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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내 마음에 별을 달았을까

무스티에 생트 마리

by 연희동 김작가



무스티에 생트 마리는 밤에 쓰는 연애편지 같은 마을이다. 언덕에서 마을을 바라본 순간 내 입에서는 어머나 …, 어쩌면…., 이럴 수가…, 너무나 예쁘다…, 등 내가 표현할 수 있는 아름다움에 대한 온갖 감탄사가 쏟아져 나왔다.

지금껏 다녀 본 프로방스 마을 중에 사랑스럽지 않은 동네가 있었던가,

그런데 산속 깊이 숨어있는 마을 무스티에 생트 마리는 색다른 아름다움으로 내 발길을 멈추게 했다.


거대한 바위산 아래 아담하게 자리 잡은 집들 사이로 흐르는 시냇물은 경사진 곳에 이르러 작은 폭포가 되어 떨어지고 물레방아는 시름없이 돌아간다. 늘어진 포도 넝쿨로 창가를 꾸며 놓은 집과 아기자기한 기념품 가게들, 하얀 레이스 커튼이 드리워진 창문, 집집마다 예쁘게 가꿔 놓은 작은 정원들, 산 위에 있는 노트르담 드 보부아르 성당의 성벽과도 같은 돌계단, 그리고 이 마을을 마음에 오래 새겨두게 만든 누군가 높이높이 매달아 놓은 절벽 사이의 별, 그 별을 바라보다가 문득 도종환 시인이 지은 ‘어떤 마을’이라는 시가 생각났다.


사람들이 착하게 사는지 별들이 많이 떴다

개울물 맑게 흐르는 곳에 마을을 이루고

물바가지에 떠 담던 두견이 소리 별 그림자

그 물로 쌀을 씻어 밥 짓는 냄새나면

굴뚝 가까이 내려오던

밥 티처럼 따스한 별들이 뜬 마을을 지난다

사람이 순하게 사는지 별들이 참 많이 떴다


베르동 계곡을 품고 사는 이 곳 사람들은 매미와 별, 그리고 하얀 도자기를 사랑한다.


잠자리나 나비가 아닌 매미를 사랑한단다. 한 여름 소음의 주범으로 환영받지 못하는 매미가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서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줄 몰랐다.

담벼락에도 창틀에도 청동이나 도자기로 만든 매미가 매달려 있고. 엽서나 우표, 식탁보와 앞치마에도 매미가 수놓아져 있다. 심지어 매미모양의 접시와 매미 모양의 초콜릿까지 있다.

이토록 매미를 좋아하는 이유는 뭘까? 프로방스 사람들은 사 계절 중에서 유난히 여름을 반긴다고 한다.

미친말의 갈기같은 바람이라 부르는 미스트랄이 온 들판을 훑고지나가는 봄이 지나고 기온이 섭씨25도가 넘으면 매미가 울기 시작한다

"매미가 울지 않으면 여름이 오지 않아"라는 말은 이 지방사람들이 여름을 기다리며 하는 말이다. 그악스럽다고 표현하는 매미의 울음소리를 ‘프로방스의 오케스트라이며 태양열 가득한 자연의 심포니’라고 극찬하며

매미를 여름의 전령사로 알고 사랑한다.

포도 넝쿨이 초록으로 물들고 사랑스런 매미의 노래소리를 들으며 그릇을 빚는 이 곳 사람들의 여름은 무척 싱싱할 것이라고 상상해 본다.


절벽과 절벽 사이에 뜬 별

작은 곤충하나에도 무한한 사랑을 베풀어 주는 사람들, 왠지 동화속의 요정들이 살고 있는 마을처럼 보인다.

이 마을에 사는 요정들은 정말 날개라도 달린걸까? 목을 뒤로 젖히고 아무리 오래 바라봐도 사람의 힘으로는 절대 매달 수 없는 곳에 떠 있는 별 하나가 지금껏 내가 본 어느 별보다도 더 아름답다.


