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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붉은 지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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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희동 김작가 May 15. 2021

또 하나의 별이 되어

내가 가장 행복했던 때는 언제였을까? 두 마리 강아지가 이층 층계를 오르내리고 늦잠 자는 아이를 깨우느라 수선을 떨고 퇴근 시간이 늦는 남편을 기다리던 그때가 행복했었다.

그때에는 저녁이면 대문을 열고 집으로 돌아오는 가족들이 곁에 있었고 좋아라고 꼬리 치며 돌아다니던 강아지들이 곁에 있었으며 언제라도 불쑥 찾아오는 이웃들이 곁에 있었다.

현관 앞에 신발들이 들쑥날쑥 어질러져 있어도 좋았고 서로 이름을 부르고 시끌벅적 소란스럽게 문 여닫는 소리가 들리던 그 시절, 이제는 과거형이 되어버린 그때가 좋았었다.


네가 없는 오늘, 나는 너무 쓸쓸해서 울 것만 같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아플 때나 외로울 때나  언제나 내 곁을 떠나지 않았던 나의 강아지와 이별을 했다. 너무나 조용한 집 안에서 이제 정말 우리 부부만 남았다는 게 실감이 나지 않는다.


울지 않으려고 꾹꾹 참는데 곳곳에서 털북숭이 아이가 보인다.

커튼에 수놓은 강아지가 있고  벽에 걸린 그림 속에서 사랑하는 반려견이 웃고 있다. 내가 아는 사람은 아무리 처음 봐도 저도 안다는 듯 꼬리를 흔들고 낯선 이는 사정없이 짖어대던 너,

달각거리는 밥그릇 소리가 어디선가 들리는 듯하고 금방이라도 뛰어들어 품 안으로 비집고 들어 올 것만 같다.


보고 싶다 나의 강아지들...


20년 전 단독주택으로 이사 오면서 강아지를 입양했다. 일 년 간격으로 식구가 된 두 마리 강아지는 사이가 무척 좋았다.

큰 놈은 제 밥그릇까지 넘보는 작은놈에게 모든 것을 양보했다.

강아지를 개라고 부르는 것조차 싫었던 것은 그 때문이다. 서로 보듬고 양보하며 사이좋게 지내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가끔 그들이 내 가족인 게 자랑스러웠다.

 

2년 전 먼저 온 큰 놈이 무지개다리를 건너갔다. 나이 18살이었다. 그리고 바로 어제, 작은놈도 마저 뒤따라갔다.


아침에 왠지 나쁜 예감이 들었다. 정오쯤 내 품에서 마지막 숨을 거둔 나의 반려견, 강아지의 따뜻한 온기가 사라질 때까지 나는 품에서 내려놓을 수가 없었다. 아이와 지냈던 19년의 시간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딸아이가 결혼하고 아들이 독립해서 집을 떠났을 때도 느끼지 못했던 허전함이 집안 도처에서 안개처럼 피어오른다. 토실한 엉덩이를 살랑거리며 온 집안을 돌아다니던 강아지가 없는 집안이 너무 휑하여서 외롭다.


신시아 라일런트의 단편집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외롭고 소외된 사람들이 작은 동물들과 만나 삶의 의미를 찾는 이야기였다. 작은 소라게, 금붕어, 거북이 등 살아있는 것들의 온기가 만들어 낸 기적 같은 이야기다. 동화를 읽으면서 인간과 교류하며 사랑을 베푸는 생명에 대하여 감동하게 된다. 나와 우리 강아지 사이에도 감동의 이야기가 많다.


갱년기가 시작될 즈음 온몸이 나른하고 자꾸만 쳐졌다. 그렇게 낮잠에 한 번 빠지면 누가 깨워주지 않는 이상 스스로 일어나지 못했다. 의식적으로 눈을 떠보려고 하지만 사물은 보이는데 몸이 움직여지지 않는다. 그게 가위(수면 마비)에 눌린 현상이라는 걸 나중에야 알았다. 공포에서 헤어 나오려고 소리를 질러 보지만 밖으로 내지르지 못하고 신음소리만 났던 것 같다. 어느 날 역시 가위에 눌려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 따뜻한 촉감을 느꼈다. 눈이 떠졌다. 나의 강아지들이 나를 핥아주고 있었다. 누군가 나를 지켜주고 있다고 생각해서 그런지 어느 날부터 가위에 눌리지 않게 되었다. 우리 강아지들과 나만 아는 교류의 기적이다.


나와 젊은 날을 함께 보내고 먼저 떠난 나의 반려견, 오늘, 캄캄한 밤하늘 어딘가에 새로운 별 하나가 뜨겠지, 누군가는 그 별을 보고 위로를 받을지도 몰라..., 사랑하는 나의 려견 또찌는 그런 아이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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