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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세유 다시 보기

편견에 대하여

by 연희동 김작가

여행을 하면서 처음과는 달리 몸과 마음이 많이 유연해지고 있다는 걸 느낀다. 직접 체험하고 경험하면서 남이 쓴 글은 글쓴이의 주관적 생각일 뿐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여행 준비를 위해 오프사이트에서 여행자료를 찾다가 누군가의 블로그에서 마르세유에 관한 글을 읽었다. 흑인과, 소매치기, 노숙자들이 많아서 눈살이 찌푸려지더라는 글을 읽었다.

프랑스에서 가장 큰 항구 도시인 마르세유로 떠나는 날은 그래서 더욱 긴장을 했다. 항구도시의 특성상 이방인도 많을 것이고 도시분위기 또한 다른 곳과 달리 거칠 것이라 여기며 한번 부딪쳐 보자는 각오로 니스에서 TGV를 타고 이곳으로 왔다.


마르세유에 도착해서 지금까지 내가 가장 많이 한 말은 “이곳에 오지 않았다면 후회할 뻔했어"라는 말이었다. 잘못된 판단으로 하마터면 지나쳐 버렸을 이 도시를 만나게 된 건 분명 여행의 신이 우리를 저버리지 않은 것이다.


마르세유는 과거의 시간 속으로 여행을 온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모든 게 중세의 모습 그대로였다. 중세의 화가들이 그린 풍경화 속에 사람들의 모습만 바뀌었을 뿐, 항구의 모습도 활기찬 거리도 화려하고 웅장한 성당과 요새도 모두 제 모습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노트르담 드 라 가르드 성당 내부

마르세유는 아름다운 도시일 뿐 아니라 사람들도 친절했다.


숙소인 아파트 호텔의 베란다 창문을 열자 멀리 언덕 위에 황금빛으로 빛나는 성모상이 보였다. '노트르담 드 가르드’ 성당의 성모님은 마르세유의 가장 높은 언덕에서 마르세유 시내를 내려 다 보고 있었다. 우리는 제일 먼저 ‘노트르담 드 가르드’ 성당을 가 보기로 했다. 멀리서도 눈에 보이기 때문에 누구나 쉽게 찾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걸어서 올라가기로 한 것은 무모한 도전이었다. 언덕은 높고 골목이 여러 갈래라서 성당을 눈앞에 두고도 헤매어야만 했다.


유모차에 아기를 태우고 오는 부인에게 길을 물었다. 부인은 언덕길을 어렵게 유모차를 밀고 올라와서 우리가 편히 갈 수 있도록 자세하게 알려 주었다. 함께 유모차를 밀어주고 싶었지만 어린아이들에게 극도로 예민한 유럽 사람들의 마음을 알기에 미안하다는 말만 계속하며 따라갔다. 부인은 상냥하게 웃으며 좋은 여행이 되라며 인사하고 헤어졌다. 다음부터는 절대로 유모차나 무거운 짐을 들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는 길을 묻지 않기로 했다.


성당은 내가 지금까지 본 어느 성당보다 아름다웠다.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것처럼 직선 문양의 대리석으로 지은 외관은 멀리서도 두드러져 보였고 금장의 내부장식이 화려했다. 다른 성당과 달리 천장에 작은 배의 모형들을 매달아 둔 것이 특이하다. 선인들의 무사항해를 기원하는 항구도시의 특성이 보였다.

성당의 테라스는 마르세유 전체를 전망해 볼 수 있도록 동서남북이 훤하게 뚫려 있다.

그 아래로 지중해가 보이고 요트가 정박해 있는 항구와 도시의 골목까지도 자세히 보인다. 이렇게 넓고 좋은 전망대를 아무나 올라와서 볼 수 있게 하다니,

테라스에서 도시를 관망하고 있는 동안 성당의 문이 닫힐 시간이 가까워진 걸 알지 못했다. 다리가 된 무거운 철대문을 들어 올리면 우리는 영락없이 성당에 갇히게 되는데 뒤늦게야 허둥지둥 달려오는 남편과 나를 바라보며 천천히 내려와도 된다며 여유 있게 기다려 준 관리인 아저씨의 밝은 표정이 마르세유의 첫인상을 기분 좋게 만들어 주었다


마르세유는 길거리에서 노숙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생 마르세유 기차역 근처를 지나다 보면 길가에 커다란 매트리스를 깔고 누워 있는 일가족이 있고 한낮에도 기차역을 오르내리는 계단 위에 고주망태가 되어 쓰러져 있는 노숙자가 보인다. 이들은 사람들의 눈살은 찌푸리게 할 망정 누구에게도 위협을 주지는 않았다.


