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살이 체험기

by 연희동 김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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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여름이면 더위를 피해 찾아가는 시골집이 있다. 작년 여름에는 사랑하는 반려견과 함께 왔었는데 올해는 우리 부부 둘이서만 오게 되었다.

문득 하늘을 보니 뭉게구름이 몽실몽실 피어오르는데 거기에 우리 또찌가 있다. 또찌 구름이 열심히 우리를 따라오고 있었다.



어디를 보나 온통 산으로 둘러쳐진 이곳은 밤이면 반딧불이가 날아다니는 청정지역이다

신라와 백제의 경계인 나제통문을 지나서 널찍한 개울가를 따라 한참을 달리다 보면 사과나무가 지천인 들판 가운데 아늑한 동네가 보인다.

이곳은 무주 무풍면에 있는 남편 친구의 고향집이다. 돌아가신 부모님이 사시던 옛집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가 은퇴 후 내려와서 살겠다고 한다.


4인 이상 집합 금지로 이번 여름에는 두 가족이 조촐하게 만났지만 매년 이곳에서는 친한 친구들이 모여서 한 여름에 더위를 피하고 시골정취를 듬뿍 느끼며 즐기던 곳이었다.


시골살이가 꿈인 나는 이곳이 좋다. 도심에서와 달리 열대야로 잠을 설칠 일이 없으니 초저녁부터 잠에 곯아떨어지고 꼭두새벽에 일어났다. 이곳에서는 옆집 닭들보다도 내가 더 일찍 일어나는 것 같다.

맨 먼저 텃밭으로 나갔다. 오늘 아침은 호박잎을 따서 쪄 먹어야겠다. 넝쿨 아래 풀밭이 눈에 거슬린다. 주저앉아 풀을 뽑다 보니 이것도 재미가 난다. 어젯밤 한 차례 내린 소나기 덕분에 풀들이 쏙쏙 잘 뽑혀 나간다.

내 뒤를 따라 풀을 뽑으러 들어왔던 이 집 안주인이 갑자기 놀라서 소리를 지른다. 땅속에서 꿈틀거리는 지렁이를 본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 시골살이를 하겠느냐고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실은 나도 지렁이는 싫다. 하지만 그들과 친해져야 시골살이가 수월해진다는 걸 알기에 더 이상의 상상은 금물이다.


뒤늦게 일어난 남편과 남편 친구에게 뽑아놓은 풀들을 치워달라고 했다. 주객이 전도되었다.

온 밭에 풀을 다 뽑자 그제야 햇살이 비치기 시작했다. 말끔해진 텃밭을 보니 기분이 좋다.

가지와 토마토, 고추를 심어놓은 밭들이 이제야 또렷이 제 군락을 드러낸다.


시골살이는 풀과의 전쟁이라고 한다. 아마 내일 아침이면 몇 놈들은 또 고개를 쳐들고 있을 것이다. 나는 남편에게 낮에 읍내에 나가거든 엉덩이에 깔고 앉을 풀 방석 하나를 사다 달라고 주문했다. 내가 이곳에 머무는 동안 풀들을 다 해치울 작정이다.


시골에서 낮동안은 정말 무료하다. 나는 이 무료함을 즐긴다. 아침에 풀을 뽑고 나서 빨아놓은 옷들이 빨랫줄에서 보송보송 말라가고 있고 정물처럼 꼼짝하지 않는 창밖 풍경 속에 고추잠자리 한 마리가 맴돌다 간다.

끄덕끄덕 돌아가는 선풍기 소리와 한낮의 매미 울음소리가 여름의 지루함을 더욱 가중시킨다. 파리채를 들고 날아다니는 파리를 쫒아다니며 참으로 오랜만에 한가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번 휴가는 일부러 책도 아이패드도 챙기지 않았다. 서울에서도 할 수 있는 것들은 하지 않기로, 오직 시골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것들을 흠뻑 느끼고 즐기다가 오기로 마음먹었다.


집 앞에는 냇물이 흐르고 있고 그 위로 다리가 놓여있다. 다리 밑이 그렇게 시원하단다. 다리 밑에는 이미 널찍한 자리가 마련되어 있었다. 냇물 바닥에 발을 담그고 준비해 둔 야외 의자에 누워있으면 아..., 무릉계곡이 따로 없구나,

다리 밑 그늘은 바깥의 쨍쨍한 햇빛은 얼씬도 못하게 철통방어를 하고 있다.

