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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붉은 지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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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희동 김작가 Jul 06. 2020

작은 것이 더 좋다

지인의 아들이 결혼식을 올린다. 요즘에는 혼주나 축하객이나 초대하고 참석하기가 조심스러운 시기지만 30년 지기 우정이 코로나의 두려움을 앞질렀다.


결혼식 장소인 가회동 성당은 작고 아담한 한옥구조의 건물이다. 손님들마다 열을 체크하고 손소독제를 뿌리고 출입 명단을 적고 나서야 식장인 본당 건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양가 모두 축하객들의 인원규제되어 있어서 얼마 되지 않은 손님들이 자리에  띄엄띄엄 앉아있었지만 식장이 꽉 차 보이는 것은 본당 내부 역시 작고 아담하기 때문이다.


최근 몇 년 동안 내가 참석한 결혼식 중에 오늘처럼 집중해서 끝까지 앉아있어 본 적이 드물다.

성당 신부님의 주례 말씀 대신 서로에게 쓴 신랑 신부의 편지 낭독에 이어 반지 교환 시간, 이층 성가대에서 울려 퍼지는 축가, 신랑 아버지가 속해있는 합창단의 노래로 마무리된 예식이 끝나고 밖으로 나왔다.


저녁에 식구들을 초대하기로 미리 약속이 되어있어서 처럼  만난 지인들과도 인사만 나누고 서둘러 헤어져서 돌아오는 길에 북촌의 호젓한 한옥의 풍경을 보게 되었다.

내 발길은 집이 아닌 북촌의 골목길로 들어서고 있


돌담장이어진 좁은 길을 혼자서 걸어오면서 문득 이곳이 어느 미지의 여행지인 듯한 착각이 들었다.


언제나 관광객으로 들끓었던 한옥 골목길이 조용하다. 길가의 가게들은 왜 그리도 아기자기한지, 아무 곳이나 불쑥 들어가도 갤러리 같은 풍경이다

 

주말인데도 거리가 한적하였다. 이제야 비로소 북촌 마을의 고즈넉한 분위기가 되살아나는 것 같다. 언젠가 이곳을 을 때 북촌은 드라마의 세트장 같았었다.

한복을 입은 여인들이 나비처럼 치마를 팔랑거리며 이곳저곳에서 사진을 찍느라 분주하였더랬다.

어느 집 대문간에 각 나라 말로 쓴 조용히 해달라는 메시지를 보면서 코로나 이전의 동네 모습이 상상되었다.

지금은 간혹 지나가는 사람들만 있을 뿐 여행자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그동안 관광지로만 여겼던 북촌이 오랜만에 옛 모습을 지닌 서울의 한 동네로 보였다.


어느덧 골목 끝 언덕까지 올라왔다.

서로 스치듯 처마를 마주하고 있는 집들과 검은 기와가 주는 정갈함. 오손도손 지붕을 맞대고 있는 지붕이 정스러워 보인다


어느 대문으로 올라가는 돌층계 위로 나팔꽃 줄기가 따라 올라가고 있다. 나팔꽃 새순을 비껴서 올라 다녔을 집주인의 마음이 보인다.

기와에서 떨어지는 빗물을 모아 내리 물받이 조차 허투루 만들지 않았다. 비가 오는 날이면 봉황이 물을 토해내는 광경 꼭 한번 보고 싶었다.

오래된 기와집 지붕 위에 돋아난 풀잎도 예스럽다.


이곳에 있는 한옥들은 그다지 평수가 넓지 않다. 그런데도 작은 뜰이 있고 뒤꼍이 있고  토방 마루와 중정이 있다. 아담하지만 답답하지 않고 작아서 더 아늑하고 작아서 더 다정해 보인다.


촌의  모습들


오늘 혼인 미사를  가희동 성당도 다른 성당보다 본당의 규모가 작았다. 백 명으로 한정된 양가 하객들이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여 듬성듬성 앉아있었지만 본당이 꽉 찬 느낌이 드는 것은 한옥 구조로 된 성당의 건물이 작고 아늑하였기 때문이었다.

내가 오직 혼인 미사에만 집중할 수 있었던 것도 그곳의 공간이 주는 아늑함과 편안함 때문이다. 느 예식장처럼 혼잡스러웠다면 오랜 시간 축하객의 자리를 유지하지 못했을 것이다.


사람들이 많이 모여 북적거리는 잔치도 흥겹지만 오늘처럼 조촐하지만 알뜰하게 치르는 잔치도 즐겁다.


요즘은 혼 풍속이 많이 달라졌다. 지금이야 코로나로 인한 예방차원으로 모임의 규모가 작아졌다지만 그러기 이전에도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스몰웨딩이 서서히 붐을 일으키고 있었.


공원 한편에서 올리는 야외 결혼식과 작은 카페에서 하는 결혼식, 양가 친척들만 있는 가운데 올리는 스몰 결혼식도 있다.  탤런트가 올려서 화제가 된 밀밭 결혼식은 스몰웨딩의 진수였다.


뭐든 허세를 버리면 작아지고 대신 본질에 충실하게 된다.


의. 식. 주. 모두가 마찬가지다. 화려한 뷔페 음식이 먹고 나면 배만 부른 것처럼 크고 웅장한 집은 부러움만 남는다. 그런데 북촌의 한옥집을 보고 난 뒤 아담한 한옥집에서 살아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작은 것은 꿈을 꾸게 만든다,


2년 전, 프로방스의 아름다운 마을을 다녀온 뒤 그곳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 한동안 사라지지 않았었다. 그때처럼 오늘 가회동 북촌 마을을 다녀뒤에 살아보고 싶은 마음이 다시 들게 된 것이다.


무릎 꿇고 걸레질하면 반질반질하게 나뭇결이 살아나는 마루와 빗자루 자국이 선명한 마당이 있는 집, 봉숭아와 붓꽃이 어울리는 아담한 한옥집에서 살아보고 싶다.



         낙숫물이 떨어지는 기와집 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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