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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붉은 지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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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희동 김작가 Apr 27. 2021

자격 있습니다

배우 윤여정 씨가 아카데미 여우 조연상을 탔다.

나이 75세에 상복이 터진 노 배우의 모습에서 농익은 과일 기가 나는 것 같다.

"열심히 살다 보니 이런 날도  있군요" 그냥 살다 보니가 아니라 열심히 살았다는 그의 말이 울림을 준다.


대중들에게 노출된 배우의 삶, 그들의 사생활은 투명한 유리안에서의 삶처럼 낱낱이 밝혀져 이야깃거리가 된다. 관심과 인기 비난을 한 몸에 받으면서도 모든 걸 견디고 꿋꿋하게 살아온 그들에게 주어진 상은 어쩌면 그 어떤 상보다 대단할지도 모른다.


젊은 시절부터 지금까지 연기자로 살아온 모습을 봐 와서 인지 왠지 평소 잘 알고 있는 이웃사촌처럼 친근한 생각이 든다.


지금부터 55년 전에 방송에 데뷔하여  100여 편의 작품에 출연하였다고 한다.

결혼해서 미국에서 산 15여 년의 공백 기간을 제하면 얼추 1년에 두 세편의 작품에 출연한 셈이다.

꾸준히 자신을 가꾸고 일을 해왔다는 게 입증이 다.

유창하지는 않지만 단어 하나하나를 또박또박 구사하여 수상소감하는 그의 영어실력을 보면서 미국에서 사는 동안에도 뭔가를 쉬지 않고 열심히 했다는 생각이 든다.


갑자기 배우 윤여정의 력을 줄줄 꿰고 있으니 내가 마치 그의 찐팬이라도 되는 줄 알겠지만 그의 거침없고 꾸미지 않은 모습과 특유의 도시스런 연기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팬의 영역까지는 아니었다.

그런데 요즘 그가 좋아졌다. 유명한 영화제에서 주는 연기상을 받아서가 아니라 여자로 엄마로 살면서 배우라는 직업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는 직업인으로서, 무엇보다도 자신의 일에 대한 열정이 나의 마음을 움직이게 한 것이다.


최근 일본의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쓴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읽었다.

그는 소설가뿐 아니라 어떤 직업을 가진 사람이든 자신의 분야를 확고이하고 꿋꿋이 지켜내려면 무한한 노력이 필요하고 노력은 자격을 이끌어 낸다고 했다.

누구나 링에 오르기는 쉽지만 오래 견디기는 쉽지 않듯이 소설 한 두 편쯤 쓰기는 쉽지만 오래 지속하여 쓰기는 어렵기 때문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어느 곳에서나 개인의 재능과 기개, 운이나 인연만으로는 그 안에서 살아남기가 어렵다. 가장 중요한 것은 꾸준한 노력으로 '자격'을 얻어내는 이다.


누구나 쉽게 사용하는 '자격'이라는 ,

'있다' '없다'로 칼날처럼 구분되는 이 단어는 타인이 부여하는 게 아닌 자신의 노력에 의해 이루어진다. 자격은 인격이 바탕이 되어 지속적인 노력으로 그 분야에서 한끝 이루어낸 것을 말한다.


내가 선택한 나의 위치에서 나는 얼마만큼의 자격을 갖추었을까? 애초에 갖춰져 있지 않은 자격들, 어찌하다 보니 부모가 되었고 아웅다웅 살다가 보니 흰머리 물든 부부가 되었고 여기저기 백일장에서 수상을 한 전적으로 재능이 있는 줄 착각하고 문단에 뛰어들어서 작가가 되었다.

그 모든 것들에서 나는 자격이 있었던가?


배우 못지않게  수많은 사람들이 도전하는 직업이 바로 작가이다.

소설가이든 시인이든 수필가든 제대로 된 고료 한번 받아보지 못한 사람도 직업은 작가이다.


브런치의 소개란에 '독자보다 작가가 많은 시대에 작가로 사는 사람'이라고 요약한 것도 바로 그래서이다. 신춘문예에만 일념 하던 내 시대와 달리 곳곳에 작가 등용의 문이 열려있어서 누구나 쓰고자 하면 작가가 된다.


문단에 데뷔한 지 어느덧 30여 년이 지났다. 내 인생의 절반을 작가라는 이름으로 살았다.

누가 알아주든 그렇지 않든 꾸준히 글을 썼다. 책도 출간했다.

그뿐,

새로 만들어지는 책만큼 사라지는 작가의 분신들...,  나만 애지 중지할 뿐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는 작품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쓰지 않으면 안 되는 열정만 식을 줄 모른다.


열심히 노력하며 살았지만 이루어내지 못하고 소멸하는 삶이 있는가 하면 열심히 살았고 누군가 그의 노력을 인정하며 치하하는 삶이 있다. 누구나 후자의 삶을 원하지만 원한다고 다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얼마 전 매일 새로운 글을 써내는 브런치 작가님의 글에서 마음을 두드리는 문장을 발견했다.


'사람들은 나름대로 삶을 멋지게 살아낸 유명인이다. 이름을 남기지 않으면 어떤가 하루를 열심히 살아온 것만으로도 충분히 유명해진 것이다. 남들의 평도 중요하지만  자신을 인정해 주는 힘이 더 크다.(Chong sook Lee 님의 글  남의 눈치 안 보고.. 뜻을 따라 길을 간다, 중에서)


자신을 인정해 주는 힘에 밑줄 쫙 긋는다. 노력의 끝이 영광이 아니어도 실망하지 말자.


'참다운 삶'이란 자기만의 철학을 가지고 살려는 사람이 일궈내는 삶이라고 한다. 사는 사람이 아니라 살려고 하는 사람이라는 게 의미 있다. 


나의 노력은 현재 진행형이다.

참다운 부모가 되기 위하여, 푸근한 아내가 되려고, 알아주지는 않지만 꽤 괜찮은 작가가 되어보려고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배우 윤여정의 아카데미 수상은 나뿐 아니라 모든 이들에게 그래서 귀감이 된다.

열심히 살아보면 된다. 누가 인정해 지 않아도 '자격'이라는 준엄한 상이 빛나는 트로피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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