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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붉은 지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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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희동 김작가 May 17. 2021

선생님 고맙습니다

어린이날에 이어 어버이 날. 그리고 스승의 날이 있는 오월. 오월은 가정의 달이기도 하다.  

펜데믹으로 조심스러운 가운데서도 가정의 날  행사는  꼭 지켜졌다. 

축제가 아닌  행사라는 말이 더 자연스러운 것은 이 날은 즐기기보다 어떤 의무감이 존재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아이의 날에는 내가 준비한 선물을 주고 그 후 3일 후에는 아이들이 카네이션을 보내왔다. 카네이션이  시들 때 쯤 스승의 날이 다가왔다.

매년마다 이 날이 돌아오면 우리들에게 문학을 지도하고 문단으로 이끌어 주신 교수님을 찾아뵌다. 함께 식사를 하고 마련한 선물을 드리고 스승의 노래를 불러드린다.

환갑을 훨씬 넘은 제자들이 아흔살이 가까운 스승님을 뵙는 일은 흐뭇한 일이다.


한 때는 스승의 날이 다가오는 걸 어한 적도 있었다.

아이들이 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촌지가 난무했었다. 선생님의 따뜻한 눈길 한 번이 아이의 정서에  얼마나 많은 도움이 되는지 알기에 부모들은 편법인 줄 알면서도 존경심이라곤 전혀 없는 촌지를 의무적으로 상납하였다. 남편의 적은 월급에서 어린이날 아이들의 선물과 어버이날 쪽 부모님의 용돈, 그리고  곧이어 스승의 날에 두 아이 선생님들께 촌지를 드리고 나면 오월의 내 형편은 언제나 궁했다.


요즘처럼 맑고 청렴한 사회에서는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지만  시절에는 촌지를 주고받는 일이 보편이었다. 엄마들 사이에서는 누구누구 선생님이 촌지를 밝힌다더라 라는 암묵적인 비밀이 나돌기도 했다.

누가 달랬나? 주고 나서 험담이나 하며 사도에 대한 예는 찾아볼 수도 없었던 부끄러운 학부모였다.  

한 때, 기념일 따위가 무슨 의미가 있는지 생각한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다르다. 평소에 자주 뵐 수 없는 스승님을 1년에 한 번쯤 기념일을 핑계 삼아 찾아뵙는 것도 나쁘지 않다.


아무리 세상이 혼탁해도 참 스승은 어디에나 꼭 계신다

오늘은 스승의 날, 각나는 선생님이 계신다. 나의 고등학교 국어 선생님은 아버지 같은 분이셨다. 첫 에세이집을 출간했을 때 선생님을 찾아뵈었다. 선생님은 고향 친정집 바로 윗동네에 살고 계셨다.

학교를 퇴임하신 후 향토 사학자로 일하시며 우리 고장의 이야기를 책으로 엮어내고 있는 중이라고 하셨다.

당신이 쓰신 원고를 나에게 보여주셨다. 마침 안경을 쓰고 가지 않아서 선생님 책상 위에 있는 돋보기를 빌려서 썼다.

그 모습을 바라보시던 선생님께서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에게 말씀하셨다

'' 그새 그렇게 눈이 어두워서 어쩐다냐?''

나이 들어가는 제자가 안되어 보였나 보다. 훗날 다시 찾아가 보았을 때 집주인이 바뀌어 있었다. 선생님께서는 집을 떠나 요양원으로 가셨다고 한다. 가슴에 돌덩이 하나가 얹혀있는 듯했다.

내가 평생 글을 쓰는 삶을 살게 된 것도 어쩌면 선생님 덕분이다

내가 쓴 알량한 글들에 칭찬을 아끼지 않으신 선생님의 제자사랑이 문학소녀의 꿈을 실현시켜 주신 것이다.


해마다 스승의 날이면 나를 찾아오는 청년이 있다.

초등학교 5학년인 아이는 우리말이 서툴렀다. 아버지의 직장을 따라 외국에서 살다가 온 아이는

렇다고 영어에 능숙하지도 않았다. 선천적으로 언어발달이 미숙한 학생이었다.

학교 고등학교를 거치는 동안 꾸준히 나와 함께 했다. 이제는 어엿한 사회인이 되어 훌륭하게 성장한 젊은이가 수줍게 꽃다발을 내 민다. 그 모습이 고맙고 대견하기만 하다.  


누군가가 나를 기억해 준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따뜻하고 감사한 마음이라면 더욱 고맙다. 누군가에게 좋은 의미로 기억되는 하루, 모두의 마음에 한 사람의 스승만 있다면 세상살이가 아무리 힘들어도 견뎌 낼 수 있을 것이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오늘은 일 년에 단 한 번 교복을 입은 소녀가 되어보는 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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