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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붉은 지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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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희동 김작가 Apr 22. 2021

마스크를 써서 미안해

손녀 아이를 등교시키러 간 남편이 아이를 데리고 학교가 아닌 우리 집으로 왔다.

감기에 걸려서 오늘 하루는 학교를 쉬기로 했다고 한다. 다행히 열은 없다지만 은근히 걱정이 된다.

하루 만에 핼쑥해진 얼굴이다. 이마를 짚어 보니 남편의 말과 달리 열 기운이 조금 느껴진다.


"아침은 먹었니?"

"아뇨 입 맛이 없어요"


매년 새 학기가 되면 유행처럼 감기를 앓더니 작년 봄에는 마스크 덕분에 무사히 지나갔다. 올봄도 그렇게 지나가려니 했는데 결국 감기에 걸리고 말았나 보다.

열을 재 봤다. 37.4도....

넘지 말아야 할 38선보다도 더 위험한 37.5도와는 0.1도 차이가 난다. 겁이 덜컥 났다.

빨리 코로나 검사를 받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에 출근한 즈이 엄마도 걱정이 되었던지 검사를 받아보는 게 좋겠다는 문자를 보내왔다.

남편이 아이를 데리고 코로나 선별 검사소로 간 뒤 만약에..., 라는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미리 짐작해서 걱정하는 나의 불치병이 도졌다.


요즘에는 코로나 확진자가 자신의 몸이 아픈 것보다 심적 고통 더 많이 겪는다고 한다. 자기 한 사람의 불찰로 인해 많은 주변 사람들이 검사를 받고 자가격리를 해야 되기 때문이다.

만약에 손녀가 확진 판정을 받는다면 어떻게 될까? 할아버지 할머니는 물론이고 아이가 다니는 학교 친구들과 부모들의 직장동료까지 모두 검사 대상자가 될 것이다.

부디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라지만 최근 하루 확진자 수가 1000명을 넘나들면서 4차 대유행이 예상되는 시기라 안심할 수가 없다.


검사를 마치고 아이가 돌아왔다. 지금 상황으로는 집에서도 마스크를 쓰는 게 당연한데 왠지 마스크를 쓰는 게 미안하다. 사랑하는 아이가 아픈데 자신을 지키려고 마스크를 하는 것도 내키지 않지만 그보다는 한참 예민한 초등학교 4학년인 손녀가 스크를 쓴 할머니가 자신을 멀리한다는 생각을 할까 봐 조심스러운 마음이 앞섰다. 하지만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다. 청소를 할 때는 으레 마스크를 썼으므로 마스크를 쓰고 베란다 청소를 했다. 청소를 핑계 대고 마스크를 썼지만 자꾸 미안한 생각이 든다.


아이에게 함께 마스크를 쓰고 있자, 라는 말을 하는데 용기가 필요했다. 코로나로 인해 가장 힘든게 아이들이다. 특히 갓 돌을 넘긴 듯한 아기들이 마스크를 쓰고 있는 모습을 보면 그렇게 안쓰러울 수가 없다. 사회환경이 바뀌고 부모의 철저한 교육으로 어린아이들도 절대 마스크를 벗지 않는다.


작년에 이어 지금까지 학교에서나 밖에서 필수품이 되어버린 마스크를 집안에서까지 쓰고 있으라고 하려니 나도 미안했다. 아이는 나의 말에 "네"라고 대답은 하면서도 답답한지 코언저리는 보일락 말락 숨통을 터놓고 있다.


아침도 먹지 않았는데 점심도 생각이 없다고 한다. 딴엔 저도 무척 걱정이 되는 눈치다. 약을 먹으려면 밥을 먹어야 하는데..., 평소 아이가 좋아하는 유부초밥을 만들었다.

혼자 먹기보다 함께 먹으면 조금이라도 먹게 되지 않을까?


코로나가 시작되고 나서 지금까지 헬스장도 가지 않았고 어떤 모임에나가지 않았다. 음식점은 물론 성당도 가지 않고 건강을 지켰는데 아픈 손녀 앞에서는 모든 게 다 무너졌다.

코로나가 뭐길래 혈육마저 갈등하게 만드는 걸까? 인터넷에서 코로나와 감기의 증상에 대하여 눈이 아프게 검색을 해보았다. 다행히 열은 더 오르지 않고 있다.

나는 37.5도에서 한끝 모자라는 0.1도에 기대를 걸었다.


마스크를 벗고 손녀와 식탁에 마주 앉았다.

"할머니가 같이 먹을 테니 너도 한번 먹어 봐"

아이가 초밥 한 개를 집어 먹는다

"옳지, 우리 사이좋게 나눠먹자." 먹지 않겠다던 아이가 나와 함께 밥을 먹으면서 조금 입맛이 도는가 보다.


아이가 아프면  부모는 모든 것을 감수하고 아이를 보살핀다. 어느 부모나 조부모 역시 나와 같은 마음일 것이다.

코로나로 인해 요양원에 계신 부모를 만나보지 못한 채 멀리서 그리워하는 가족들을 보았다. 유리창 사이로 서로 바라보며 오열하는 모습의 영상을 보며 코끝이 찡했다.

코로나로 사망한 환자는 자식들이 임종을 지켜보지도 못하고 홀로 외롭게 이승을 떠난다고 한다.

전염병의 특성상 서로 격리해야 하는 어쩔 수 없는 조치라고는 하지만 정말 뼈를 깎는 또 하나의 아픔이다. 정에 무너지면 방역의 둑도 무너진다.


5인 이상 가족모임이 금지되어 서로 갈라져서 형제 부모를 만나고 있다. 5인 가족이라고 해도 가족 증명서를 보여야  리조트에 입장할 수 있었다. 코로나는 사회뿐 아니라 가족의 분열까지 만들어내는 괴기한 병이다. 

코로나 이전의  복한 삶이 먼 옛날이야기처럼 느껴진다.

다행히 아이는 열이 내리고 있었다.


다음 날 아이의 검사 결과가 나왔다

' 음성입니다'

0.1도에 건 내 판단에 잭팟이 터지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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