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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붉은 지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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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희동 김작가 Jun 25. 2020

남편의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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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녀가 어제 외갓집인 우리 집에서 잤다. 틈만 나면 외갓집에 오고 싶어 하는 손녀의 마음과 어떻게든 손녀와 함께 있고 싶은 할머니 마음이 의기투합이 된 것이다.


학교가 개학은 했지만 매일 가는 건 아니었다. 일주일에 한 번. 혹은 두 번, 학교에 갈 뿐. 그 외에는 집에서 온라인 수업을 하고 있다.


일어나자마자 서재로 간 아이가 인터넷 수업을 듣는다. 처음 보는 풍경이 낯설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다. 아이가 컴퓨터 화면을 통해 공부하는 모습이라니..., 생각해 본 적도 없는 신세계를 보는 듯하다.


오늘 수업은 모두 5교시. 오늘은 방향 화상수업이 (ZOOM) 아닌 온라인 수업이라서 화면에 아이의 모습이 비치지 않으니 주변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ZOOM 수업일 경우에는 집안사람들은 모두 숨을 죽여야 한다.

반 학생들과 선생님이 화면을 통해 서로 바라보며 수업을 하기 때문에 주변의 소음이나 뜻밖의 돌출 화면은 자칫하면 아이의 수업을 방해하는 요소가 된다.


생전 처음 하는 수업환경에 웃지 못할 에피소드가 간간히 벌어진다.

형이 수업하고 있는 화면에 갑자기 동생이 나타나는가 하면 거실에서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야 오늘 점심은 비냉으로 할래? 물냉으로 할래?


그런가 하면 갑자기 택배 아저씨의 목소리가 들리고 황급하게 뛰어가는 엄마의 발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아이가 인터넷 수업을 하는 중에는 그곳이 어디건 아이의 교실이기 때문에 집안 식구 모두 조용히 해야 하는 건 필수다.


오늘은 70년 전, 6.25전쟁이 일어난 날이다.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전쟁은 아직도 분단이라는 상처를 안고 있고 오늘 아침 아이는 인터넷으로 그 역사적 상황을 배우고 있다.


아이는 전쟁의 실체를 모른다. 그저 과거에 있었던 남 북한의 싸움으로 알고 있을 뿐, 아직도 끝나지 않고 있는 정전의 상황에 대하여 무심하다. 하긴 어른인 나도 서로가 대치중인 관계에 대하여 가끔 잊고 있을 때가 있다.


 역시 전쟁을 책으로만 배운 세대지만 책 보다 전쟁을 경험한 윗세대 부모님들의 이야기가 실제로 다가왔었다. 70년의 세월은 전쟁의 아픔을 이야기해 줄 사람들의 기억을 흐리게 하고 시대의 증인들은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전쟁을 겪은 어른들의 이야기가 오히려 산 경험이 된 것처럼 우리 아이에게도 내가 알고 있는 전쟁에 대하여 이야기해 주고 싶었다.


                               

남편은 전쟁이 일어난 그 해 팔월에 태어났다. 온 나라가 한참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있을 때

시어머님은 산기를 느꼈고 아이를 낳자마자 공습경보가 시작되었다. 폭격을 피해 방공호 속으로 피신해야만 했다. 남편은 태어날 때부터 이미 전쟁을 경험하였다.


손녀 아이의 눈이 커진다. 막연하게 우리나라 역사의 아픔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자신의 아버지가 전쟁의 피해자라니..., 처음 듣는 말에 놀란 손녀는 할아버지가 그렇게 옛날 사람이었냐듯이 바라본다.


시어머니는 금방 태어난 아기를 강보에 싸서 시아버님께 주면서 얼른 아이를 데리고 방공호 안으로 피신하라고 일렀다.

갓 태어난 아이는 몸을 씻길 여유조차 없어서 엄마의 양수가 그대로 묻은 아기의 살결은 미끄러웠다.

시아버지는 빈 강보만 들고 뛰쳐나가고 아이는 발가벗겨진 채로 땅바닥으로 나뒹굴었다. 전쟁 중의 다급했던 상황이 눈앞에서 그려진다.


손녀 아이의 눈이 발개졌다. 할아버지를 바라보는 눈에 연민이 가득하다.


''그때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으면 엄마도, 지금의 나도 태어날 수 없었겠네..., ''


비록 이 이야기는 전쟁 중에 겪어야 했던 한 집안의 에피소드에 불과하지만 전쟁은 그런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앗아가기도 하고 다음 세대를 이어 갈 수 없도록 모든 걸 단절시키기도 한다.


과연 전쟁은 누구를 위한 걸까? 총을 들고 전장으로 나간 군인들? 남쪽과 북쪽에 살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이데올로기에 묶여버린 백성들?

누구도 전쟁을 원하는 사람은 없다. 


얼마 전 폭파된 남북 공동 연락사무실의 참상이 아직도 전쟁이 끝나지 않은 증거라고 말해주기가 두려운 것은 우리 아이들에게 전쟁의 불안이나 공포심을 물려주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아야  한다. 역사를 올바로 알아야 바로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할아버지가 겪은 전쟁으로 어쩌면 자신이 이 세상에 태어나지 못하였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던 아이는  

전쟁이 이 세상에서 사라져야 하는 이유를 절실하게 깨달은 것 같다.


내가 저 아이만 했을 때 우리 아버지는 6.25때 공산당에게 잡혀 고초를 겪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 주셨다. 학교에서 배운 남북관계보다 그때 입은 아버지의 상처를 보며 자연스럽게 반공소녀로 자랐던 나였다.

그러고도 반세기가 흘렀지만 바뀌어진 건 하나도 없다.


아이들이 누구를 미워하지 않고 순수하게 자라기를 바란다.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겪고 또 그 할아버지가 겪었던 전쟁의 상처는 더 이상 아이들에게 세습되지 않았으면 한다. 언제부터인지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아이들을 위해서 세상이 좀더 평화로워 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제는 어떤 형태든 종전을 바라는 마음이 큰 유월의 아침이다.


인터넷 수업에 열심인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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