하러 왔다며 헐떡이며 들어와 에어컨 앞을 차지한다.


''아이고 이곳은 시원하네, 사러가 주차장에는

햇빛가리개 하나 만들어 줘야 되겠더라 ''


동네 사람이 불볕더위에서 일하는 사러가 마켓의 주차요원들을 걱정한다. 사랑이 없으면 관심도 없다. 연희동 사람들은 사러가 마켓을 사랑한다. 아마 모르기는 해도 나 스스로 평점을 많이 주고 있는 마켓의 경영자님도 연희동을 사랑할 것이다.

별로 특별하지도 않은데 사러가 쇼핑센터가 우리 동네의 랜드마크라고 한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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