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붉은 지붕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희동 김작가 Dec 29. 2020

방향 하나 바꾸었을 뿐인데...,

나는 집순이다. 방안 퉁수 하고는 다른 의미다. 여행을 좋아하는 집안 퉁수라니  모순되기는 하지만

내가 가장 자유로운 공간은 내 집이다.  


집을 치우고 집을 가꾸고 이방 저 방 돌아다니며 집안에서 내 취향에 맞는 생활을 한다.


내가 집안 퉁수인 건 우리 집 내력이다, 우리 어머니는 자식들 집에 오시면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내 집이 좋다는 말을 수십 번씩은 하신다. 자식들이라 해도 함께 있는 동선이 불편하고 누가 해 주는 음식이 성에 차지 않았던 것 같다. 나 역시 어딜 가나 내 집이 가장 편안하다고 여긴다.


나는 소란스러운 밖에서보다 조용한 집에서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더 편하다. 그래서 친구들과는 주로 밖에서 식사를 하더라도 차나 커피는 으레 집에서 마신다.  

가족들의 생일잔치는 물론, 집안 모임의 대부분 장소가 우리 집이고 나는 그때그때 분위기에 따라

집을 꾸미고 음식을 장만한다.


밖에 나가기 위해 나를 치장하기보다 내 집에 오는 손님을 맞기 위해서 집을 치우고 가꾸는 게 훨씬 행복하다. 나는 그냥 집과 어울리게 검소한 차림새면 된다.


이번 크리스마스에도 아이들을 집으로 초대했

트리로 집 안 밖을 꾸미고 음식은 언제나처럼 숯불을 피워 고기를 굽기로 했다. 자주 하는 일이라서 불 담당인 남편도 이제는 손에 익어서 불을 피워 고기를 굽는 일에 능숙해졌다.

 

집을 치우다가 문득 소파의 방향을  바꿔 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했다. 어느 집이나 마찬가지로 우리 집 거실의 소파도 벽을 기대고 나란히 놓여있었다. 소파에 등을 붙이고 앉으면  맞은편  벽이 보이는 소파의 장소는 20년이 넘는 지금까지 고정불변의 위치였다.


벽에 붙어있는 소파의 한 귀퉁이를 살짝 틀어서 방향을  바꿔놓았다.

거실 공간을 소파가 반으로 나눠버린 것 같아 좁은 느낌은 들었지만 반대로 시야는 밖을  내다보게 되어서 훨씬 넓어졌다

정원을 마주 바라보고 있는 거실 소파


식구들이 모였다. 집이 더 아늑해 보인다고 한다. 좁아 보인다는 말의 긍정적 표현이다.


예전 같으면 식사 후 식탁 정리를 다 마치고 난 후에야 후식을 먹게 될 텐데 이 날은 달랐다. 식사를 마친

식구들은 곧장 소파로 자리를 옮겨서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여태껏 측면으로 보이던 식탁이 소파 등 뒤로 감춰지면서 식탁 위의 어수선한 그릇들이 보이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겨우 방향 하나 바꾸었을 뿐인데 평소의 모습전혀 다른 식사 후 풍경이었다. 

나 역시 밥 숟가락을 놓자마자 설거지부터 하느라 부산을 떨던 전과 달리 식구들과 합류하여 여담을 즐기고 있다. 빈 그릇들이 눈에 보이지 않으니까 식구들이 떠난 다음에 천천히 치워도 되지, 라는 여유가 생겼다.


아주 작고 소소한 것 하나를 바꾸었을 뿐인데 이렇게 다른 변화가 온 걸 보면 지금껏 바꾸지 못하고 있는 고질적인 습관을 바꾼다면 얼마나 변화가 올까? 하는 생각이 든다.


거실에 TV가 없는 것도 우리 가족이 오롯이 대화에 집중할 수 있게 한 것 중에 하나다.

대부분 거실 소파 앞에 대형 TV를 설치하는 게 인테리어의 정석처럼 되어있다.

작년에 집을 리모델링하면서 TV를 아예 위층으로 옮겼다.  내 의견이 아닌 아들의 선택이었다.


TV가 없는 거실은 창문이 없는 집처럼 답답할 줄 알았다. 그런데 거실에서 커다란 화면이 사라지자 거기에 빼앗겼던 시선들이 어느 순간 상대에게로 향하고 눈보다 귀가 열리게 되는 걸 느낄 수가 있었다. 

 

이처럼 집 안의 가구 하나만 변화를 주어도 우리의 삶이 달라지는데 지금껏 내가 옳다고 생각한 것들, 고착된 생각의 방향을 살짝 바꿔보면 어떤 게 보일까? 내가 알 수 없었던 또 다른 면을 바라볼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제 올 한 해도 이틀밖에 남지 않았다.

코로나가 없었다면 올 한 해를 어떻게 보냈을까? 친구들을 더 자주 만났고 운동을 열심히 했으며 어디론가 여행을 다녀오지 않았을까? 내가 한 해를 무의미하게 보냈다고 생각한 것이 고작 이 때문이라면 생각의 축을 바꿔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올 한 해 나는 내가 좋아하는 집순이로 원 없이 살았다. 책을 읽었고 글을 많이 썼으며 집 안 자잘한 구석에 눈길을 주어 고치고 치웠으며 무엇보다도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을 깨달았다.

내 인생 중 가장 무의미한 한 해였다고 생각한 좀 전과 달리  생각의 방향을 조금 바꿨더니 올 한 해 집 안에만 있었던 나도 꽤 소중한 날들을 보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에는 거실에서 뜰을 바라보는 시간이 많아졌다. 바꿔놓은 소파의 위치가 뜰을 향해 있으니 자연히 눈길이 뜰에 머문다. 새들은 겨울에도 부지런하다.  나뭇가지에 수시로 날아와서 잠자고 있는 순을 쪼아 먹고 있다. 저렇게 겨우내 따먹히고도 봄이면 싹을  틔우는 걸 보면 나무의 끈기도 어지간하다.


죽은듯한 겨울 뜰이 잠시도 쉬지 않고  움직이고  있는 모습을 보며  전염병으로 숨죽이고 사는 이 시대도 결코 멈춰있는 세상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매거진의 이전글 추어탕에 도전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