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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붉은 지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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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희동 김작가 Jun 16. 2020

그렇게 라도 쓰고 싶었던 글


어떤 연극배우의 인터뷰기사를 읽었다.


"연극은 왜 하게 되셨어요?"

"안 하면 미칠 것 같았어요"


안 하면 미칠 것처럼 무엇에 매달려 본 일이 없는 나는 공감은 못하지만 이해는 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이 나를 살게 하는 일이라면 죽을힘을 쓰고라도 해내는 게 당연하다.


새벽에 눈을 떴다. 일어나기도, 다시 잠들기도 어중간한 시간인데 더는 잠이 올 것 같지 않다.

새벽이란 시간은 참 묘하다. 첫새벽에 읊조린 유행가 멜로디가 나도 모르게 하룻 내, 입가에서 맴돌고 학창 시절, 새벽에 하는 문제 풀기는 웬일인지 집중이 잘 되었던 거 같다.


나야 이제 마음만 먹으면 내 마음대로 시간을 사용할 수 있는 한가한 사람이 되었으니 부득이 새벽잠을 안 자면서까지 해야 할 일은 없다. 버릇처럼 아이패드를 켜고 길들여진 고양이처럼 브런치를 누른다.


내가 구독하는 작가들의 글이 올라와 있다. 그중에 몇 분은 매일 글을 쓴다.


멀리 캐나다에서 호주에서 태국에서 밤새 달려온 싱싱한 글이 있고 아이가 어린이 집에 가 있는 잠깐 동안의 시간에 카페에서 쓴 글도 있다.


한 작가의 글을 읽었다. 일요일 하루 직장에 나가지 않는 그날에 글을 쓰려는데 집안일이 눈에 밟힌다. 집안일쯤이야 모른 체할 수 있지만 가족들의 식사를 모른 체할 수가 없다.

컴퓨터 앞에서 글을 쓰는 엄마. 한 문장 쓰고 큰 아이 밥 차려주고 다시 또 한 문장 쓰고 뒤늦게 작은 아이 밥을 차려주고 그러다 보니 문맥은 자꾸 끊기고,.. 결국 오기로 글의 제목이 '오늘은 도저히 글을 못 쓰겠어'였다.


 글을 읽으며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 카페에서 글을 쓰는 사람들을 보면 주변의 소란스러움에 제대로 집중이나 할 수 있을까 걱정스러웠는데 그곳이 감성의 피신처였다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하고 있다.


구독자수가 1,6만이나 되는 작가의 글을 읽었다. 그의 글을 읽으며 독자가 많을 수밖에 없는 까닭을 알 것 같았다.


새벽에 일어나 무언가 쓰고 아이들을 기관에 맡기고 무언가 쓴다. 두 시간 세 시간 자꾸만 툭툭 끊어지는 시간마다 결국 그 무언가는 끝내 완성되지 못하고 가슴속에 묵직하게 얹혀서 몸과 마음을 차게 만든다 (고수리,  '걷지 못하고 멈춰서는 날들'  중)


그의 마지막 문장 '그렇게라도 쓰고 싶어서요'.라는 말이 가슴에 오래 남는다. 아마 오늘 새벽에 읽은 첫 글이니 이 문장은 오늘 하룻 내  내 가슴 언저리에서 어른거릴 것이다.


참 열심히들 사는구나. 아이를 키우고 집안일을 하면서 글을 쓴다. 취미로 멋 부리는 일이 아니라 직업이 글쟁이들이다.

시간이 없어 쩔쩔매면서도 진솔한 글을 뽑아내는 젊은 작가들을 보면서 넉넉한 시간 부자인 나는 부자 아빠가 만들어 준 근사한 공부방을 갖고도 열심히 공부를 하지 않는 열등생처럼 느껴졌다.


수십 년간 작가라는 이름을 달고 살았던 나는 저만큼 절실하게 글을 썼던가. 누구의 아내, 엄마, 며느리, 선생님..., 호칭이 하나씩 늘어갈 때마다 내 이름은 흐려지고. 시간은 점점 줄어들었다. 지금 이 젊은 작가들처럼 열정이 없었던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은 나중으로 미루었고 언제나 '무엇이 중한데'에서 나는 맨 꼴찌였다.

지금에야 생각한다. 그때 그 조각내서 쓰던 시간들 중 한 귀퉁이 떼어 열심히 글을 썼더라면, 살아있는고기처럼 생생한 문장을 낚았을 텐데...,


젊어서 발이 부르트게 춤을 춰 본 이가 춤꾼으로 성공을 했고 일에 미쳐서 살아온 사람이 기업의 총수가 되었다.

노력도 해 보지 않았으면서 누구는 어떻고 저쩌고..., 나는 그만큼 노력했을까부터 가늠하고 남을 평가해야 할 것 같다.


아무리 많아도 나눠 줄 수 없는 게 있다. 태어날 때 분배받은 자신의 시간을 누구는 알뜰하게 사용하고 누구는 흥청망청 써버리고 떠난다. 이제라도 남아있는 시간 동안 내가 좋아하는 일에 미쳐보고 싶다.


존경이라는 말을 남발하는 것 아니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육아와 가사를 동반하면서 자신의 일을 게을리하지 않고 있는 작가들에게 존경이라는 말을 해 주고 싶다. 자녀를 기르는 일이 한순간도 눈을 떼서는 안 되는 일인 줄을 알면 누구라도 그 말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언제인가 미장원에서 머리에 파마를 말고 있는 젊은 엄마가 문제집을 열심히 풀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부동산 중개인 자격증을 따기 위해 공부를 한다고 했다. 머리를 하는 시간조차 그냥 허비하지 않는 그 모습을 보며 꼭 시험에 합격하길 바란다고 격려를 해 준 적이 있다.


오늘 새벽에는 가사와 육아에 시달리면서도 '그렇게라도 글을 쓰고 싶었어요'라고 한 젊은 브런치 작가에게 파이팅을 보낸다.


영국의 한 카페에서 글을 쓰며 고뇌하는 남자를 오랫동안 바라본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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