마르세유를 처음 여행한 누군가는 저 모습을 보고 부랑자가 들끓는 도시라는 글을 썼을 것이다. 어느 도시나 빈민가가 있고 부자들이 사는 동네가 따로 있다. 특히 기차역 주변은 수많은 사람들이 모이고 흩어지는 장소이기 때문에 그만큼 다양한 군상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이곳을 찾는 여행자들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주기 위해 보기 흉한 광경들은 외압적으로 얼마든지 처리할 수 있겠지만 오히려 어느 사회에나 있는 빈부의 차이가 감춰지지 않고 그대로 노출된 모습이 개방적이고 자유스러워 보인다.

무엇이든 좋아하면 관대해진다더니 아무래도 내가 마르세유를 너무 좋아하고 있나 보다.

하지만 마르세유는 확실히 달랐다. 수십 억 하는 요트 위에서 파티를 즐기는 사람들을 볼 수 있는가 하면 거리의 매트리스에서 잠을 자야 하는 사람도 볼 수 있는 곳이기에 더 매력적인 여행지인 것은 사실이었다.


아프리카와 가까운 곳에 위치한 지리적 요건 때문에 다른 도시보다 이민자들이 많이 와서 사는 도시, 그래서인지 이색적인 풍경도 눈에 많이 띈다. 벼룩시장에 나와 있는 물건들은 아프리카에서나 볼 수 있음 직한 토산품들이 있었고 거리에는 검은 피부를 가진 사람들이 많이 있다. 투박한 장사꾼 아줌마도 있지만 개의치 않았다. 그들도 모두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이니까,

눈에 보이는 겉모습만 보고 쓴 부정적인 글을 믿고 마르세유에 오지 않았더라면 나는 아마 반쪽짜리 여행밖에 하지 못 했을 것이다.

노먼 포스터의 작품 거울지붕(파빌리온)


항구 앞 광장에는 노먼포스터의 작품인 거울지붕 (파빌리온)이 있다. 사람들은 거울 지붕 아래에서 우스꽝스럽게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본다. 날씬한 여인도 잘 생긴 남자도 누구나 키가 작고 뚱뚱한 모습이 된다. 어느 각도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거울은 각각 다른 모습을 비춰준다.

편견은 거울 지붕과 같다. 볼록 거울에 비친 모습이 진짜 내 모습이 아닌 것처럼 편견의 뒤에는 진실이 숨어있다.


여행을 준비할 때 누군가의 기록은 단지 작가의 주관적인 생각일 뿐. 너무나 거기에 의존하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아무리 좋았다고 해도 나만큼 느낄 수 없고 위험하고 두려운 곳이라고 해도 상황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경험자의 조언은 도움은 될지 언정 결정 자체는 아니다. 나는 겨우 사흘 동안 이곳에 체류한 여행자였지만 내가 본 마르세유에 대하여 세 가지 진실만은 말할 수 있다.


진실 1, 마르세유는 자유로웠다.


그릇에 수북이 담긴 체리를 단돈 3유로에 팔고 행복한 미소를 짓는 사람도, 거리의 매트리스 위에서 사는 노숙자도, 요트 위의 부자들도, 누구나 노먼 포스터가 만든 거울 지붕 아래에서 행복하게 미소를 지을 자유가 있다.


진실 2, 마르세유는 조화를 추구한다


초 현대식 뮤셈 박물관과 중세의 건물인 생장 요새가 철 가교 하나로 이어져 있듯이 이방인들 또한 이 도시에서 하나의 모습으로 어울려 살고 있다.


진실 3, 이것만은 편견이 아니다


누구나 이곳 마조르 광장에서 탁 트인 지중해를 바라본다면 내 안에 있던 모든 잡념들이 물거품처럼 사라지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마조르 성당

뮤셈 박물관과 생장 요새를 이어 주는 철 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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