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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붉은 지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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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희동 김작가 Dec 15. 2020

 곤드레 나물밥에서 친구의 향기가 난다

오늘은 뭘 해 먹지? 아침식사는 샌드위치 혹은 샐러드와 빵으로 간단히 해결하기 때문에 점심은 하루 세 끼 중 가장 푸짐하게 먹는 게 루틴처럼 되었다. 푸짐하다고 해서 음식의 가짓수가 많은 게 아니라 하루의 식사 중 가장 신경을 써서 만든다는 뜻이다. 그래서 매일 점심시간이 되면 무얼 먹을까를 고민하게  된다.

팬데믹 이후로는 집에만 있는 시간이 많아져서 더욱 반찬에 신경이 쓰인다.

한국사람은 찌개만 있으면 되지 뭐....

육개장도 끓여보고 청국장, 김치찌개, 생선매운탕 등을 그때그때 재료를 사서 끓여 먹었는데 오늘은 맵고 짠 찌개 말고 뭐 다른 것 좀 없을까? 하고 남편이 운을 띄었다.


사실 김장을 한 후, 우리 식탁은 김치가 반찬 가짓수를 다 차지하고 있었다.

배추김치. 무김치. 갓김치와 파김치 거기에 김치찌개까지 있는 날은 완전 김치 천국이다.


냉장고를 뒤져보았다. 냉동실 안에서 꽁꽁 얼려둔

나물 봉지를 발견했다. 봄에 넣어 둔 곤드레나물이었다. 나물을 보는 순간 오늘의 메뉴가 생각났다. 오늘 점심은 곤드레 나물밥을 만들어야겠다.


 양평에서 원생활을 살고 있는 친구는 가끔 서울에  때마다 풋내음 가득한 채소들을 담뿍 안고 온다. 향도 맛도 좋은 귀한 먹거리들은 친구가 자신의 텃밭에서 직접 가꾼 것들이다.


올봄에  우리 집에 들른 친구는 자동차 뒷 트렁크에서 봄나물을 꺼냈다. 상추, 오이, 취나물 , 두릅 , 곤드레나물...,

모두 정갈하게 다듬고 씻어서 삶은 뒤. 나물 봉지마다 제각각 이름까지 적어서 담아왔다. 삶아놓으면 다 똑같은 나물이라고 생각할 헛똑똑이인 나 위한 배려다.

그때 냉동고에 넣어두었던 곤드레나물을 오늘에야 발견한 것이다.

                친구가 가져온 나물 보따리


돌이켜 생각해보면 살면서 누군가와의 만남은 인생의 을 다르게 한다. 내가 친구를 만나지 못했다면 어쩌면 나는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친구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20년 전. 연희동으로 먼저 와서 살고 있는 친구의 전화를 받았다. 이곳에 널 닮은 집이 있으니 이사를 왔으면 좋겠다고 한다. 사업 수완이 좋은 친구도 아니고 그렇다고 이제에 밝은 친구도 아니다. 하지만 를 닮은 집이라는 한 마디 말이 모든 것을 품고 있었다.

동네에 새로 지은 예쁜 집이 있는데 내가 생각났고 무엇보다도 글을 쓰는 친구의 정서를 먼저 생각한 권유였다.


나는 그런 친구를 신뢰했다. 친구 말만 믿고 살고 있던 아파트를 부동산에 내놓았다. 생각보다 아파트가 빨리 정리되고 나는 친구가 소개한 지금의 집을 바로 구입했다. 중개인조차 집을 사는데 그렇게 결정을 빨리하는 사람은 처음이라며 놀라워했다. 나의 빠른 결단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딱 한 사람,  남편은 대출을 받기 위해 은행에 낼 서류를 준비하는 동안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을 서 너번은 한 것 같다. 그런 남편도 친구의 진솔한 마음만은 믿고 있었다.


살면서 가장 행복했던 시절을 꼽으라면 나는 친구와 한동네에서 살던 그 시절을 꼽을 것이다.

