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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스 센스

마르세유의 초 긍정 할머니

by 연희동 김작가

여행의 묘미란 처음 겪는 것에 대한 내면의 갈등을 잘 풀어나갔을 때 느끼는 승리의 맛이다. 지독하게 고생을 하고도 여행이 즐거웠다고 하는 사람은 고생 끝에 결국은 뭔가를 이루어 냈기 때문이다. 처음 먹어 보는 음식을 거부할 것인가 받아들일 것인가, 처음 만나는 사람을 믿어도 될 것인가, 처음 가는 이 길이 맞는 길인가, 낯 섬을 극복하고 두려움을 이겨내면 그 끝에 새로운 만남의 설렘이 있다.


불어는 물론 영어도 남편이 전해 주는 말에 의존해야만 하는 나는 여행 중 가장 낯 섬이 언어였다. 프랑스에 도착한 순간부터 내 귀에 들려오는 언어를 소리로만 들을 뿐 의미는 알아듣지 못하는 나는 청각 장애인의 불편함을 간접체험하고 있다.


내가 불어를 처음 접한 것은 고등학교 때였다. 우리는 제2외국어로 불어를 배웠다. 일주일에 한 번 들어있는 불어 시간은 비전공자인 영어 선생님께서 맡아 가르치셨다.


불어를 담당한 영어 선생님은 열심히 강의를 하시다 보면 입가가 하얗게 변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전공자가 아닌 선생님도 무척 힘들게 수업을 가르쳤던 것 같다.. 아무튼 그 시절 나의 불어 실력은 뻔하다.

봉쥬. 메르시 보끄. 띠아모. 갸르숑 , 엉, 되, 뜨후아..., 정도


그 후로 불어를 들어 볼 기회가 전혀 없었다. 어느 날 TV 화면 속에서 유난히 시끄러운 불란서 아줌마가 나와서 "울랄라~"를 외치는 것 외엔,


패키지여행으로 파리를 몇 번 다녀왔지만 여행의 특성상 내가 현지인과 마주 보고 대화를 할 일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 여행에서는 어쩔 수 없이 현지인의 도움을 받아야 했고 그러려면 대화가 필수였다. 여행 초반의 청각 장애인이었던 내가 여행 중반에 들어서면서 남편보다 더 상황을 빨리 알아차리고 이해하고 있다면 믿을 수 있을는지, 나에게 오감 외에 또 하나의 감각이 있는 줄 이곳 프랑스에 와서야 알게 되었다. 나의 여섯 번째 감각은 평형이나 회전감각이 아닌 바로 눈치 감각이었다.


불어를 전혀 할 줄 모르는 남편은 누구에게 도움을 청할 때 영어로 말하지만 상대는 가끔 자기 나라 말로 설명해 줄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나는 육감의 센스를 동원해서 상대방의 몸짓과 표정을 관찰한다. 정작 남편은 이해하지 못하는 말을 나는 대부분 이해하곤 했다.

처음엔 나의 말을 불신하던 남편도 점점 나의 눈치 실력을 인정하더니 이젠 신뢰까지 하게 되었다. 상대방의 소리와 억양, 몸짓과 얼굴 표정 만으로 나는 이제 상황을 판단하는 것을 넘어서서 스토리까지 이해하게 되었다. 식스 센스의 반전이다.


니스에서 마르세유까지 가는 TGV 안에서 만난 마르세유의 초 긍정 할머니는 나의 식스 센스가 만든 한 편의 이야기다.


창 밖으로 스치는 지중해의 풍경은 시간이 흐르는 게 아까울 정도로 아름다웠다. 대부분 배낭을 멘 여행객들은 2층에 있는 2등석으로 올라가고 우리가 탄 1등석은 아래층에 좌석이 있었다’ 복도를 사이에 두고 나란히 놓여있는 쾌적한 공간의 옆 좌석에 할머니 한 분이 앉아 계시고 그 앞 좌석에는 어린아이를 안은 젊은 부부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1등석과 2등석의 차이는 아무래도 소란스러움과 고요함의 차이 같다.

인형처럼 예쁜 아이

두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사내아이는 눈이 너무 예뻤다. 에메랄드와 같은 푸른색 눈동자가 어찌나 맑고 투명한지 자꾸만 바라보게 된다. 나하고 눈이 마주쳐서 “까꿍" 하고 아는 척했더니 조그만 젖니를 드러내고 소리 내어 웃는 모습이 너무 귀엽다. 예쁜 아이를 보고 불란서 인형 같다고 한 말이 어떤 건지 실감 난다.


불란서 인형은 지금 막 말을 배우는 참인가 보다. 냅다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입으로 풀무질 소리를 내기도 한다. 잠깐 쉴 틈이 없이 무어라고 지껄여 대고 있다. 나도 어린 외손녀가 있어서 저 만한 시기의 아이들이 입을 잠시도 쉬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다. 오죽하면 딸네 식구끼리 해외로 여행을 하는 중에 비행기 옆 좌석에 앉은 아주머니가 스튜어디스에게 자리를 바꿔 줄 것을 요구했다고도 한다.


아이 아빠는 좌석에 앉아 있지도 못한 채 아기를 안고 서있다. 아이를 달래면서도 주위에 신경을 많이 쓰는 눈치다. 아이가 손에 쥐고 있던 장난감을 할머니 치마폭에 떨어뜨렸다 할머니는 장난감을 주워 아이 손에 쥐어주며 이렇게 말했다.


"괜찮아요 아이들은 다 그렇죠 울고 있는 아이보다 훨씬 나아요"


그 후에도 아이는 계속 입으로 풀무질을 하였다. 3시간의 기차여행은 두 살짜리에게는 너무나 지루한 시간이다. 이윽고 아이가 칭얼대기 시작하더니 “으앙” 하고 울음을 터트린다. 잠투정인 듯싶다. 이젠 아이의 엄마까지 일어나 어쩔 줄 몰라한다. 연신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인다,


"애기 아빠 괜찮아요, 아파서 축 쳐져 있는 아이보다 훨씬 나아요"


나는 지금 귀로 듣는 게 아니라 할머니의 미소 띤 얼굴을 눈으로 보면서 난해한 프랑스 말을 이해하고 있다. 나의 오감을 넘어 육감의 센스는 할머니가 사투리를 했다고 해도 충분히 알아들었을 것이다.

아이는 금방 잠 속으로 빠져 들었다. 방금 탈무드 한 편을 읽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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