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톡 쏘는 따뜻한 기억들
09화
햇빛 도화지에 그린 그림
by
연희동 김작가
Dec 5.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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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향으로
지어진 우리 집은 겨울에는 햇빛이 북쪽으로 난 창문까지 닿을 만큼 깊숙이 들어옵니다. 여름내 쳐 둔 데크 위의 어닝을 걷어 둔 것도 그 때문이랍니다.
햇빛이 준 화선지에 그림자로 그림을 그리는 시간
이른 아침 햇빛은 하얀 벽에 스크린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사라져 버릴 최고의 화선지에 그림을 그립니다.
그림자 화백은 일어나자마자 부스스한 머리로 작품을 만듭니다. 오늘은 남편도 함께 거들어 주었습니다. 우리의 초상화가 뚝딱 완성되었습니다.
빛과 그림자는 그렇게
두 사람을
화폭에 담았습니다.
그림자 초상화
실체의 형상과 꼭 닮은 그림자이지만 사람들은 그림자를 믿지 않습니다. 그것은 곧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림자는 형태가 있는 한 영원히 사라지지 않습니다. 다만 형상을 비추는 빛이 사라질 뿐이죠.
공중으로 비상하는 비둘기
초상화를 지우고 새로워진 화선지에 한 마리 비상하는 비둘기를 그려냈습니다. 때론 작가의 창작 의도와 다르게 해석하는 사람들로 인해 원작자조차 혼동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남편은 내가 만든 작품이 비둘기가 아니라 힘차게 꼬리를 치며 물속으로 들어가는 고래의 꼬리가 연상된다고 합니다.
보아 구렁이를 삼킨 코끼리를 나는 모자라고 우긴 셈이지요
물속에서 헤엄치는 거대한 고래의 꼬리
내친김에 나는 고래의 꼬리를 만들어 보려고 합니다. 멀리 있는 섬을 그려내느라 힘든 작업을 해야만 했습니다. 꼬불탕 거리는 나의 파마 머리카락을
햇빛에
이끌어내어야 했기 때문이죠 섬이 그려지자 바다가 보이고
그제야 내 눈에도 대양을 헤엄치는 고래가 보였습니다.
초가을, 아버지는 문풍지를 새로 바르십니다. 햇빛이 '쨍'하고 튕겨져 나올듯한 뽀얀 한지문에 멋진 수묵화 한 점이 그려졌습니다.
나뭇가지에 앉아있는 한 마리 새가 그림자로 투영된 것이었습니다. 오늘 나는 어린 시절 내가 본 묵화 한 점을 모사했습니다.
곧 날아가 버릴 것 같아 사진을 찍어 붙잡아 둡니다.
긴 겨울 내내 우리 집은 그림자 갤러리가 될 것입니다. 개관 시간이 짧은 게 흠이지만 햇빛 도화지에 그린 그림은 매일
바뀌어 새로운 작품으로 전시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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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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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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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희동 김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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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름 피우기 ><프로방스에서 쌀 팔러갑니다 > 저자, 독자보다 작가가 많은 시대에 작가로 살고 있습니다. 소소한 이야기 속에 진실을 담아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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