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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붉은 지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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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희동 김작가 May 26. 2020

밀물에 흔들리는 조각배

둘째 동서가 형제들을 초대했다. 장소는 인천 잠진도에 있는 횟집. 코로나가 잠시 주춤하고 있는 틈새에 오랜만의 모임이다.

강변북로를 지나  탁 트인 인천 공항 고속도로를 달려보는 게 얼마만인가.


오월. 아이들의 중간고사가 시작되는 이 맘 때면 나는 여행가방을 메고 이 길을 달렸다. 시험기간 중에는 학원을 오지 않는 아이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일주일 정도의 휴가가 주어진다.  그래서 더욱 이 계절의 공항 가는 길  풍경이 낯익었다.

인천공항을 지나  무의도 용유도로 향하는 길로 직진을 하면서 왠지 자꾸만 미련이 남는다.

헐렁한 공항 출국장을 들어가서 걸어봐야지만 이 미련이 끝날  같다.


싱싱한 횟감이 한상 가득 차려 진 식탁에 시댁 형제들이 모였다. 오늘의 만남을 위하여 모두 각자의 앞에 놓인 잔을 채웠다.

오랜만에 만남이지만 오늘의 만남은 의미가 깊다.

둘째 동서의 마음에 봄 햇살이 움트고 있다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이 년 전, 건강하던 둘째 시동생이 갑자기 쓰러졌다는 소식을 전했다. 놀라서 달려간  병원의 중환자실에는 혼수상태의 시동생 곁에 반쯤 혼이 나간 동서가 있었다.

세상에..., 날벼락도 유분수지 건강하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이게 무슨 일인지...,


복잡하게 얽힌 뇌세포의 혈관에 이상이 생긴 걸 누구라도 알 수가 없다. 조금 전까지 시동생은 운동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병원으로 바로 이송되어 급한 상황을 넘겼다는 것뿐이었다.


동서의 얼굴을 바로 볼 수가 없었다. 나보다 열 살 아래의 젊은 동서다. 무슨 말로도 위안이 안되니 그저 어깨만 다독여 줄 수밖에....

동서의 친정엄마께서는 차라리 늙은 내가 아프고 말지.., 라며 자탄을 하신다.

환자보다도 동서에게  더 마음이 쓰이는 건 어쩌면 한 집안의 여자로 사는 공동체 운명이 더 가까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동서지간의 운명은 어느 한 부분 닮았다. 생판 낯선 사람들이 같은 피를 나눈 형제에게 시집을 와서 한 집안 식구가 되고 남편 부모님을 내 부모로 모시며 며느리라는 이름으로 연을 나누고 산다.


쁘고 좋은 일에는 덤덤하던 인연이라는 단어가  누구 한 사람 가슴이 아픈 일을 당하면서 내 일처럼 아픈 단어가 되어버렸다.

몸의 반쪽이 굳어버린 시동생을 보면서 자꾸만 동서의 얼굴을 바라보게 된다.


부엌보다는 거실에서 어머니 곁을 맴돌던 동서였다. 유난히도 명절 때면 당직을 서야 한다며 일찍 집을 나서던 동서였다.

그런데도 밉지 않은 구석이 있는 쾌활하고 유쾌한 성격의 동서였는데 그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힘들어요 속상해요 라며 전화 한 통 하련만 인간은 원래 혼자였으니 각자의 몫을 견뎌야지요 라며  오히려 걱정하는 나를 머쓱하게 만드는 동서가 의연해 보이다가도 저러다가 부러지면 어쩌나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횟집 앞에는 서해바다가 펼쳐져 있다. 물에 밀려 드러난 갯벌에는 조개를 캐는 사람들이 간간이 보인다.

식당의 주인이 직접 배를 타는 선주라서 횟감들은 모두  오늘 새벽에 갓 잡아 온 자연산이라고 한다. 동서가 운탕 속에서 게알을 건져 내 수저에  듬뿍 얹어주며

 

''형님 그거 아세요? 바다의 모든 어류들은 저마다의 달에 R이 들어있는 달에는 모두 알을  품고 있대요''


참 영어 선생님다운 조크다. 그러고 보니 일 년 열두 달의 영어단어  중에 오월부터 팔월까지는 그달의 단어에 R이 들어 있지 않았다. 그래서 새끼들이 자라는 그때가 금어기라고 던가...,. 영어의 R 발음과 우리 단어인 알을 연관시켜 쉽게  이해시키는 학습법은 동서만의 화법이다. 교직에 몸담고 있는 동서는

어머니의 눈높이에서 가장 어머니와 많은 대화를 나눴던  며느리였다.

오늘은 내가 그때의 시어머니가 된 기분이다.


식사 후 바닷가를 거닐었다. 동생과 형을 의지하고. 지팡이 없이 걷는 시동생이 대견하다.  멀리 무의도와 실미도가 보인다. 썰물 때가  되면 하나가 되고 밀물이 들어오면 두 개가 되는 섬이라고 한다.

어쩌면 어려울수록 하나가 되어 이겨내는  부부모습을 보는 것 같.


바닷물이 들어오는 건 금방이다. 어구에 묶여있던 고깃배들이 바닷물에 둥실 떠서 흔들거린다. 이제야 바다가 제 모습을 찾은 것 같다.

동서의 미소가 편안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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