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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지붕
추어탕에 도전하다
by
연희동 김작가
Dec 26.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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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종원 씨는 요리를 참 쉽게 한다.
소금을 뿌려유, 씻어유, 삶아유..., 추어탕을 끓이는데 왠지 나도 만들 수 있을 것 같은 용기가 솟는다.
몸이 허하면 나는 추어탕을 사 먹는다. 고소한 국 한 그릇에 밥을 말아먹으면 이마에 땀이 송송 솟으며 기운이 나는 느낌이 든다.
한강변으로 라이딩을 나간 남편에게 문자를 보냈다.
'돌아올 때 시장에 들러 미꾸라지 좀 사 오세요'
조금 후 남편은 저절로 움직이는 검은 비닐봉지를
내
앞에 내밀었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나에게 스스로
주문을
걸며 두꺼운 면장갑 위에 고무장갑을 꼈다.
살아있는 미꾸라지를 그릇에 담는 일부터 극한 요리의 시작이었다. 나보다 더 멀찍이 서서 저 혼자 움직이는 검은 봉투를 바라보던 남편이 한 수 가르쳐 준다.
''봉다리 안에 소금을 뿌려 봐''
비닐봉지에 들어있는 미꾸라지를 통째로 냄비에 넣고 가위로 입구를 조금 자른 뒤 잽싸게 굵은소금을 뿌렸다.
미꾸라지보다 내 심장이 더 심하게 뛴다. 누렇게 살이 오른 미꾸라지들이 봉지 밖으로 뛰쳐나온다. 요동을 치는 미꾸라지의 힘에 밀려 냄비 뚜껑이 들썩거린다. 아..., 식당에서 사서 먹고 말걸 정말 못 할 짓이다. 급 후회가 밀려온다.
행여 뚜껑이 열려 싱크대 밖으로 미꾸라지들이 탈출하지 않을까 싶어 뚜껑을 꼭 누른 채 조용해 지기를 기다렸다.
임산부나 노약자들은 보지 않아야 할 광경입니다
살면서 미꾸라지에게 용서를 구하게 될 줄 몰랐다.
진득한
오물을 뱉어내며 늘어져가는 미꾸라지를 바라보며 미안하다는 말을 수없이 되뇌었다.
얼마큼의 시간이 지나자 좀 전의 소란스러움이 가라앉고 조용해졌다.
미꾸라지를 씻는 일이 장난이 아니다. ''씻어유'' 한 마디에 쉽게 씻기는 줄 알았는데 미끌미끌 거품을 씻어내는 게 끝이 없다. 소금물을 씻어내자 몇 마리 미꾸라지들이 정신이 들었는지 움직이기 시작한다. 원래 민물에서 살던 놈들이라는 걸 깜빡했다.
대박..., 밀가루를 부어서 손으로 박박 문지르라고
한다. 맨 손으로?
밀가루를 쳐박. 처음엔 국자로 슬슬 젓다가 안 되겠다 눈 딱 감고 손을 집어넣었다. 두꺼운 장갑을 낀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미끌 미끌한 촉감이 그대로 느껴진다.
사 먹을 걸....
사 먹을 거야... 이 담에는 절대로 사 먹고 말 거야.... 후회막급.
물을 버릴 때 한 놈씩 물에 휩쓸려 빠져나가는 놈을 주워 담는 게 여간 힘들지 않다.
내 머릿속에서는
끝없는
후회가 밀려온다. 급기야
뜰에 묻어줄까?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꽁꽁 언 땅을 파는 일이 더 심란했다.
콧물처럼 끈적끈적한 물은 끝없이 나오는데 도무지 언제까지 씻으라는 건지.
어느 정도 밀가루의 뽀얀 물이 빠지고 난 뒤, 가스불 위에 미꾸라지가 든 냄비를 올려놓았다. 그제야 커다란 일을 끝낸 것 같은 안도감이 들었다.
미꾸라지가 보글보글 잘 끓고 있다. 비린내라도 나면 안 되는데. 코를 킁킁대 본다. 고소한 냄새가 집안 가득하다. 끓는 미꾸라지에 된장과 참기름 한 방울을 넣은 게 신의 한 수였던가 보다.
미꾸라지가 익는 동안 데쳐둔 시래기를 손질했다.
시래기의 질긴 겉 줄기를 벗겨내고 고운 속살을 잘라 마늘을 듬뿍 넣고 된장에 버물려 놓았다. 시래깃국이야 자주 해 먹는 음식이니 내 손 끝에서 맛을 내는 건 일도 없다.
푹 삶아진 미꾸라지를 믹서에 넣고 갈았다. 손으로 문질러서 채에 내리는 게 더 맛있다고 했지만 난 그러고 싶지 않았다. 이미 '씻어유'에서 한방 당했기 때문이다.
채에서 내린 국물이 뽀얀 진국이다, 이제부터는 일사천리, 백종원보다도 더 빨리 국을 만들었다.
된장에 버무려 둔 시래기에 미꾸라지 삶은 물을 붓고 끓이다가 소금과 들깻가루, 땡초를 넣으니
아..., 이 국이 진정 내가 끓인 추어탕이란 말인가?
식성에 맞게 먹으라고 부추와 산초가루를 곁들어 식탁에 차려놓고 의기양양하게 남편을 부른다.
아들은
올 들어 벌써 두 번째 자가격리를 하고 있다. 처음에는 자신이 해외를 다녀왔기 때문이고 이번에는
아들 회사의 직원이 검사 결과 코로나 양성반응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긴 시간 집안에만 갇혀 지낸 아들의 몸보신에 이만한 건
없을
것이다
.
국을 반 덜어 아들 몫으로 챙기고 가까이 사는 딸 네 집에도 보냈다.
아침에 딸에게서 문자가 왔다.
''엄마 추어탕이 참 맛있네요''
이 맛이다. 가족들이 맛있다고 화답하는 맛. 더 달라며 빈그릇을 내미는 맛.
나는 겁 없이 답글을 보냈다.
''이젠 추어탕 사 먹지 마 엄마가 만들어 줄게''
미끌미끌한 촉감. 그 감촉을 진정시키려고 온갖 잡생각을 끌어가면서 만든 추어탕을 또 만들어 내겠다고 선뜻 예약을 해버렸으니...,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또 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줄타기하는 추어탕이지만 어쨌거나 나는 추어탕 만들기에 성공했다.
하지만 고백하건대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미끌 끈적한 촉감만은 두 번 다시 느끼고 싶지 않다.
나처럼 요리 만들기에 무식하고 용감하지 않으신 분들은 근처 추어탕 집에서 편하게 사드시기 바랍니다.
푸짐한 추어탕 한 그릇 눈으로 드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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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름 피우기 ><프로방스에서 쌀 팔러갑니다 > 저자, 독자보다 작가가 많은 시대에 작가로 살고 있습니다. 소소한 이야기 속에 진실을 담아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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