나는 별을 좋아한다. 별을 보면 우주가 보인다. 죽어서 별이 된다는 말을 믿지 않지만 그 말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처럼 들린다. 캄캄한 밤하늘에 쏟아지는 듯한 별빛도 아름답지만 낮에 뜬 별은 더욱 아름다웠다.


가끔 별을 보려고 우리 집 옥상 위로 올라갈 때가 있다. 서울 하늘에 별이 있을 리 없지만 선물처럼 별이 보일 때도 있었다. 한참을 바라보면 그 별은 서서히 공항 쪽으로 사라지는 비행기의 불빛이거나 아니면 유난히 큰 별은 스스로 빛을 내지 못하는 인공위성의 불빛이었다. 일부러 별을 보러 여행을 떠난 적도 있었다.

이미지사진


내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별은 칠흑 같은 밤, 하와이 오하우 섬의 탄탈루스 언덕에서 바라본 별과 이 곳에 오기 전 몽생미셸에서 본 별, 지난 여름밤 반딧불이가 유영하는 남녘 땅 고흥에서 본 별이다.


탄탈루스 언덕은 불빛 하나 없이 깜깜하였다. 자칫 하면 언덕 아래로 굴러 내가 별이 될지도 모르는데 용기 내어 자동차로 기어가다시피 언덕을 올라갔다. 어디인지도 모르는 곳에 차를 세우고 바라본 하늘엔 바늘 하나 꽂을 틈 없이 별이 박혀 있었다. 언덕 아래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도심의 불빛과 마주하고 있는 별을 바라보며 처음으로 죽어서 별이 된다는 말을 믿고 싶었다.

탄탈루스의 별이 무희들의 옷자락에서 반짝이는 화려한 보석과 같다면 몽생미셸의 별은 신부의 드레스에 박힌 품위 있는 보석과도 같았다. 밤이 되어 별 무더기가 된 몽생미셸의 하늘 위에서 잔잔히 빛나고 있는 별들은 주인공을 더 빛내 주기 위해 제 빛을 내세우지 않는 소박한 별이었다.

전라도 고흥 땅은 아직도 밤이 되면 개똥벌레가 유영하고 있다. 서울 아이들이 별이 날아다닌다고 소란을 떠는 하늘 위에는 반딧불이 같은 별들이 촘촘히 박혀 있었다. 동생이 마련한 시골집에서 여름휴가를 보내며 밤이면 마당에 깔아 놓은 돗자리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았다. 씨앗처럼 뿌려진 별들, 은하수를 본 것도 참 오랜만이었다. 아이들과 함께 떨어지는 별똥별에게 소원을 빌어 보던 그날의 별은 참 순수했다.


지금 또 하나의 별이 내 가슴에 뜨고 있다.

저 별은 전쟁에서 살아 돌아온 이 마을의 한 젊은이가 성모님께 봉헌하는 별이라고 했다. 달콤한 사랑 이야기가 전해질 줄 알았는데 거룩한 사랑의 표현이었다. 그래서 였구나 저별을 바라보는 내 마음이 따뜻했던 것은,


별은 희망이고 위로이며 기도이다.

길을 잃고 헤매는 나그네에게 방향을 알려 주던 별, 깜깜 할수록 더 밝게 빛나는 별을 보면서 슬픔을 견뎌냈을 수많은 사람들의 별,

별을 바라보면 두 손이 저절로 모아진다.


깊은 산속 베르동 계곡 아래 오손도손 살고 있는 무스티에 생트 마리 사람들의 별은 이 마을 사람들의 마음을 모은 기도의 별이다. 사람들은 별을 따라 간 동방박사처럼 저 별을 따라 이 곳으로 모이고 이곳에서 아름다운 마음을 배우고 떠난다.

밥 티처럼 따스한 별이 뜬 마을, 그 마을을 지나며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은 내 가슴에도 작은 별 하나가 뜨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은 이곳에서 하루를 더 묵기로 했다. 덧창이 달린 호텔 창문을 여니 그 곳에 낮에도 떠 있는 별이 보였다.

별과 함께 하루밤을 보낼 수 있었던 호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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