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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붉은 지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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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희동 김작가 May 21. 2020

봄날의 스케치

어느 날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딸아이가

''엄마는 참 곱게 늙네''라고 한다


비릿해서 싫어하던 굴이 언제부터인지  맛있어지고  진한 향기 때문에 거부했던 미나리 향이 어느 날 갑자기 좋아진 것처럼  무심했던 것들이 언제부터인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할 때가 있다.


올봄. 내 주변에  펼쳐지는 풍경들이 그렇다. 갑자기 불어닥친 바이러스 공포로 긴 겨울을 동면하고 있었지만 봄은 어김없이 찾아왔고 나는 평년의 봄이 아닌 처음 겪는 계절처럼 봄을 맞고 있다

유난히 더 자세히 바라보게 되고 눈길 닿는 곳마다 예쁘고 소중하다. 그래서 더욱 이 봄을 보내기가 싫다.


일 걷는 산책길은 하루하루가 다르다.

오늘은 그 길에서 내일은 변해버릴 풍경을 사진에 담았다.



찔레꽃#1


하얗게 나풀거리는 꽃잎들, 찔레 무덤. 꽃 뒤에 무덤이 붙는 것은 찔레꽃 밖에 없다.

찔레꽃을 노래한 시는 모두 다 아프다. 소복한 꽃무덤이 아프고 연한 찔레순이 아프고 누구는 찔레꽃 같은 첫사랑도 아프다고 했다.

엄한 꽃에게 자신의 감정을 이입시켜 슬프게 만들다니..., 몹쓸 사람들이다.


나는 편견 없이 찔레꽃을 바라보았다.

하얀 구름 같은 레꽃이 웅크리고 앉아있다. 꼬리를 치며 나에게 달려올 것 같다. 덥석 안아주고 싶다.

지난가을 떠난 흰둥이 세찌가 보고 싶다

찔레꽃은 역시 아프다. 




                                                          찔레꽃

 

기똥풀#2


제주도의 유채꽃밭처럼 산 마루를 온통 노랗게 물들이고 있는 애기똥풀, 얼마 전만 해도 눈길조차 주지 않던 빈 땅이었다.

지나가던 아줌마가 기똥풀에게 몹쓸 말을 한다.

''저것들 싹 다 뽑아버려야 돼''

외래종인 주제에 토종식물을 몰아내고  자리를 차지했다고 화를 냈다. 꽃을 보고 투덜거리는 사람은 처음 봤다.


애기똥풀이 외래종이라고? 나는 지금에야 알았다.

수더분한 이름만 듣고 노란 이 풀꽃이 당연히 우리 꽃인 줄 알았다. 하지만 어때

미국 사람 알스가 철수라는 이름으로 귀화하여 우리나라에서 잘 살고 있는 것과  뭐가 다른지....

아무리 들여다봐도 미움받을 구석이 없다.


괜찮아, 네가 이곳에서 살아도 되는 이유는 열개도 넘어 어쩌면 너에게 터전을 뺏기지 않으려고 우리 토종꽃들도 더 열심히 살지도 몰라,  

봄날, 우리나라 산야애기똥풀없는 곳이 어디 있어.

화해서 열심히 잘살고 있으면 우리나라 꽃인 거지..., 괜찮아, 괜찮아


                                                애기똥풀이 없는 풀밭은 어떤 풍경일까



하늘을 담고 있는 물 웅덩이#3


낮은 골짜기 아래  웅덩이에는 나무 그림자가 거꾸로 처박혀 머리를  감고 있다. 얼음 위를 스치듯 달려가는 빙상선수처럼 물 위를 잽싸게 달리는 소금쟁이가 신기하다.

작은 곤충만 바라봐도 몸이 가렵던 나였는데 저게 왜 신기해 보이는지. 나도 참...,

작은따옴표 같은 올챙이들이 헤엄치고  있다.


저 비닐 주머니 같은 건 뭐니?

도롱뇽의 알끈이에요

앗 올챙이의 뒷다리도 보았다.

무당개구리 출현..., 신나서 소리치는 아이들

이 나이에도 아이들보다 모르는 게 있다니...,


봄은 곧 사라질 올챙이의 꼬리처럼 짧다.

                                  웅덩이 안에는 꽤 많은 생물들이 살고 있었다.


약수터#4


물과 공기 햇빛은 언제나 공짜일 줄 알았다. 그런데 물을 사 먹게 될 줄 몰랐다.

사회가 불안해지면 맨 먼저 사람들은 물부터 사들인다. 집집마다 정수기가 있어서 매달 물값을 내고 물을 먹는다.

인적이 드문 약수터에는 물이 하염없이 흐르고 있었다. 누군가 그 물이 아까웠던지 붉은 고무 대야를 층층이 받쳐놓았다. 정겨웠다.


저 물이 흐르는 끝에 웅덩이가 있었다. 물은 그냥 흘러내리지 않고 제 할 일을 다하고 있다.

사람들이 외면한 약수터지만  물은 더 많은 생물들을 키우고 있었다.

                                      약수터 층층이 대야가 정스러웠다


사진 찍는 기술을 배워야 할까 보다 내가 본 풍경보다 사진이 훨씬 덜하다. 내일은 또 어떤 풍경을 마주하게 될까? 아쉽고 기대되는 봄날의 풍경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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