다리 밑, 왠지 낯설지 않은 말이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편애를 등에 없고 나는 오빠들에게 안하무인이었다. 그런 나를 기죽게 하는 오빠들의 유일한 한방이 있었다.


''다리 밑에서 주워 온 게 까불고 있어''

''내가 봤어 다리 밑에서 너 주워 오는 거''

네 명의 오빠들이 한 마디씩 거들면 나는 그동안 등등했던 기세는 어디로 가고 영락없이 나락에 빠진 소공녀가 되어버렸다.

다리 밑은 그렇게 나를 주눅 들게 한 곳이었는데 지금 이곳은 마냥 주저앉아 쉬고 싶은 곳이다.



시골집이 좋은 것은 누군가의 삶이 아직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옛 것은 모두 구닥다리로 치부해서 버리고 바꾸는데 비해 이곳은 친구 부모님의 손길이 묻은 살림살이가 그대로 있다.

창고에 나란히 걸어둔 농기구들과 어머니가 쓰시던 소쿠리며 항아리, 가마솥이 시간이 멈춰버린 듯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

나는 이 집을 꾸미고 싶었다. 남의 집도 내 집인양 꾸며주고 싶은 게 내 오지랖이다.


부엌 창문 밖으로 보이는 뒤꼍에 친구 어머니의 항아리를 옮겨 놓았다. 둘이서 들기 힘들 만큼 커다란 항아리였다. 이런 항아리에 어머니는 무얼 담으셨을까? 자식들에게 나눠 줄 먹거리를 담으며 항아리만큼 마음이 부풀었을 것이다.


커다란 항아리 세 개를 뒤꼍에 나란히 두고 뚜껑에 물을 담아 수생식물을 늘어 뜨렸다. 나는 인테리어 전문가는 아니지만 옛 것과 새 것을 교합하면 또 다른 시대의 것이 만들어진다는 걸 경험을 통해서 알고 있다.

부엌에서 일을 하다가 창밖을 바라보면 삭막했던 조금 전과 달리 꽃 뚜껑을 이고 있는 항아리가 보인다

마치 시어머님이 푸짐하게 앉아서 부엌에서 일하는 며느리와 눈을 맞추고 있는 듯하다. 며느리의 시간과 시어머니의 시간이 창문 하나 사이로 이어지며 두 시대가 공존한다


뒤꼍에는 대밭이 있다.

대나무 울타리를 기어 올라가는 나팔꽃을 연출하고 싶었다. 애꿎은 남편들에게 뒤꼍에 대나무를 잘라달라고 일감을 부탁했다.

이웃집과의 사이에 담장이 무너진 곳이 있었다. 담장 사이에 대나무 울타리를 세워 둔 뒤 풀을 뽑을 때 발견한 나팔꽃들을 한곳으로 모아 심었다. 때마침 소나기가 한차례 지나가면서 옮겨 심은 나팔꽃들이 모두 싱싱하게 되살아 났다.


언젠가 시골살이가 하고 싶다는 글을 브런치에 올렸을 때 많은 분들이 댓글을 달아 주셨다. 시골생활이 만만치 않으니 함부로 일을 벌이지 말라는 부탁이었다.

비록 닷새 동안이었으나 시골체험을 하는 동안 여러 작가님들의 염려가 몸에 닿았다.

매니큐어를 바른 손톱은 까맣게 때가 끼고 뭉툭해졌으며 여기저기 모기에 물린 상처는 아직도 가렵다.

그런데 한심하게도 나는 비워두고 온 시골집이 염려가 된다. 풀은 얼마나 자랐을까? 나팔꽃은 대나무 울타리를 잘 타고 올라가고 있을까? 토마토는 저절로 익어서 떨어졌겠지? 항아리 뚜껑에 담아 둔 물은 마르지나 않았을까?


체험은 체험일 뿐 실체와는 다르다는 것도 안다.

그런데도 나는 시골이 좋다.

그곳에는 내가 바쁘게 사느라 지나친 것들이 아직도 그대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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