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구 항구의 발주 강가에서는 어시장이 섰다. 배에서 갓 잡아온 생선들을 항구와 맞닿은 광장 한편에 늘어놓고 파는 즉석 어시장이다. 낯익은 생선들이 많았다.
어제 니스에서 이곳 마르세유로 왔다. 이곳에 있는 사흘 동안은 키친 룸이 있는 아파트 호텔에서 지내기 때문에 직접 음식을 만들어 먹을 수가 있다. 여행의 즐거움 중에는 살림에서 해방되는 자유로움도 포함되는데 정갈한 조리 기구들과 식기, 전기 레인지를 보는 순간 음식을 만들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솔직하게 말하면 이제부터는 경비를 절약해야 만 한다.
우리의 여행 경비 중 교통비와 호텔비는 거의 여행 전에 정해졌지만 하루 세끼 먹는 식대는 유동적이다. 간단하게 먹기로 하고 들어 간 레스토랑에서 갑자기 식욕이 돌아서 비싼 음식을 시켜 먹기도 하고 빵순이의 원이라도 풀 듯 매일 빵가게를 순방하기도 했다. 분위기가 좋아서 또는 화장실을 사용하려고 시도 때도 없이 마신 커피와 음료수 값도 식대를 부풀리게 하는데 한몫을 했다.
여행 중반에 접어들어 중간 결산을 해보니 계획보다 경비가 훨씬 웃돌았다. 이제부터는 긴축재정에 들어가야 한다. 돈을 잘 써야 끝까지 즐거운 여행을 할 수가 있다.
오늘부터는 또 다른 여행의 즐거움을 느껴 보게 될 것이다. 현지에서 음식을 만들어 먹는 것도 때론 즐거움이 될 수 있으니까,
어제 하루 동안 이곳 마르세유에서 꽤 많은 정보를 입수했다. 그중 하나가 이른 새벽 발주강가에서 어시장이 선다는 소식이었다.
길가에 좌판을 벌여놓고 파는 간이 어시장이지만 바다에서 막 건져낸 듯한 싱싱한 생선들은 종류도 다양하였다.
''오늘은 내가 부아 베스를 만들어 줄 게 "
나도 아직 먹어본 적 없는 요리를 하겠다고 말해 버렸다. 어시장에서 낯익은 생선들을 보자 왠지모를 자신감이 생긴것이다.
부아 베스는 마르세유의 전통 음식이다. 옛날엔 가난한 뱃사람들이 끓여 먹던 생선 요리였지만 세월이 흐른 지금은 마르세유를 대표하는 음식이 되었다고 한다. 마르세유에 가면 당연히 먹어봐야 할 음식이라고도 했다.
인터넷에서 부아 베스를 소개한 글을 읽었다. 여러 가지 생선을 오랫동안 끓여서 우러난 국물 맛이 우리나라 생선찌개의 맛과 비슷하더라고 했다. 먹어보지 않았어도 왠지 그 맛을 상상할 수 있을 것만 같다.
눈에 익은 생선들이 많았다,
나는 가자미처럼 생긴 생선을 샀다. 아마 물속에서는 파랗고 노란 형광빛의 비늘이 무척 아름다웠을 것 같은 돔 종류의 물고기였다. 커다란 소라와 새우,조개도 샀다. 여행가방 대신 장바구니를 바꿔 들었을 뿐인데 마르세유에서 오래 산 아줌마같은 기분이 든다. 서로 어울려 사는 도시에서는 쉽게 화합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오는 길에 슈퍼에 들러 무와 파, 마늘도 샀다.
손질한 생선을 냄비에 넣고 된장과 고추장을 넣어 끓였다. 얼큰하게 고춧가루를 풀고 파와 마늘도 듬뿍 넣었다. 매콤한 찌개 냄새가 룸 안에 가득하다. 한 달 동안 프랑스 빵만 먹어도 좋을 것 같더니 그새 우리 음식이 그리웠었나 보다. 자꾸만 뚜껑을 열어 보고 싶다.
소라는 삶아서 내장을 빼고 얇게 저며서 초고추장을 만들어곁들였다. 반찬으로 멋진 횟감이 탄생되었다. 국물 맛이 끝내 주었다. 남편은 밥 한 그릇을 금세 다 비웠다. 말없이 잘 먹어 주는 건 내 요리에 대한 최고의 찬사다.
마르세유의 전통음식 부야베스는 둘이서 십만 원이 넘는 돈을 줘야 먹을 수 있는 비싼 음식이다. 내가 만든 코리안 부야베스는 3.5유로로 우리 돈 오천 원이 들었다. 더 놀라운 것은 내일 아침에도 남아 있는 코리안 부아 베스로 아침식사를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