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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희동 김작가 Jul 20. 2020

그런데 댁은 누구시죠?

어느 날 내가 나를 잊는다면?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병이 치매다. 다행히도 아직까지 내 주변에는 치매로 고통받는  환자가 없었다. 그저 남들이 겪었던 증상이나 경험을 듣고 치매는 환자뿐만 아니라 환자의 가족까지 힘들게 하는 병이라는 걸 알 뿐이다.


오늘 아침. 남편의 핸드폰이 울렸다. 무척이나 다급한 목소리가 들리고 남편이 이내 밖으로 나갔다.

무슨 일일까?


코로나로 인해 모든 학교가 휴교를 하고 있는  요즘 우리부부는 매일 아침 가까운 딸네 집으로 간다.

딸과 사위가 출근을  뒤 집에서 인터넷으로 영상 수업을 하는 외손녀를 보살펴 주기 위해서이다.


 네가 살고 있는 아파트 주차장은 지하에 있지만 가끔은 지상차를 세울 수가 있다. 마침 현관 입구에 주차할 수 있는 자리가 비어 있어서  바로 차를 주차하고 올라온 후에 걸려온 전화다.


 아파트 8층에 있는 딸네 집에서 내려다보니 우리 자동차 주변으로 경찰 순찰차가 있고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무슨 일이 생긴 걸까?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사이렌 소리가 멀어지고도 한참 후에 남편이 들어왔다.

딸네와 같은 동에 치매에 걸린 할아버지 한분이 자녀들과 함께 살고 있다고 한다. 오늘 새벽. 할아버지가 집을 나가신 후 돌아오지 않고 있어서 가족들이 애를 태우다가 현관 바로 앞에 주차되어 있는 우리 자동차의 블랙박에 혹시 할아버지의 모습이 찍히지 않았나 해서 연락을 한 것이다.


다행히도 블랙박스 카메라에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찍혀 있었다. 할아버지께서는 멀리 나가신 게 아니라 곧 아파트로 돌아오셨고 우리 블랙박스에는 현관으로 들어오는 할아버지의 뒷모습이 생생하게 찍혀 있었다.


할아버지는 어디로 가신 걸까? 할아버지를 찾는 동선이 아파트 안으로 좁혀졌다. 가족들은 모두 흩어져서 아파트 층계와 옥상 위로 올라갔다.


잠시 뒤, 아파트 이층 층계 위에 쓰러져 있는 할아버지를 발견하였다. 어찌 된 일인지 할아버지는 자신의 집과는 전혀 다른 층에서 탈진하여 쓰러져 있었다고 한다. 조금만 늦게 발견했다면 정말 큰일 날 뻔하였다.


가족들이 119구급차를 불러서 할아버지를 모시고  떠나는  보고 집으로 올라온 남편은 우연히도  생명을 구하게 된 데 대하여 무척 고무된 표정이었다.

한참 후 환자의 가족에게서 고맙다는 문자가 왔다. 다행히 할아버지는 기운을 차리신 것 같았다.


요즘 자주 치매라는 단어를 떠 올린다. 냉장고 문을  열고 무얼 꺼내려고 했는지 한참을 생각하며 서 있을 때가 있고, 아이들에게 이미 했던 말을 잊고서 다시 한 적이 종종 있다. 물건을 둔 장소를 까마득하게 모르고 온 집안을 뒤지는 일은 다반사가 되었다.

이 모든 게 치매의 전조증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가까운 보건소에서 치매검사를 받아본 적이 있었다.


여기가 몇 층이죠?

돌직구로 들어오는 검사자의 질문에 방금 누르고 올라온 엘리베이터 층수가 생각나지 않는다. 뒤이어 오늘이 무슨 요일이냐고 묻는 말에도 버벅거렸다. 긴장하고 있다가 누군가 다그친다고 생각하는 순간 갑자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기억이 흐려졌다. 치매에 걸리면 이런 분이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첫 번째 질의응답 고사에서 빵점을 맞은 나는 그보다 더 단순한 문제의 종합고사에서는 기를 쓰고 정답을 맞혔다. 내 전화번호 쓰기. 열 다음의 숫자 쓰기 옆에 있는 그림을 보고 따라 그리기 등...,

검사를 받으러 온 사람들 중에는 나보다 젊은 사람도 있었다. 요즘에는 점점 치매환자의 연령이 낮아지고 있다고 한다.


진단 결과 치매가 아닌 단순 건망증으로 확인되었지만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머릿속의 지우개가 나의 모든 기억을 지워버리는 날이 오게 되지 않을까 겁이 났다.

                                                                

                                                                         

그런데 댁은 누구세요?

실컷 함께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댁이 누구냐고 묻는 엄마를 보고 딸은 억장이 무너진다고 했다.

자식들에게 주겠다고 침대 밑에 음식을 감춰놓는 엄마를 보며 건강했을 때 더 다정하게 해드리지 못한 거에대하여 후회가된다고 한다.

흐려진 정신으로 본능에만 매달리는 치매환자, 그를 바라보는 가족들의 마음은 환자보다 더 아프다. 매 주말마다 엄마를 보고 오는 날은 더 고통스럽다고 하는 친구에게 그래도 살아계시니 다행 아니냐며 위로하였지만 딸의 얼굴을 잊은 엄마를 바라보는 마음이 오죽할까? 모든 병이 다 무섭고 힘들지만 치매는 더욱 두려운 병이다


나는 지금껏 기억보다는 기록에 의존했다. 핸드폰의 메모 기능을 사용하기 전까지 항상 수첩을 넣고 다니며 수시로 적었다. 주로 시상이나 글감이 대부분이지만 글을 쓰는 사람은 치매에 걸릴 확률이 낮다는 말이 근거 없는 말이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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