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통은 발 닿는 데로 걸어도 바다가 곁에 있다. 올드 타운의 중심 거리인 생 미셀 거리 시장의 노천카페에 앉아 뛰어노는 아이들을 바라본다. 아이들이 노는 모습은 어디나 똑같다. 도망 다니고 넘어지고 울다가 웃는다. 아이들과 함께 사진을 찍어도 되느냐고 물었더니 선뜻 승낙을 해 준다. 친정어머니를 배웅하는 배 부른 임산부 딸의 모습에서 우리네와 같은 그리움의 눈빛도 보았다.
오후에는 장 콕도 미술관을 가보기로 했는데 걷다가 보니 바닷가 끝에 보이는 미술관과 마주쳤다. 그냥 지나 칠 수 없어 들어가기로 한다. 계획 없이 움직이는 하루가 너무 좋다.
미술관의 정문을 찾으려고 빙빙 돌다가 원래 프랑스 군대를 물리치기 위해 지은 요새라는 걸 알았다. 프랑스 땅에서 프랑스 군대를 물리치다니, 예전에는 이곳이 이탈리아 가문이 지배하고 있던 이탈리아 땅이라고 했다. 망통에는 이탈리아 문화가 곳곳에 잠재해 있다고 한 말이 이해되었다.
나는 숨은 그림 찾듯 프랑스에 숨어 있는 이탈리아를 찾아보기로 했다. 그 반대로 이탈리아에 숨어 있는 프랑스를 찾아보는 것도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이탈리아는 내가 찾지 않아도 스스로 찾아와 주었다. 할아버지 한 분이 어린 사내아이의 손을 잡고 골목길에서 걸어 나오다가 나와눈이 마주쳤다. 아마 우리가 길을 잃고 헤매고 있는 줄 알았나 보다.
“생 미셀 교회를 찾는 거지? 날 따라와”
할아버지는 대답도 채 듣지 않고 성큼성큼 앞장서서 걸어간다. 우리는 아이와 함께 셋이서 졸랑졸랑 따라 올라갔다.
뾰족한 종탑이 있는 교회는 지금껏 본 프랑스 성당과는 다른 건축물이었다. 굵직하고 웅장한 기둥이 있는 바로크 양식의 건물이다. 이탈리아의 건축양식이 들어 있다고 하더니 바로 이런 것이었구나,
생 미셀 교회로 올라가는 계단은 마치 얌전한 아가씨가 무릎에 두 손을 포개 듯 대각선으로 서로 교차하게 만들어 놓았다. 그곳에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를 세워 두면 너무나 잘 어울릴 것 같았다.
할아버지는 생 미셀 교회를 보며 연신 엄지손을 치켜들었다. 자신은 이탈리아 사람이며 이곳은 예전에 자신의 조상들이 살았던 땅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노인답지 않게 꼿꼿한 어깨가 왠지 자부심이 있어 보인다. 이 계절에 입기에는 좀 더워 보이는 헐렁한 코르덴 바지의 뒷주머니에 한 손을 집어넣고 서 있는 모습이 흡사 곧 권총이라도 꺼낼 듯 한 영화 속의 카우보이를 연상하게 한다.
저 할아버지는 아마 나 말고도 이곳에 오는 다른 여행객에게 생 미셀 교회를 알려 주고 이 땅이 자신들의 땅이었다고 자랑스럽게 설명해 주었을 것 같다. 비록 지금은 자기 나라 땅은 아니지만 여전히 이탈리아 사람으로 살면서 자신의 조상들에 대한 명예를 회복하는데 일조하고 있으며 그것이 자신이 해야 할 의무라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고맙다는 눈 인사를 했다. 할아버지는 한 손을 번쩍 올리며 “굳 럭”이라고 프랑스어도 이탈리어도 아닌 영어로 짧고 굵게 인사를 하고 오던 길로 의연히 걸어가신다. 그 뒤를 사내아이가 다시 졸랑졸랑 따라가고 있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왜 저렇게 멋있는지, 나는 생 미셀 교회보다도 할아버지의 뒷모습을 더 오랫동안 바라보았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