저녁 무렵, 슬리퍼를 신고 어슬렁거리며 갈 수 있는 친구의 집은 시 속에서만 있는 풍경이 아니었다. 친구의 집은 우리 집보다 두 배는 더 넓은 터를 지니고 있어서 주로 우리의 모임은 친구의 마당이 중심이 되었다. 월드컵 경기를 할 때는 아예 커다란 tv 모니터를 밖에 두고 한 켠에서는 가마솥에 토종닭을 삶으며 열정적으로 응원을 하기도 했다.

아이들이 자라고 결혼을 하여 분가를 하면서 넓은 집은 공허해지고, 나 보다 먼저 노후를 계획한 친구는 남편의 고향인 양평으로 터를 잡아 떠났다.

친구가 이사를 간 후. 새로 이사를 온 사람은 친구의 집을 완전히 개조하여 다른 집으로 변신시켜 놓았다. 나는 한동안 친구가 살았던 집을 바라보지 않았다.


싱크대 안에 깊숙이 넣어 둔 주물 밥솥을 꺼냈다. 그곳에 불려 둔 쌀을 넣고 들기름에 버물려 놓은 곤드레 나물을 얹은 뒤 밥을 짓기 시작했다. 밥이 지어질 동안 양념장을 준비한다. 진간장에 고춧가루, 깨소금, 마늘, 들기름과 약방에 감초처럼 음식마다 들어가는 매실청을 약간 넣고 섞어준 뒤 썰어놓은 달래를 한 움큼 넣어 달래장을 만들었다.

밥이 한 소큼 끓으면 약한 불에서 뜸을 들인다.


밥 솥뚜껑을 열 때, 뽀얀 김과 함께 얼굴에 훅 끼얹는 쌉쌀 상큼한 곤드레 향, 술이 아니어사람을 취하게 하는 게 있다. 질그릇 가득 곤드레 밥을 퍼 담으면서 나는 친구를 생각했고 은은한 나물 향기와 함께 전해지는 친구의 마음에 이미 취해버리고 말았다.


밥솥 바닥에 누른 누룽지를 보고 물을 부을까 그냥 긁어먹을까 남편과 별것도 아닌 일을 진지하게 의논하고 물을 부어 후식 누룽지로 먹기로 정한다.

잠깐, 우리의 별식인데 사진은 찍고 먹어야겠지, 작은 행복이 시작된다.


구수한 산나물과 상큼한 달래장이 잘 어울린 맛, 서로 개성이 다른 두 개의 풀잎이 어울려 새로운

맛을 만들어 내고 있다.

30년 지기인 친구와 나 역시 그렇게 또 다른 맛을 만들어 내면서 살았다.




양평 친구네는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대?

식사를 하는 동안 우리의 대화는 자연히 친구네로 향한다. 팬데믹이 올 줄 미리 알았던 것처럼  공기 좋은 곳에 자리 잡고 사는 친구는 도심에 사는 나의 건강을 염려하고 있다.

 

친구가 많으면 좋겠지만 마음에 맞는 딱 한 명의 친구도 나에게는 커다란 재산이다. 여행 중에 아름다운 곳이 있으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사람, 누구에겐가 속마음을 터놓고 위로받고 싶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 부모 형제와는 또 다른 애정을 가진 친구라는 이름이다,

사춘기 시절, 친구와 싸운 날은 세상을 다 잃은 것처럼 슬펐던 일들을 생각하면 친구란 마음 한복판을 차지하고 있는 소중한 둥지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멀리 떨어져 살고 있어서 서로 자주 만날 수 없지만 오래 묵힌 나물처럼  향기를 잃지 않고 있는 친구는 내 삶의 한 부분을 채우고 있는 존재이기도 하다.


내년 봄에는 함께 곤드레 나물을 꺾으러 가자고 해야겠다. 사실 나는 그걸 꺾는 건지 캐는 건지 조차 모르고 있다. 아무려면 어때 친구가 하는 대로 따라 하면 되는 거지...,


살면서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한 사람 하나 곁에 두고 사는 것도 참 복 받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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